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옮긴글] 경칩, 상(象)과 현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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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을 쓴 사람의 견해가 전적으로 옳다고는 보지 않는다
하지만, 이 난세 亂世를 살아가며 참고할 점이 있기에 옮겨 본다
- 희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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驚
해인(海印)의 삼대요소 중 하나가 절기다.
그래서 항상 절기가 바뀌면 절기의 제목을 달고 글을 썼고, 오늘 경칩 첫날이다.
지난 우수의 일을 보면 운수는 어쩔 수 없는것인 가 싶다.
러시아가 자신의 의견을 관철시키며 한국시간 3월3일 0시16분이후에 의결된 안보리 결의안은
내용을 떠나서 시기상 우연인지 필연인지 싶을 정도로 기묘하다.
3월3일은 음력1월25일 갑신일이며 0시16분이후니 갑자시에 해당한다.
문제는 운수의 흐름이 지난 2월10일과 11일 양일간에 걸쳐서 개성공단 패쇄가 임술일과 계해일에 일어났으며
그때가 '칠팔년간고국성(七八年間古國城) 화중천지일병성(畵中天地一餠成) 흑의번북풍천리(黑衣飜北風千里)'에
해당하는 사건으로 고국성에 해당하는 지역인 개성공단 폐쇄가 해가 져서 밤이 되었다는
'백일경서야오경(白日傾西夜五更)에 해당하는 사건이라고 밝혔다.
이는 결국 하루라는 관점에서 보면 파루(罷漏)를 치는 시점인 오경(五更) 즈음이라는 것을 뜻하며,
그로부터 그다음 문장에 대한 사건이 무엇일지 기다리는 과정이었으며 자연스럽게 UN제제결의가
진행되는 즈음이었다.
그런데 간지로 갑신일 갑자시에 UN결의안이 안보리를 통과하는 것을 보고 정해진 운수는
어찌할 수 없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갑신일(甲申日)의 갑(甲)도 동쪽인 푸른색이며 갑자시(甲子時)의 갑(甲)도 동쪽인 푸른색이라는 점이
그 다음싯구가 무엇을 의미하는지 명확하게 드러나는 순간이었다. 러시아가 의도적이었던 아니었던
운수는 정확히 그 시점을 가르키는 것을 보며 무위이화가 그런 것이라는것을 다시 한 번 실감했다.
양력3월3일이라는 숫자적 특이성과 함께 양력2월11일 계해일의 개성공단 폐쇄이후 정확히 21일후인 갑신일에
UN제제안 결의는 시천주가 가진 21자에 응기한 결과다. 천지공사에 사물탕과 시천주가 함께한 것도
천지공사의 결과가 날수에 맞추어서 세상일도 현실화된다는 것을 드러낸 것이다.
사실상 앞 글에서 밝힌 천지공사중 해인공사(海印公事)가 태양의 길에 있듯이 양력 또한 태양을 중심으로 만들어진
달력이라는 것을 간과해서는 안된다. 결국 현재 나아가는 운수는 두가지 운수가 함께 가듯이 점차 진행되고 있다는
것을 알리고 있으며 일입유배해자난분(日入酉配亥子難紛)이후의 일이 제출진(帝出震)에 맞추어져 있다고 밝혔으며
년운상 경칩(驚蟄), 춘분(春分), 청명(淸明)이 진방(震方)이다.
또한 현무경에는 삼기초동량인 갑묘을진(甲卯乙辰)이 경칩, 춘분, 청명, 곡우를 뜻하고
이는 삼기초동량이자 '혼백(魂魄) 동서남북(東西南北)'에 해당한다.
지금은 해인(海印)의 또 한 요소인 태양의 길이 현재 위수(危宿)의 허량(虛梁)부근을 지나고 있으며
이는 사당 별자리이니 혼백(魂魄)에 어울리는 별자리다. 지리적으로는 홍연진결에 보면 경북 순흥 지방이
위수(危宿)에 해당하며 순흥 안씨의 기원이 있는 곳이기도 하기에 음동을 좇아서 피란동 안씨재실에서 공사를 보셨다.
