멀리서 오신다는 도반 스님과 터미널 근처에서 만나기로 약속을 했다.
아직 촌스러운 티가 나는 다방 계단을 올라가는데 이미자 노래가 들려왔다.
“옛날~에 이 길은 꽃가마 타고 말탄님 따라서 시집가던 길♬···.” 가끔 듣던 노래라 귀가 번쩍 뜨였다.
모친이 즐겨 부르셨는데 갑자기 시골에 혼자 계시는 어머니 생각이 났다.
“음, 오랜만에 옛날 생각하면서 노래나 좀 들어볼까?” 설레는 마음으로 문을 열고 들어가 자리에 앉았다.
손님은 없고 나이가 지긋한 보살님 혼자 계셨다.
“어머, 스님은 어디서 오셨어요? 저도 절에 다녀요.” 물을 갖다 주며 보살님이 말씀하셨다.
“아 네, 그냥 지나가다 들렀습니다.” “그러세요? 스님, 이 노래가 좀 그렇지요? 제가 바꿔드리겠습니다.
” 말릴 새도 없었다. 잠시 후 유명한 스님이 독경하는 <금강경> 염불이 흘러나왔다.
“이런, 그냥 두셔도 되는데···.”
한 곤충학자가 애벌레가 나비 되는 과정을 오랫동안 관찰했다.
나비는 작은 고치구멍을 뚫고 나오기 위해 몸부림을 치고 있었다.
긴 시간 애를 쓰고 있는 나비가 안쓰러워 가위로 고치의 구멍을 넓게 잘라 주었다.
하지만 고치에서 나온 나비는 날개를 질질 끌며 바닥을 왔다 갔다 하더니 결국 죽어버렸다.
작은 고치 구멍을 빠져나오려 애쓰면서 날개의 힘을 키워야 하는데
학자의 지나친 배려가 나비를 죽음으로 몬 것이다.
배려란 참 아름답고 편한 것이다.
그러나 원치 않는 지나친 배려는 오히려 상대방을 지치게 하고 삶을 더 팍팍하게 만든다.
나는 배려라고 생각했는데 상대방은 불편하고 상처가 될 수도 있다.
적절한 배려는 그 사람을 위로하고 격려하며 살아가는데 큰 힘이 되지만
지나칠 때에는 자발적으로 성장할 수 있는 능력을 해칠 수 있다.
배려라고 포장된 일방적인 불통일수도 있는 것이다.
때로는 알아도 모르는 척 슬쩍 넘어가 주는 것도 괜찮다.
배려도 지혜로워야 한다. 다음에 그 다방에 다시 가게 되면 이렇게 말해야 겠다.
“보살님, 저번에 들었던 이미자 노래 좋던데 한 번 틀어 주실래요?”
- 삼척 천은사 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