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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데요시의 狂氣에 대처했던 조선 지도부의 자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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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profile_image andres001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댓글 0건 조회 195회 작성일 19-08-08 10:57

본문

입력 2019.08.07 03:00

1587년 손죽도 왜변과 어이없던 용인 대패전
           

  • 박종인 여행문화 전문기자        


박종인의 땅의 歷史


임진왜란 7년 전인 1585년 7월 도요토미 히데요시는
스스로 최고위직인 관백(關白)에 오르며 중국 침략 계획을 공개했다.
이듬해 5월 일본을 찾은 포르투갈 예수회 선교사 코엘료에게 그는
"명과 조선 침략을 위해 군함 2척을 건조해 달라"고 요청했다.
(루이스 프로이스, '일본사')

히데요시는 국내외로 전쟁을 공공연하게 밝히고 이를 준비했다.
이후 일본과 조선 역사는 히데요시의 광기(狂氣) 속으로 내몰렸다.
징조는 곳곳에서 보였고, 전쟁은 터졌다.
히데요시의 광기가 뿜어낸 징조와 그에 대처했던 조선 지도부의 자세는 이러했다.


- 1587년 손죽도 왜변(倭變)

1587년 2월 전남 고흥반도 앞바다 녹도에 왜구 배 다섯 척이 들어왔다.
섬을 지키던 녹도만호 이대원이 이들을 퇴치하자 며칠 뒤 왜구는 열여덟 척 함대를 만들어
녹도 남쪽 80리 손죽도를 침략했다.
전라좌수군이 총출동했다.

사흘 밤낮으로 싸웠는데 싸우는 배는 이대원이 탄 배 하나밖에 없었다.
다른 배들은 감히 싸우려 하지 않았다.
혼자 남은 이대원은 뭍으로 끌려가 왜구 손에 죽었다.

왜 조선군은 전의를 상실했는가.

'다른 배들은 '철환(鐵丸)'을 두려워하여 모두 도주하였다(諸鎭船畏鐵丸皆退走).
'(김제민, '오봉선생집' 1권, '悲李大源·이대원을 슬퍼함')
조총(鳥銃)이라는 듣도 보도 못한 화력 군단이 나타난 것이다.
왜구는 강진 앞 선산도와 마도진, 가리포진을 휩쓸고 퇴각했다.
조선 정부는 이후 전라도 방어력 강화를 위해 전라도 가리포와 진도 등지 해안에 성을 쌓았다.

 


서기 1592년 4월 충주에서 벌어진 탄금대 전투는 임진왜란 초기 조선의 실상을 적나라하게 보여준 전투였다. 문경새재의 전략적 중요성을 팽개치고 조총 부대를 무시한 탓에 조선 육군은 궤멸됐다. 사진은 전쟁 후 건설한 새재 2관문이다. 두 달 뒤 용인에서 벌어진 또 다른 전투에서 6만 조선군은 1600명에 불과한 일본군에 '산이 무너지듯' 또다시 궤멸됐다. 전투력과 전술을 감안하지 않고 전쟁하는 법을 생각하지 않은 탓이다. 기록에 따르면, 그때 조선 백성은 '골짜기에 숨어 있다가 밤에 나와 조선군이 버리고 간 옷과 쌀을 주워 모아 생계를 유지했다'. /박종인 기자


어느 날 선조가 공조판서 겸 도총관 변협에게 물었다.
"만약 우리나라가 전라도에 주력하는 줄을 알고 딴 도(道)로 들어오면 어찌할 것인가?" 도총관이 답했다.
"대적(大賊)이 어느 곳엔들 들어오지 못하겠습니까."(1589년 8월 1일 '선조실록')
3년 뒤 '대적' 히데요시는 15만 대군을 전라도가 아닌 경상도 부산포로 상륙시켰다.
최전방 부대는 전라좌수군을 공포에 떨게 한 조총부대였다. 완전히 허를 찔린 것이다.

손죽도 왜변 이후 조선 지도부의 위기관리 방식에 대하여

손죽도 왜변이 마무리되고 다음 달 동래부사 노준(盧埈)이 파직됐다.
실록 기록은 이러하다.
'동래부사 노준은 술에 빠져 공무를 살피지 않고 왜인들 선박에 쌀을 지급할 때 작폐가 적지 않아
왜관 내 왜인들로 하여금 억울하다는 말을 하게 만드니, 파직하소서.'(1587년 3월 3일 '선조실록')
요컨대, 게으르고 부정부패를 저질러 말썽을 피운다는 내용이었다.
선조는 한 달 뒤 부사를 교체했다. 하지만 이는 말 그대로 면피용 보고서다.
후임 부사 이정암이 남긴 기록은 실록과 '아주 많이' 차이가 난다.