삼진뢰(三震雷)가 제출진(帝出震)에 해당하는 방위이며 시간의 방위인지 공간의 방위인지가 관건이다.
현실이 욱여들어와서 바꾸듯이 판밖에서 판안으로 들어오는 것이 '혼백동서남북'이다.
현실도 그와 마찬가지로 2013년과 같은 루트를 좇아서 반복된 패턴을 보이고 있다.
북한의 핵실험과 로켓발사, 그리고 UN제제안 결의 그리고 북한의 불가침조약무효화를 시작한 시점이
정확히 2013년 경칩(甲)으로 부터 비롯되었다. 그런데 올해도 지난 2013년의 데자뷰와 같은 과정을 보내고 있다.
다만 그때와 다른것은 운수의 바탕이 다르다. 2013년에는 바탕에 화둔(火遁)이 깔려있어서 인류를 멸망시킬
전쟁을 막기위한 도법이 바탕에 있었고, 더더욱 두문동성수공사로 인하여 2012년 동지(병진일)로부터 81일차 병자일에
키 리졸브훈련과 함께 미국은 강력한 무력시위를 보이며 핵항모, 핵잠수함, B-52폭격기를 동원했고 이로 인하여
북한은 화풀이의 대상을 개성공단으로 바꾸었다.
바로 이런 일련의 운수가 화둔(火遁)을 바탕으로한 두문동성수공사로 인류를 멸망시킬 전쟁을
화지진(火地晉)으로 미리 말리는 운수가 적용되었다면, 지금 2016년은 똑같은 과정으로 나아가지만
운수의 바탕이 완전히 다르다.
2013년은 개성공단을 사이에 두고 밀고 당기기를 벌이며 남녀의 연애관계처럼 남북관계도 풀려갔지만
2016년 입춘(艮)에서 벌어진 개성공단폐쇄는 운수의 바탕이 완전히 바뀌고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화둔(火遁)은 화신(火神)을 억눌러서 전쟁을 막는 바탕으로 작용하지만, 지금은 오히려 땅에 화기(火氣)가
응하고 있다는 점이 다르며 그래서 지극히 조심해야할 때다. 현실은 모든 것을 알리는 바탕이자 지침이다.
사람들은 자신의 할 도리를 보지 않고 하늘에서 뚝 떨어져서 다 해결해주기 바라지만
혼백동서남북은 그런 기대를 여지없이 이지러뜨리는 과정이다. 반대로 욱여들어와서 변화하지 않으면
제거되는 운수가 만정낙화를 쓸어버리는 운수다. 그것은 뭐냐하면 욱여들어오면 반대로 수행을 열심히 하여
일심을 가지거나 현실에서 덕을 무수히 쌓거나 하지않으면 만정낙화의 운수라는 것이다.
그런데 문제는 욕심으로 이르지 못하는 욕속부달의 현상이 만연하다는 데 있다.
종교놀이속에 이만큼이나 했는데 당연히 한자리 하겠지하는 생각이 결국 이르지 못하게 되는
결과를 낳는 원인이 된다.
일심이 광신적 신앙이라고 생각하면 착각이라고 밝혔다.
광신적 신앙은 오히려 죄업으로 작용하여 자신도 망하지만 주변도 망치기 쉬운 일이 된다.
십조일손, 백조일손의 운수가 그리 녹녹했다면 세상이 이러지도 않을 것이다.
마음을 바꾸는 것은 첫단계이며 마음이 바뀌고도 무수히 덕을 쌓아야하며 그래야 일심으로 접어드는데
앉아서 기도 주문만 외우면 된다고 생각하는 풍조가 만연해진 것도 그 동안 종교로 인하여 잘못된 선입관이
자리잡은 결과다.
그러나 우주의 운영원리가 도와 덕에 있듯이 덕이 없으면 변화를 얻을 수 없다.
