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가에 목란배를 매어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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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가에 목란배를 매어두고 / 허영숙
팔작기와 아래 늦도록 꺼지지 않는 창호문을 열면 누가 어둠을 벼루 삼아 먹을 갈고 있다 섬돌에 올라 선 바람 문틈으로 들여다 보며 한 줄 쓰면 한 줄 읽어주고 겹처마에 매달린 별들도 서로 한 획이 되겠다고 눕는다 연꽃 무성한 곳에 목란배를 매어두고 한 사람 기다리던 초희* 아득한 행간을 당기고 밀며 산맥처럼 밤을 넘어간다 이른 아침 세숫간에서 낯을 씻고 나온 배롱나무 담벼락옆 고요한 필방에 좌정하고 쏟아내는 붉은 문장 재가 된 서러움을 딛고 꽃으로 돋는다 잠깐 살고 오래 울다간 사람의 생가에서 바라 본 경포호 저 물길에 마음을 놓아 일필로 저어가면 먼 바깥을 보고자 한 깊은 심사心思에 닿을까 나도 물가에 목란배를 매어두고
*초희(楚姬) - 허난설헌 본명
2006 <시안> 詩부문으로 등단 詩集, <바코드 2010> <시마을> 同人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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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상 & 생각>
경포호를 찾은지도 너무 오래 되었는데... 시를 감상하니, 다시 가보고 싶어진다 마치, 蘭雪軒의 시 한 首를 대하는 듯
春雨暗西池 춘우암서지 輕寒襲羅幕 경한습라막 愁倚小屛風 수의소병풍 墻頭杏花落 장두행화락 보슬보슬 봄비는 못에 내리고 찬바람이 장막 속 스며들 제(숨어들 제) 뜬시름 못내 이겨 병풍 기대니 송이송이 살구꽃 담 위에 지네
시인의 意識 위에 고요히 떠올린, 목란木蘭배... 그 배에 실린, 난설제蘭雪齋의 처연한 그리움의 심사心思가 잔잔히 흔들리는 듯한 한 폭의 적요한 풍경화 같기도 하고 - 희선,
댓글목록
하늘은쪽빛님의 댓글

아, 어쩌면 시가 이리도 고운가요..
허영숙시인님은, 이 시대 난설헌님이시라는..늘 결고운 언어에 매료되곤 하는데요
더우기 초희님의 신비한 배경이 있어서일까요..
정갈하고 고운 시심에 취해서 갑니다..
넘 고운시, 몇 번이라도 새롭네요..감사드려요..^^
안희선님의 댓글

제 기억으론, 그 언젠가 쪽빛 시인님도
<楚姬>를 주제로 한 시를 한 편 쓰신 걸로 압니다 (감명깊게 읽었던 기억)
난설헌은 한 여인으로서 참 기구한 운명을 지녔었는데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주옥 같은 시편들을 많이 남겼죠
先代의 아름다운 시인이 後代의 같은 성씨를 지닌 시인에 의해
단아한 필치로 조명됨, 역시 아름답다는 생각요
* 허난설헌許蘭雪軒
조선 중기의 시인(1563~1589) 26세란 나이로 요절
본명은 초희(楚姬)이고 자는 경번(景樊)이며 호는 난설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