'지난해 왜변 이후 왜구가 대거 쳐들어온다는 말이 크게 떠돌았다.
전임 부사 노준은 대처가 잘못되었기 때문에 간관들이 탄핵하여 파면시키고 내가 임명됐다
(自上年倭變之後 聲言大擧入寇前府使盧埈 處事失宜 言官劾罷 以余代之).'(이정암, '사류재집'8, '행년일기'上)
노준이 흉흉한 민심을 잠재우지 못해 파면됐다는 말이다.
때는 국가적 위기 상황이었지만 정부는 위기를 은폐하기에 급급했다.
(김덕진, '1587년 손죽도왜변과 임진왜란', 2010)


- 전쟁이 임박한 조선 민간에서 벌어진 두 가지 풍경에 대하여


'서울 선비들이 백 명 천 명 떼로 미친 짓을 하는데, 해괴하기 짝이 없다.
무당 흉내를 내면서 노래하며 춤추기도 하고, 장사 치르듯 껑충거리고 흙을 다지기도 하며,
동서로 달렸다 웃었다 울었다 하였다. 저희끼리 큰 소리로 묻고 답하기를 "장상(將相)들이 제대로 된 사람이 아니어서 웃는다.
국가가 위태롭고 망해 가고 있어서 우는 거다" 하며 하늘을 쳐다보며 크게 웃곤 했다.'(조경남, '난중잡록'1 1588년)
바다 건너편에서 몰아닥치는 광기에 많은 사람이 넋을 놓았다.
영의정 이산해 아들 이경전도 있었고 우의정 정언신 아들 정협도 있었다.
 

부산에 있는 충렬사. 임진왜란 때 순절한 민간인과 군인들을 모신 사당이다.


저렇게 덜떨어진 자들만 있었다면 나라 꼬라지는 언급할 가치도 없었을 것이다. 그런데 이런 사람들이 있었다.

나주에 있던 김천일은 왜변 소식을 듣고 스스로 마술(馬術)과 궁술을 익혔고 제자들에게 병마(兵馬)를 훈련시켰다.
남원 선비 안영은 칼을 사서 보관하였고 유팽로라는 선비는 대장간을 만들어 날마다 무기를 만들고 군복을 제작하고
군량미 수백 석을 비축했다. 1591년 금산 대둔산을 찾은 조헌은 "내년에 필히 왜란이 있으니 같이 싸우자"고
승려들과 결의했다.(김집, '신독재선생유고'12, '중봉조선생시장')

이들이 의병장들이다.
안영과 유팽로는 1592년 4월 20일 또 다른 의병장 고경명 부대에 합류해 의병을 일으켰고,
김천일은 5월 6일 나주에서 거병했다. 조헌 또한 그 5월에 옥천에서 거병했다. 전쟁이 터지고 불과 한 달 사이다.
전쟁이 터지자 기다렸다는 듯이 전국 팔도에서 일어난 의병은 이렇게 '준비된' 군사들이었지
분노와 애국심만으로 일어난 나약한 지식인이 아니었다.(김덕진, 앞 논문)
경상도의 곽재우와 함께 고경명·김천일·조헌은 임진4충신(壬辰四忠臣)이라 불린다.

자만과 미숙함이 초래한 황당하기 이를 데 없는 용인 패전에 대하여

1591년 여름 부산포 왜관에 머물던 왜인 수십 명이 점차 돌아갔다.
마침내 한 관(館)이 텅 비게 되니 사람들이 이를 이상하게 여겼다.('징비록')
문득, 조선에 체류하던 왜인이 모두 철수했다. 1592년 4월 13일 마침내 전쟁이 터졌다.

전라도에 집중돼 있는 조선군을 피해 일본군은 부산포로 상륙했다. 부산과 동래 민관군이 전멸했다.
4월 28일 순변사 신립이 지휘한 8000 조선군이 충주에서 전멸했다.
기병술에 능했던 신립은 요새지인 문경새재를 버리고 평지를 택했다.
충주벌 논은 진흙탕이었다. 조선군이 방치한 텅 빈 새재를 일본군은'노래하고 춤추며 통과해[乃歌舞而過·'징비록']'
흙탕에 빠져 있는 조선군을 도륙했다. 선조는 수도를 버리고 명나라를 향해 야반도주했다.
한성 성민은 경복궁에 불을 질렀다.

