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의 골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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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안희선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댓글 4건 조회 1,612회 작성일 15-09-02 19:58본문
당신의 골목 / 이명윤
그곳이 지도에 없는 이유는
햇볕이 잘 들지 않기 때문이죠
얼굴을 맞댄 오래된 집들은
그 자리에서 늙어가죠
혹자는 부질없는 집착이라고 하지만요
골목을 벗어나지 못하는 당신,
가끔은 누가 볼까 휘파람을 불지만
소리는 그림자를 춤추게 하죠
꿈틀꿈틀 일어나는 기억,
슬금슬금 쫓아오는 골목, 뒤돌아보는 당신,
허름한 창문 틈새로 슬픔이 불빛처럼 새어 나오고
개 짖는 소리에 골목이 가늘어져도 두려워 마세요
골목의 병명은 지도에 나타나지 않아요
늘 웅크려 자는 당신
오래된 골목 하나 품고 사는 당신
십년 혹은 이십 년 전 어디쯤
쓰러져 있는 당신에게
다정한 목소리로 골목아, 라고 불러보세요
골목은 엎어져도 골목,
무르팍이 깨어져도 또 다시 훌훌 털고 일어나
가고 있지요 무심하게도
다시 뒤돌아 걷지 않는 한
골목은 쉽게 끝나지 않지요
몇 번이고 다시 방영하는 드라마처럼.
2007년 <시안> 시 부문으로 등단
<시마을 문학상>, <전태일 문학상>
< 수주 문학상>,<민들레 문학상>,<솟대문학상>수상
시집 <수화기 속의 여자>
<감상 & 생각>
한때는 그 정겨운 <골목문화>라는 게
우리들의 삶에 자리하고 있었죠.
아이들이 웃고, 떠들고... 동네 강아지도 함께 뛰놀고
그러다가 애들 싸움이라도 벌어진 양이면,
곧 바로 엄마들이 뛰쳐나와 어른 싸움이 되기도 하고
그 다음 날엔 언제 그랬냐는 듯이
' 철이 엄마, 장 보러 같이 갈래?... ' 하던.
사람들이 더 이상, 다감多感한 흙을 밟지 않고
살아가는 요즈음은 그 골목이란 게 사라져서
햇볕이 잘 들지 않는 이 세상의 그 어떤 지도에도 없고,
어두운 길을 질주하는 그 어떤 자동차의 '네비게이션'에도
표시되지 않지요.
다만, 그것을 기억하는 혹은 추억하는...
사람의 가슴 속에 몽유병夢遊病 같은 모습으로
서성이며 자리하고 있을 뿐.
참, 그렇게 생각해 보면...
산다는 건 끊임없이 소중한 그 무언 가를
상실해 가는 일이기도 해요.
상실된 것만큼,
실實하게 보충되는 것도 없는 이 삭막한 시대에
아쉬운 기억만으로 힘겹게 간직하고 있는,
그 <골목의 추억>이라도
자꾸 되풀이 되는 <드라마>처럼 볼 밖에요.
내가 아직은, 몸 안에
따뜻한 피가 흐르는 사람이란 걸
상기하면서...
- 희선,
댓글목록
마음이쉬는곳님의 댓글
마음이쉬는곳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요즘은 아파트 문화가 번성하니
베란다 문화가 발전 하였으나
골목의 문화는 사라져 가지요
골목에 옹기종기 모여서 소담스럽게
피어 놓은 화단이 정겹고 하였지요
어쩌다 높은 담을 넘어 나온
꽃향기가 보이기도 하는 때에는
그 골목안은 호강이 따로 없었지요
골목의 옛 정서에 깃들다 갑니다
안희선님의 댓글의 댓글
안희선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세월의 흐름과 함께 소중한 많은 것들을 잊거나,
잃고 살아가는 느낌
사라져 가는 골목문화도 그렇지만
특히, 사람간의 정이 그러한듯요
서로의 가슴마다 출입금지의 차가운 명찰을 달고...
하늘은쪽빛님의 댓글
하늘은쪽빛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철이 엄마 장 보러 갈래..? 넘 잘 어울리시는데요..(웃음)
지금도 골목이란 게 있겠지만,
쓸쓸한 여운이 남는, 당신의 골목..
올려주신 감상에도, 깊은 공감으로.. 머물다 갑니다..^^
안희선님의 댓글의 댓글
안희선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철이 엄마 장 보러 갈래..? "
이거 지가 어릴 때,
골목에서 놀다가 진짜루 들었던 얘기에요 (웃음)
고운 발, 걸음으로 머물러 주셔서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