그것은 거래가 아니다. 오직하는 마음은 거래를 넘어서 오직 하는 마음가짐 자체에서 비롯되는데
그것을 거래화 했기 때문에 덕이 쪼그라드는 것이다.
연습으로 거래라도 시작해서 그것을 점차로 희석하며 거래를 넘어서 오직하는 마음과 오직 할뿐에 도달해야
비로소 일심의 초입에 들어서는데 그것이 뚜렷해지면 그 마음이 결국 정각으로 다가가서 건혜지의 첫단계를 뚫게 된다.
그러고도 무수히 수행을 해야만 보림을 통해서 마음이 신령해지는 단계로 나아가는데 뭐 조금만 보이면
자신이 누구요하는 아상으로는 득화(得化)는 커녕 득체(得體)라도 제대로 닿으면 다행이다.
그러니 그 단계에도 못가서 자신이 일꾼입네, 사명자네, 뭐가 보이네하는 단계는 초입은 커녕,
갚아야할 업만 더 두터워지기 마련이다.
결국, 자신의 행위가 결국 자신의 미래 운명을 밝게도 하지만 반대로 파괴하기도 한다.
운수를 기다리는 것이 급한 것이 아니라 마음고쳐서 덕을 쌓는것이 급하지만
마음고치는 단계도 못가면서 덕은 커녕, 누구입네놀이하다가 단체로 몰락의 길로 인도하는 경우도
비일재일하니 잘 해야 십조일손이며 평균 백조일손이다.
지금 일반사람이나 종교인들이 생각하는 평균이 얼마나 잘못된 길인지
열명중 한명이 살고 백명중 한명이 산다는 기준이 어느정도 열정으로 마음공부하고
덕을 쌓아야하는지 잘 알려준다.
지금이라도 개과천선하고 또한 마음공부하고 덕을 쌓지 않으면 무수한 중생을 구제하는 과정속에
무한반복의 고통이 기다리고 있다. 이번 생이 아니라도 다음 생, 다음 생이 우주의 어느 구석에서 어렵게
잡을 기회 속에서 '갱정'하지 않으면 어렵게 기회를 잡아도 또 똑같은 운수의 흐름이 기다리고 있다.
천지개벽이 오던 말던, 지금 당장의 수행이 얼마나 중요한지 이유가 여기 있다.
용화세상은 간절함이 오직할뿐/오직모를뿐에 닿아야 이를수 있는 계제다.
그럼 무엇이 우선인지 뻔하다. 마음이 오직할뿐/오직모를뿐에 닿아야한다는 요구조건이 있건만
사람들은 선천의 습관속에서 욕속부달, 즉 욕심이 앞서서 이르지 못함을 깨닫지 못하고 있다.
그것을 버리지 못하고 어린아이가 무작정 달라고 응석을 보여도 인사는 기회만 있을뿐
덕을 쌓아서 자격을 갖추는 것은 스스로의 마음가짐과 행위에 있음을 간과하지 말아야 한다.
비교하는 마음으로 전체인구 중 일만이천명의 확률이 이 종교인, 저 종교인 합하여 계산하는 행위가
얼마나 허구인지 알 수 있는 것이다.
수행은 절대기준이 존재하며 이르는 길은 다양해서 문이 없다.
어느 길로 가던지, 스스로 마음이 그 단계에 이르고 행위를 갱정하지 못한다면 말짱 도루묵이다.
그 마음에 이른 사람은 누리고 누려서 그냥 자신답지, 아상에 기름 붓는 짓을 하지 않는다.
그래서 누리고 누린다.
그말은 현재에 몰입해서 자신의 할 일을 몰입해서 하지 딴 생각이 없다.
생각만 많고 자기 할 일을 못본다면 인사에 주어진 기회는 자연스럽게 사라지기 마련이다.
공부는 기다리는 공부가 아니라 찾아가는 공부를 해야 지겹지 않다.
늘 말하지만, 현실을 열심히 살고 마음공부하며 덕을 쌓는 길이 최선의 길임을 밝힌다.
[출처] 작성자 보석사냥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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