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무엇으로 사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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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서의 표현의 글을 쓰면서 내일과 모래의 일을 기록해야 한다는 사실을 기억해내고 다시금 오늘의 일들을 이어나가야 겠다는 생각으로 이렇게 다시 오늘의 표현을 이어나가게 되었다.오늘의 핸드폰 때문에 매우 마음이 불쾌한 마음으로 일을 하러갈수밖에 없었다.오늘은 화양리에서 금호동 까지 이사짐을 싸서 운반을 하고 운송을 하고 도착지에서 다시 짐을 푸는 일은 앞서 언급한 대로 매우 덥고 후덥지근한 까닭으로 땀으로 목욕을 하면서 이사짐을 쌀수밖에 없었고 이동과 이사짐을 풀면서 그런 생각이 잠간 들었는데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에 대한 물음이 생각이 난것인데 나는 무엇으로 사는가에 대한 물음을 수없이 던지는 인생을 살았다라고 할수가 있다.어리석은 삶을 살수밖에 없었던것은 배움이 부족하다거나 정보를 받아들이는 능력이 부족하다거나 하는것으로 모든것을 설명하기에는 부족할것이다.가난한 삶은 무엇인가를 채우려는 노력을 한다고는 보장하지 못한다.그리고 가난한 자의 삶이 자연으로 부터의 어떠한 혜택에 대한 생각이나 의도를 또한 생각하지 못하면서 살았다라고 할것이다.나는 무엇으로 사는가라는 말에 대해서 어느소설속에서의 이야기나 가난하게 태어나서 엄청난 노력이나 우연에 의해서 혹은 기적에 의해서 사회적인 역활이 커짐으로 해서 사회적으로 많은 역활을 할수있다는 그런 이야기를 나는 경험의 순간들을 통해서 들었으며 어쩔때는 부럽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고 부자의 부모를 만나서 많은 것을 배우고 배움의 기회가 많아서 예술이나 체육 혹은 능력이 뛰어난 혹은 천재적인 능력으로 많은 사람들에게 행복함을 느낄수있도록 하는 과정을 해본 사람들의 이야기들을 나는 경험속에서 들었다라고 할것이다.이러한 것들로 채워져있는 전반적인 경험으로 인하여 살아가는 혹은 살아남은 나는 무엇으로 사는가라는 물음으로 이해를 하여야 하는가라는 물음도 던져보지 않을수가 없었지만 분명한것은 나는 나로 살아왔다는 사실은 분명하다. 나는 무엇으로 사는가라는 소설의 제목속에서 도덕적이라는 물음이나 윤리적이라는 물음으로 인생을 살아가라고 조언하는것일수도 있겠지만 나는 무엇으로 사는가에 대한 매우 휼룡한 답은 아니라고 말하지 않을수가 없는데 그이유를 나는 이렇게 제시하는 입장이다.솔직히 나의 인생은 가슴아픈 인생살이로 점철되어있다라고 할수있다.강한 사람에게 아부하면서 살아남았던 기억이나 나에게 경제적으로 작은 이득을 주면서 나를 살아가게 하는 경험도 해보았고 가장 사랑하는 사람에게 배신을 당해보았고 배신을 당한것은 나의 전적인 책임에 의해서 그렇게 된것이다라고 단정짖고서 접근하는것에도 나는 수긍을 하는것을 잊지 않는다.개인적으로 나는 비열한 인생살이를 살았다라고 말한다면 나는 그것을 긍정하는 편이다.강한것에 대항해서 강한것을 쳐부수는 상상을 해보았지만 나의 강력한 살인의지를 발현해서 그 불합리를 나의 목슴을 바쳐서 깨트리는 마음은 굴뚝같았지만 나는 그렇게 하지 못했다는 사실을 시인하면서 나는 그러한 시간을 보냈다라고 말하는것 이상은 할수가 없다.나는 비열하기 때문에 살아있다는 단정을 부정하지 못한다.