알파고 모멘텀 (AlphaGo Momentum) > 자유게시판

한국 사회에 엄청난 충격파를 던졌다.

‘호모 사피엔스’의 고유 영역이라고 여겼던 통찰과 직관에서 인간을 흉내내는

인공지능(AI)이 인간 최고수를 능가하는 일대 사건을 온 국민이 목격했다.

이 9단의 3연패는 끝모를 허탈감과 곧 다가올 미래 사회에 대한 공포를 안겨줬고,

벼랑 끝에서 거둔 그의 짜릿한 첫 승은 인간의 존엄이 무엇인지를 숙고하게 만들었다.

산업혁명에 버금가는 인공지능 혁명의 실체를 전 국민이 온몸으로 느꼈다.

이번 세기의 대국은 저성장의 늪에 빠진 한국 사회에 찾아온 뜻밖의 ‘모멘텀(momentum)’이 될 수 있다.

이번 대국이 단순한 이벤트에 머무느냐, 한국 사회에 의미있는 불씨를 제공하는

알파고 모멘텀(AlphaGo Momentum)으로 작용하느냐는 이제 우리 하기에 달렸다.

이세돌 9단(오른쪽)이 13일 서울 종로구 포시즌스호텔 특별 대국장에서 진행된 구글 인공지능 ‘알파고’와의

4국에서 첫 수를 우상귀 화점에 놓고 있다. / 사진 구글 제공

◆ 온몸으로 실감한 인공지능의 위력…AI도 창의적이었다

알파고의 내리 3연승은 충격 그 자체였다. ‘전투에서 약할 것이다’, ‘형세 파악에 뒤질 것이다', ‘패를 두지 못할 것이다’라는

전문가들의 예상이 줄줄이 엇나갔다. 무엇보다 충격적인 것은 사람이 만든 16만개 기보로 바둑을 익힌 알파고가

바둑 정석에는 없는 창의적인 수를 수 차례 선보였다는 점이다.

오로지 승리하는 데 최적화된 알고리즘을 이용해 매일 자체 대국 3만판씩을 두면서 스스로 기량을 꾸준히 높인 덕분에

알파고는 프로들도 못본 수를 둔다.

영어 해설을 맡은 마이클 레드먼드 9단은 “알파고가 바둑 분야의 새 이론을 만들어 갈 것”이라고 말했을 정도다.

전문가들도 인공지능이 지닌 잠재력에 놀랐다. 알파고를 개발한 구글 딥마인드 데미스 하사비스 최고경영자(CEO)는

 “우리도 알파고의 학습 한계를 모르겠다”면서 “그 한계를 알아보기 위해 이번 대국을 마련했다”고 수차례 말했다.

문병로 서울대 컴퓨터공학과 교수는 “알파고는 다 알려진 몬테카를로 트리 탐색(무작위 시뮬레이션)과

딥러닝(여러 개의 인공신경망을 활용한 기계학습법)으로 만들어졌는데, 기술 자체가 혁신적이라기보다는

기술이 만든 결과가 충격적”이라면서 “이번 대국은 인간이 도맡아온 고품질의 업무에 인공지능을 광범위하게

적용할 수 있다는 것을 확인시켜줬다”고 말했다.

이제 인공지능의 위력을 먼 나라 이야기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없다.

암 진단, 환자 문진, 약 제조, 펀드 운용, 자산관리, 회계, 변호 업무 등에 인공지능이 활용되고 있으며

로봇이 쓴 기사와 소설, 논문이 등장하고 있다.

◆ 인간의 존엄은 어떻게 사수해야 하나…던져진 또 하나의 화두

이번 세기의 대결 제3국이 열린 12일 1초가 아까운 상황에서 이세돌 9단이 화장실로 뛰어갔다.

알파고는 이에 아랑곳하지 않고 바로 착수했고, 이 9단의 시간이 계속 흘러갔다.

두 번 화장실을 다녀오느라 이 9단은 제한시간 6분 가량을 썼다.

이를 지켜본 사람들은 기계(인공지능)와 인간이 때로는 경쟁하고 때로는 협력하며 공존하는 시대에는

새로운 룰이 필요한 게 아니냐고 말한다.

영국 뉴캐슬대학 전산학과에서 강의하는 문송천 카이스트경영대학원 교수는 “영국 사회의 분위기라면 구글 딥마인드 쪽이

세계 최강자와 바둑을 두기를 원할 경우, 먼저 알파고가 어떤 식으로 바둑을 두는지, 어떤 특징이 있는지, 어떤 알고리즘을

따르는 지를 충분하게 설명할 것을 요청했을 것 같다”고 했다.

이번 대국 내내 이 9단한테 불리한 규칙으로 게임이 치러지고 있다는 비난 여론이 일었던 것은

쉴 필요가 없는 슈퍼컴과 싸운다는 기본적인 상식도 고려되지 않은 채 룰이 정해졌기 때문이다.

이런 고민없이 만들어진 규칙, 더 나아가 사회 제도는 인공지능을 만드는 사람한테만

유리한 결과로 이어질 수 있다.

이세돌 9단(백)과 알파고(흑)의 4국 기보 / 한국기원 제공

이 9단은 4국이 끝난 뒤 가진 기자회견에서 알파고의 약점 중 하나로 ‘버그’를 지적했다.

이 9단은 “알파고는 자기가 생각하지 못했던 수가 나왔을 때 버그가 발생했고,

그로 인해 몇 수가 실수로 진행됐다”며 “자신이 생각하지 못한 수가 나왔을 때

대처능력이 떨어지는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이 지적은 완벽해 보였던 알파고를 개발한 딥마인드팀뿐 아니라

자율주행차와 의료분야까지 거침없이 인공지능 영역을 확대해온 구글에 버그가 가져올 재앙과 위험에 대해

경고의 메시지를 날린 것과 다름이 없다.

