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옮긴글] 약차불이(若此不已) 국무유의(國無遺矣)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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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은 얼마나 오래 사는 것보다, 어떻게 사는 게 더 중요하단 말을 그 언젠가 했었다
아래, 옮긴 글을 읽어 보니 더욱 그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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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자의 제자이자 친구인 자사가 위후에게 약차불이(若此不已) 국무유의(國無遺矣)라고 진언했지만 결국 나라도 망하고 자사마저도 죽음을 당하여 소금젓갈로 변해 공자에게 보내졌고 그것을 본 공자가 비통함에 소금을 입에 대지 않았고 결국 슬픔으로 죽음에 이르렀다. 시운이 따르지 않으면 아무리 옳은 일을 해도 결국 죽음이 따른다는 역사를 처절히 보여주는 예다. 그만큼 현실은 무서운곳이지만 기회의 장이기도 하지만 그것도 순진한 생각만으로 쉽게 이루어지지 않는다는 것을 현실을 살아보면 안다. 즉 사람으로 태어나서 바른뜻을 지녀도 그동안 역사는 운수가 나쁘면 한을 품고 죽는다는 예를 수없이 보여줘왔다. 정의가 승리한다는 공식은 사라져가고 모사와 장사꾼이 득세한지 오래다.
그러나, 그것이 시운이며 그것이 해원세상이라면 어찌 할수없다. 인간이 덕을 쌓아도 하늘의 덕을 당할수 없다. 결국 천도가 해원의 시대에 종언을 고하고 상생의 시대를 구현해야만 그짓이 끝날것이며 그것은 때가 되어야 가능하다. 만사는 때가 있고 세상의 운수는 변해왔지만 그렇다고 백년도 채 못사는 사람의 욕망을 채우기 위해서 천지가 움직일 일은 없다. 그만한 옳음과 간절함과 오랜 수행 그리고 덕이 쌓여야 결실을 맺는 운수지 그것을 우격다짐으로 자신이 누구요해본들 그 끝은 자명하다. 다만 천지의 원원한 대운속에서 시운을 보는 안목이나 덕을 쌓는것은 스스로의 수행에 달린일이며 그것마저도 소홀히 한다면 그 사람은 별볼일 없는 영혼의 소유자인 셈이다.
궁리진성이지어명(窮理盡性以至於命)은 '무궁한 이치를 마음을 다해 도달하려는 성품이 천명에 이른다'이지 잘난척하라는 것이 아니다. 깨우쳐서 알아도 그것은 아는것일뿐 덕을 무궁히 쌓지 않으면 그 마음은 온데간데없고 잘난척으로 죄업만 늘다가 결국 더 업만 두터워진다. 그것을 우리식으로 말하면 득체(得體)후 득화(得化)를 위해서 무수히 노력해야한다것을 뜻하고 불교식으로 말하면 건혜지 이후에 보림을 엄청나게 해서 마음이 신령함을 점차 찾아가야 한다. 단어만 다를뿐 결국 수행의 과정은 명명백백하다. 그런 과정없이 한번에 뛰어넘을수 없고 자신의 노력없이 깨우칠수 없다. 사람의 삶은 그런것이다.
사람들이 결과만 똑 따먹기 좋아해서 득명(得明)을 거론하지만 그것이 높은 자리에 있는 깡패신마냥 힘센것이 장땡이라는 식이지 정작 하늘이 귀히 여기는 것은 성경신이며 이는 마음을 다하여 덕을 쌓는 것이다. 그런데 걸핏하면 자신이 누구라는 식의 낙엽놀이는 그 과정은 쏙 빼고 아는것에 주력하며 그것으로 그치면 모르지만 다른이들에게도 그래라고 그런식의 의식을 전파한다. 결국 그런자들은 남보다 많이 안다고 자랑하는 것을 즐기고 상황만 바뀌면 남탓하기 바쁘다. 수행없이 결과만 따 먹겠다는것이 도둑이지 수행없는 성도는 있을수 없다. 아는 것은 아무 소용없다. 노력없이 공없이 이루어지는 것이 없다는 것을 진실로 믿는 것이 수행자의 자세지 사명자 놀음에 자신이 누구요하는 아상 높여주기에 주력하니 웃기는 일이다.
악한자도 현실 목표를 위해서 목숨을 건다. 그러니 자신의 욕심 챙길려고 때를 기다리고 아부하고 기회를 옅보는 것을 하는것과 살며 운수를 기다리는 것은 똑같다. 하물며 순진한 선이 운수나쁘게 그런 악을 만나면 꺽이는것이 선천의 이치였다. 혈식천추도덕군자가 과거에 몰입하며 공자왈 맹자왈만하는 꽁생원이며 순둥이로 알면 착각이다. 각자의 분야에서 각고의 노력과 아픔속에서 자신을 단련하기에 하늘이 주는 임무를 수없이 고련속에서 해결하다보면 한생애를 살지만 몇생애의 무게를 지닐수 밖에 없다. 그런 사람들이 쌓은 지혜와 결단력은 오직하는 마음으로 덤비기에 죽음도 불사한다고 역사는 보여주고 있다. 그런 영혼들중에 마지막 해원이 단주수명이다. 그런데 딸랑 딸랑 자랑에 남들을 아상으로 가르치며 선생소리와 좋은말만 듣기 좋아하고 사고나면 남탓하는 그런 자들에게 주어지는 사명은 과연 무엇일까?
그런자들에게는 무한 Loop처럼 똑 같은 판이 다른 이름으로 끊임없이 주어질 뿐이다. 혼자 그렇게 사는 것이야 자유지만 어만 젊은사람 선동해서 똑같은 형극의 길로 인도하는것이 큰 문제다. 혈식천추도덕군자는 그런 판을 이미 수없이 해결해왔기에 단 한생애를 살아도 몇생애를 산 만큼의 무게를 가진다. 그래서 현실의 무게를 참고 견디며 포기하지 않고 한걸음 한걸음 나아가며 백척간두진일보의 불퇴전의 의식을 가지고 있기에 종국에는 세상을 바꾼다. 수많은 영혼의 완성자들이 인간세상에 태어나며 자신이 누구라는 것이 아니라 실질적 노력과 불퇴전의 의식과 노력이 누구라는 것을 증명해왔다. 양철통 성품에 발끈하기 잘하고 뻑하면 남탓하며 불평불만만 늘어놓는 사람이라면 수행의 길보다 현실로 돌아가는 것이 낫고 그나마 마지막 양심을 지키는 길은 모르면서 사명자놀이에 젊은 사람들 선동하지 않는것이다.
[출처] 작성자 보석사냥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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