그리고 6월 용인에서 6만 조선군과 일본 해군 장수 와키자카 야스하루(脇坂安治)의 1600 일본군이 맞붙었다.
조선군은 하삼도(충청·전라·경상)에서 모집된 병력이었다.
지휘관인 삼도 관찰사 김수, 이광, 윤선각이 평안도 용천에 있는 선조에게 보고서를 올렸다.
"싸울 계책을 조정에서 알려 달라"는 것이다.
농사짓다 소집된 6만 오합지졸보다 더 전쟁을 모르는 지휘관들이었다.
그럼에도 총사령관 이광은 아군 병력 규모에 자만했고, 적군 전투력에 무지했다.

'밥 짓는 연기가 올라갈 때 적병이 산골짜기를 따라 공격했다.
흰 말을 타고 쇠가면을 쓴 장수가 칼날을 번뜩이며 앞장서니, 충청 병사 신익이 먼저 도망했다.
10만 군사가 차례로 무너져 흩어졌다. 그 형세가 마치 산이 무너지고 하수가 터지는 듯하였다.
모두 단기(單騎)로 남쪽을 향하여 도망하니, 적병 역시 추격하지 않았다.
병기와 갑옷, 마초와 양식을 버린 것이 산더미와 같았는데 적이 모두 태워버리고 떠났다.'(1592년 6월 1일 '선조수정실록')
류성룡은 이리 적었다.
'문관 3인이 군사를 봄놀이하듯 하니 어찌 패하지 않겠는가(軍行如春遊 安得不敗者也).'('징비록')

기억나지 않는가.
5년 전 고흥 앞바다에서 달아났던 그 용렬한 지휘관들이.
선조는 며칠 동안 입 밖에 꺼내지 않았던 명나라 망명 계획을 다시 언급하기 시작했다.

- 광기가 초래한 민간의 희생에 관하여

'15만 일본 병사 가운데 5만명이 죽었다. 전사자는 소수고 대부분 과로, 기아, 추위, 질병으로 죽었다.'
징용된 일본 남자들은 '불안과 고민으로부터 벗어나기 위해 칼을 뽑아 할복하는 사람들이 많이 나왔고,
여자들은 아비나 남편을 못 만나리라 여기고 울며 슬퍼하였다.'(루이스 프로이스, '일본사')
도요토미 히데요시의 광기에 조선은 물론 일본 민간인도 큰 고통을 겪었다.

하지만 조선과 비교할 수는 없다.
조선은 임진왜란 7년 동안 그 미친 짓이 벌어진 전쟁터였다.
민간 희생은 말하기도 끔찍하다. 예컨대, 거지처럼 산 사람들.

'용인전투 현장에는 활과 화살, 칼, 창, 곡식, 의복, 장식이 낭자하게 버려져 개울을 메우고
골짜기에 가득하여 이루 다 기록할 수 없었다. 산골짜기에 숨었던 촌민들 가운데 밤을 틈타 이를 주워
생계를 유지하여 산 자가 매우 많았다.'(박동량, '기재사초' 임진일록 7월)
평양전투에서 패전한 고니시 유키나가 부대는 한성 도성 백성을 모조리 죽였다.(1593년 1월 1일 '선조수정실록')

또 거지처럼 살지도 못한 사람들.
'거지가 매우 드물다. 두어 달 사이에 다 굶어 죽었기 때문에(數月內已盡餓死) 걸식하는 사람이 보기 드물다고 한다.
혼자 가는 사람이 있으면 산짐승처럼 거리낌 없이 쫓아가 죽여 잡아먹는다니 사람 씨가 말라 버리겠다.
'(오희문, '쇄미록', 1594년 4월 3일) 한마디로 지옥이었다.

히데요시의 광기 는 자기 백성을 도탄에 빠뜨렸고, 조선 백성을 바닥 없는 지옥으로 떨어뜨렸다.
전쟁터가 한반도 안에 있는 한, 이겨도 피해는 넓고 깊다.

427년이 지난 지금, 어떻게 전쟁을 치를 것인가.

광기(狂氣)는 임진년보다 강하다.
전선은 대한민국에 초집중돼 있다.
지도부 자세는 어떠한가. 자신하는가, 혹은 자만하는가. 어떤 무기와 어떤 전술로 광기에 대적할 것인가.


출처 :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19/08/07/2019080700159.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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