이경전 경희대 교수는 “바둑 인공지능은 게임에서 질 뿐이지만,

100km 이상 달리는 자동에서 인식 오류, 추론 오류가 생기면 탑승자에게 치명적인 사고로 이어질 수 있다"면서

“구글이 자신의 인공지능 능력을 과시하는 자리에서 버그 지적을 받은 것은 뼈아픈 이야기일 수 밖에 없다"고 말했다.

실제로 ‘알파고의 아버지’ 데미스 하사비스 구글 딥마인드 최고경영자(CEO)는

 “이 9단의 묘수와 복잡한 형세 전개로 알파고가 실수하게 됐다”며 “이번 대국을 통해 알파고의 문제가 무엇인지

알 수 있게 됐고, 오늘의 패배는 알파고에 매우 소중하다”고 밝혔다.

‘알파고 같은 인공지능을 의료 분야에 적용할 경우 어떻게 되느냐’는 질문에

그는 “바둑과 의료보건분야는 그 영역이 완전히 다르다”며 “인공지능을 의료 분야에 적용할 경우에는

엄격한 시험 단계를 거쳐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김명자 한국과학기술단체총연합회(이하 과총) 차기 회장은 “인간도 실수하고 판단 미스도 하지만,

기계는 기계라서 반드시 오작동이 있다”며 “기계를 어디까지 허용해야 할 것인가 등을 결정해야 할 때는

과학자뿐 아니라 전 사회 구성원이 참여해야 한다"고 말했다.

◆ 혁명을 감당할 준비는 돼 있나…알파고 모멘텀 만들어야

뇌과학 전문가인 김대식 카이스트 교수는 “한국 바둑계의 충격은 인공지능 사회가 줄 충격의 시작에 불과하며

월가에서도 이 못지 않은 충격이 시작될 것”이라면서 “18세기 제임스 와트가 증기기관을 발명해 영국 산업 혁명을

촉발한 지 300년 만에 기계가 고급 지식 노동자를 대체하는 또 다른 대혁명이 일어날 것”이라고 예상했다.

19세기 일본이 조선보다 20년 앞서 개항해 결국 조선을 지배하고 열강이 됐던 사례처럼

새 패러다임의 순간에서 우리가 앞서가지 못하면 또 한 번 굴욕을 당하게 될 것이다.

하지만 우리 사회의 현실은 미래 사회의 도래를 받아들일 준비가 돼 있지 않다.

중·고교 시절 전교 1등, 수능 성적 상위 0.1% 이내 인재들의 대부분은 의대로만 몰린다.

저성장이 계속되면서 젊은이들은 도전하기보다는 공무원 같은 안정적인 직장을 얻는 데 사활을 건다.

지난해 상반기 삼성전자 입사 경쟁률은 33대 1이었고, 올해 공무원 9급 경쟁률은 54대 1이었다.

인공지능의 핵심 기술인 소프트웨어(SW) 분야에는 우수한 사람이 몰리지 않는다.

문송천 카이스트 교수는 “현재 한국의 세계 SW시장 점유율은 0.8%다.

이 부끄러운 현실을 벗어날 생각을 못하는 한국의 현주소를 이번 기회에 직시해야 한다”면서

 “기계와 인간의 승부에 일희일비하는 현 상황을 넘어서야 한다”고 말했다.

13일 오후 서울 시내 길거리를 지나는 사람들이 전광판에서 나오는 이세돌 9단과

알파고의 4국 장면을 바라보고 있다. / 사진 구글 제공

TV에 나온 한 바둑 전문가는 “기계는 인간이 어려워하는 계산을 능숙하게 하고

인간에게는 쉬운 것은 어려워한다는 데 알파고를 보면 그렇지도 않네요”라고 말했다.

컴퓨터공학자 한스 모라벡이 말한 ‘어려운 일은 쉽고, 쉬운 일은 어렵다

(Hard problems are easy and easy problems are hard)’는 모라벡의 역설을 언급한 것이다.

이세돌과 알파고의 대국 시청률이 연일 최고치를 갈아치우고,

해설위원까지 공학계에서나 이야기할 역설을 논할 정도가 된 것이 새로운 모멘텀이다.

이세돌과 알파고의 맞대결이 만들어낸 대흥행은 인공지능 혁명을 제대로 준비하는

불씨가 될 수 있다고 전문가들은 말한다.

김명자 과총 차기 회장은 “우리는 기술 혁신 속에서 살아가고 있으면서도

그 영향이 얼마나 큰 지에 대해서는 실감하지 못하고 있다”며 “이세돌 9단과 알파고의 세기 대국은

기술 혁신이 얼마나 우리 삶 속에 깊숙이 와있는 지를 느끼게 해준 대표적인 사건”이라고 평가했다.

김진형 카이스트 전산학과 명예교수는 “우리나라는 그동안 소프트웨어, 컴퓨터공학에 대해서 특히 무지했고,

관심도 없을 뿐더러 투자도 안했다”고 지적했다. 그는 “알파고가 이 9단에 승리하면서 많은 사람이 인공지능에

관심을 가지게 됐고, 알파고가 이 9단에게 지면서 인공지능이 한계가 있다는 것도 알게 됐다”며

“정부를 비롯해 우리 사회가 이제라도 준비에 나서야 한다”고 밝혔다.

조성배 연세대 컴퓨터과학과 교수는 “알파고가 5~6개월 만에 일취월장했다고 하지만

딥마인드가 지난 4~5년 동안 알파고를 준비했고, 거기에 구글이 10여년간 쌓아온 데이터베이스와

컴퓨터 처리 기술이 더해졌기 때문에 가능했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고 말했다.

[류현정 기자]

[강인효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