이와는 반대로 나는 냉정하고 인간적인 관점에서 나에게 무엇인가를 바라는 사람에게 인간적으로 대우를 하거나 나의것을 아무런 대가없이 건네준적이 있는가라는 물음에 대해서도 나는 그렇게 살지 못햇다라고 말하는것에 부끄러운 마음으로 받아들이지 않을수가 없었다.도대체 나는 무엇으로 사는가에 대한 답을 어떻게 내야 하는가.아마도 앞서 언급한 살아있는 동안 인간으로 살아가던지 아니면 자연의 질서의 중요한 표현에 의해서 나는 살아갈 가능성이 많을지도 모른다.아니면 나는 살육의 의지를 가지고 있는가라는 물음을 또한 던지지 않을수가 없다는 사실이다.나는 분노의 시간을 매우 길고길게 지내왔다.그리고 나는 동물적인 성욕의 고통을 격으면서 살아왔다라고 말할수밖에 없다.성적인 욕망을 극복하는것은 가능하다라고 말하는 사람이 있다면 나는 그를 매우 우러러 볼수밖에 없다라고 하지 않을수가 없다.과연 나는 어떻게 인생을 살았는가라는 물음에 대해서 한편으로 가엽고 한편으로 사람의 탈을쓴 짐승의 삶을 살았다라고 고백하지 않을수가 없다.그런 노래가 있다.지금 까지는 잘못한것이 매우 많지만 지금 부터는 잘살아보자라는 노래를 지금 부터라도 잘 살았으면 좋겠지만 나는 나자신에게 인간 그대가 가엽다라는 매우 명료한 명제를 제시하는것 말고는 할수있는것이 없다.사랑하고 있는가라는 물음에 대해서도 혹은 사랑받고있는가 라는 물음에 대해서도 나는 분명히 말할수있는것은 사랑도 하고 싶고 사랑도 받고 싶다는 말이상은 할수가 없다.이것이 나의 오늘이며 어쩌면 내일도 이러한 상황에서 벗어나지 못할것이다.이러한 바탕에 나는 무엇으로 사는가라는 물음에 매우 명료한 나의 언어적 제시는 착하게 살라는 언어나 용기있게 살라는 물음이나 인간의 언어로 할수있는 매우 휼룡한 말을 제시할수가 없다.내가 배워온 말들중 혹은 나의 인생동안에 슬프고 아프고 아니 죽음이 가장 나에게 합리적인 선택이라고 생각한적도 있었지만 나는 무엇으로 사는가라는 물음에 대해서 도덕이나 윤리가 아니라 하나님께서 천지를 창조하시고 보기에 좋았더라를 행위하는것을 선택했다라고 말하지 않을수가 없다.나는 도덕적이라는 말을 매우 의미있다고 혹은 매우 좋은 철학적 문화적 인간의 삶에 있어서 매우 중요한 행위의 요소이다라고 말한다.그리고 윤리적이라는 말도 도덕적이라는 표현에서 처럼 그렇게 말하고 있다.하지만 나는 그러한 것을 행복한 세월은 매우 짧았다라고 착각하고있다.사실은 살아있음 그자체가 행복이다라고 느끼는 훈련이 부족하다는것을 알지만 나는 그러한 삶을 살지 못했다.하루 하루 살아가는 살아가는 고통을 극복하지 못하고 그과정에는 성적인 욕망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으며 나는 사랑하고 사랑받지 못하는 울분을 분노의 감정으로 승화시킨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나의 의식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어찌보면 나의 중요한 언어인 인간 그대가 가엽다라는 의제는 맞는것인지 모른다.나는 무엇으로 사는가.이물음에 대해서 이렇게 답을 할수밖에 없는것이 안타깝기도 하고 이것이 자연의 진실한 실천이라고 말한다면 나는 그것을 또한 수긍하고 받아들일것이다.나는 무엇으로 사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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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민기09님의 댓글

모든 일을 "수긍하고 받아들일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