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월17일에] Love - Hildegarde von Binge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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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ildegarde von Bingen - Vision 4 - Love
가끔은 이런 음악도 접해보자

라인에 있는 빙엔 근처의 작은 수도원으로 보내졌다. (또 다른 기록에 의하면 그가 몹시 병약하고 신비로운 예지능력을 지녔기 때문에 수도원으로 보내졌다고 한다). 그곳은 베네딕트회의 계율을 따르는 성 디지보덴베르크(Disibodenberg) 다양한 지적 교육을 받았다. 당시 베네딕트회 수도원은 예술과 과학의 중심지였다. 따라서 힐데가르트는 신학, 자연, 의학, 우주, 세계와 인류 등에 관한 지식을 터득하게 되었다. 이는 훗날 그가 수많은 편지와 책, 시, 음악 등을 원장이 되었다. 이어 5년 뒤 그는 일생을 바꿀 만한 결정적인 사건을 경험하게 된다. 그의 나이 42년 7개월이 되던 때의 일이었다. 이때 죽을 고비를 넘길 만큼 중병을 앓은 그는 <환상, vision>을 경험한다. 어린 시절(3살 때) 이미 환상을 보고 미래를 예지하는 특별한 능력을 가지고 있었던 그는 이때 <신의 영혼의 불꽃>을 확실하게 감지했다.
그는 자신의 저서 <Scivias, 길의 조명>에 당시의 경험을 이렇게 적고 있다. 결국 이 계시를 따르기로 마음먹었던 그는 1141년부터 1151년까지 10여년에 걸쳐서 26개의 계시를 담은 신학서 'scivias'를 완성하게 되었다. 이 책을 직접 읽고 검토한 버나드는 힐데가르트에게 용기를 북돋아 주는 한편 1147년~1148년에 열린 트리에 종교회의에서 힐데가르트의 영적인 계시들을 지지해 승인하기에 이르렀다. 이로써 신비주의자이고, 작가이자 시인이며, 작곡가인 그녀의 이력이 시작된 것이다. 그가 이러한 결심을 하게 된 가장 큰 이유는 18명이나 되는 수녀들이 생활하기에는 수도원의 공간이 너무 좁았기 때문이었다. 힐데가르트는 떠나기에 앞서 또 다시 <환상>을 보게된다. 그의 자서전은 이에 대해 이렇게 적고 있다.
디지보덴베르크 수사들이 예지력있는 힐데가르트와 그의 수녀들을 잃어버리는 것을 못마땅해 했기 때문이다. 힐데가르트는 큰 병을 비롯한 온갖 어려움을 극복하고 1150년 루페르츠베 새로운 수녀원으로 옮겨갔다. 여기에서 그는 신학서 'Scivias'를 완성했으며 그가 보여주는 기적같은 일과 예지력은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렸으며, 사람들은 그를 <라인의 예언자>로 부르기도 했다.
크고 작은 일들을 상의했다고 전해진다. 사실, 여성들이 자기 목소리를 낼 수 없었던 중세의 억압적인 상황에서도 그가 음악을 작곡하고 그의 음악이 불려진 것은 아마도 이러한 그의 높은 명성과 권위 덕분이라고 추측된다. 루데스하인에서 멀지 않은 아이빙엔에 수녀원을 세웠는데, 원래 이 수녀원은 한 귀족부인에 의해서 세워졌으며, 바르바로사 황제가 일으킨 전쟁으로 폐허가 되었다가 1165년에 힐데가르트에 의해 재건된 것이다. 루페르츠베르크 수녀원이 점점 커짐에 따라 30여명의 수녀들을 이 아이빙엔 수녀원으로 이동시켰으며, 힐데가르트는 이곳에 가기 위해 1주일에 두 차례씩 라인강을 건너야만 했다. <축복받은 힐데가르트(Blessed Hildegard)>, <성 힐데가르트(Saint Hildegard)>, <라인강의 예언자> 등 이다.
약초학자, 시인, 운동가, 예언자, 작곡가였다. 빙엔은 살아있을 때 교회가 공식적으로 성인에 추대하는 과정을 지켜본 최초의 인물이기도 하다.
그녀의 축일은 9월17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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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목록
率兒님의 댓글

종교에 묶여 있지 말아라.
그러면 진리 곧 이 우주의 생명이 당신을 품고 있는 것을 알게 될 것입니다.
안희선님의 댓글

저는 종교도 없지만..
다만, 전해지는 음향 音響이 맘을 편하게 해 주어서 (웃음)
率兒님의 댓글의 댓글

사실 중세 카톨릭 성자들 대부분은 요즘 교회에서 정통이라 말하는
그런 문자주의자보다는 교리를 뛰어넘은 자유의 영혼들이 더 많습니다.
흔히 신비주의자라고하여 이단으로 몰아가는 사람들도 있지만 그들
이야말로 우주와 하나가 되어 모든 것을 초월한 자유의 사람들입니다.
십자가의 성 요한의 저서를 보면 선을 통해 색에 묶이지 말자는 선사들과
맥락을 같이 하고 있습니다. 그는 그것을 어둠이라 표현했습니다.
미친 놈처럼 청계천을 돌아다니며 한권한권 사 보았던 그 책들.... 이사를
할 때면 책 한 트럭, 이사짐 한 트럭. 수십 년간 분신처럼 가지고 다닌 그
책들을 몇년 전 다 버리고 남아 있던 몇백 권의 책들도 며칠 전 다 버렸습
니다. 이렇게 아끼던 모든 것을 다 버리고 나면 아마도 진정한 내가 남아
있을 겁니다. 내가 그토록 찾아다녔던 그 사랑 말입니다.
안희선님의 댓글의 댓글

형님이 계시기에
이 시마을이란 곳에서
이렇게 귀한 말씀도 듣는 거 같습니다
감사합니다
率兒님의 댓글의 댓글

아이고 별 말씀을.... 책을 팔려고 하다가 누군가 그 책들을 읽다가 씨잘 데 없는
아상(我相)을 만들어 인생을 허비하게 되는 일이 있을 것 같아 그냥 쓰레기로
버렸습니다.
오늘 어느 분이 오디오 때문에 집을 방문했는데 내 카메라들을 유심히 보기에
다 없앨 것이라 했더니 난데 없이 몇십만원 용돈 주고 가져 갑디다. 감사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