낙 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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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하은파파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댓글 2건 조회 208회 작성일 19-11-04 19:50본문
낙 엽
- 구르몽 -
시몬, 나무 잎새 져버린 숲으로 가자.
낙엽은 이끼와 돌과 오솔길을 덮고 있다.
시몬, 너는 좋으냐? 낙엽 밟는 소리가.
낙엽 빛깔은 정답고 모양은 쓸쓸하다.
낙엽은 버림받고 땅 위에 흩어져 있다.
시몬, 너는 좋으냐? 낙엽 밟는 소리가.
해질 무렵 낙엽 모양은 쓸쓸하다.
바람에 흩어지며 낙엽은 상냥히 외친다.
시몬, 너는 좋으냐? 낙엽 밟는 소리가.
발로 밟으면 낙엽은 영혼처럼 운다.
낙엽은 날개짓 소리,
어쩌면 그것은 여인의 옷깃 스치는 소리
시몬, 너는 좋으냐? 낙엽 밟는 소리가.
가까이 오라, 우리도 언젠가는 가벼운 낙엽이리니
벌써 밤이 되고, 바람은 우리를 휩쓴다.
시몬, 너는 좋으냐? 낙엽 밟는 소리가
【감상】
이 시는 1889년 문예지 메르퀴르 드 프랑스(Mercure de France)를 창간해 상징주의를 옹호하는 비평과 미학이론을 발표해 뛰어난 업적을 남긴 레미 드 구르몽의 대표적인 상징시로 오늘날에도 전 세계적으로 널리 애송된다.
초기 프랑스 상징주의를 대표하는 시인으로 보들레르와 베를레느․구르몽은 모두 낙엽에 관한 시로 유명하다. 이들 세 시인의 낙엽은 죽음과 영혼과의 교감(交感)을 암시한다. 보들레르가 숲을 묘사하는 소네트 교감(Correspondances)을 통해 제시한 상징 시학의 기본 원칙은 물질적 사물이나 자연과 그에 상응하는 마음의 상태를 암시하는 것이 시라는 것. 이렇게 해서 낙엽의 이미지는 상징주의를 대표하는 심상이 된다.
구르몽의 시에는 그의 독특한 감각과 상상으로 부조된 ‘시몽’이란 여성에 대한 깊고 뜨거운 애정이 잠겨 있다. 그리고 반복 기법에는 오는 효과가 이들 시의 묘한 매력을 더해 주고 있다. 가령, ‘낙엽’에서는 ‘시몬, 너는 좋으냐, 낙엽 밟는 소리가’가 후렴처럼 반복되어 있고, ‘눈’에서는 각 연의 서술어가 매연마다 거듭되는 것이 그것이다.
이 시는 지성과 관능이 미묘하게 융합되어 독특한 분위기를 자아내는 낭만적 서정시이다. 가을 낙엽을 시의 제재로 삼아 인생에 대한 단상을 상징적으로 노래하고 있다.
시의 첫 구절에서 청유형 어미를 활용해 상징적인 여성인 ‘시몬’에게 가을숲으로 가자고 권유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시몬, 너는 좋으냐? 낙엽 밟는 소리가.’라는 표현을 후렴구처럼 반복 사용함으로써, 시에 전체적인 통일성과 음악성을 부여함과 동시에 묘한 매력을 더해주고 있다.
구르몽의 시에는 그의 독특한 감각과 상상으로 부조된 ‘시몬’이란 여성에 대한 깊고 뜨거운 애정이 잠겨 있다. 그리고 반복 기법에는 오는 효과가 이들 시의 묘한 매력을 더해 주고 있다.
모윤숙님의 ‘렌의 애가’에 등장하는 안타까운 님의 이름으로 우리에게 친숙해진 ‘시몬(Simone)’은 구르몽의 낙엽에서도 속삭이듯 등장하고 있는데, 실제로 구르몽이 사랑했던 여자의 이름이라고 한다.
면역계의 이상으로 온몸에 염증이 생겨나는 낭창(루푸스)을 앓아 얼굴이 흉해져서 외출을 거의 하지 않고 살았다고 한다. 그래서 “시몬, 너는 좋으냐, 낙엽 밟는 소리가?”의 여운이 더욱 애절하게 들린다.
“시몬, 너는 좋으냐, 낙엽 밟는 소리가?” 후렴으로 자꾸 반복되고 있는 이 소리는 애절하다 못해 원망스럽기까지 하다. 또 원문의 “Les feuilles mortes”는 분명히 낙엽이긴 하지만, 프랑스어의 ‘죽은 이파리’라는 낙엽의 암울한 이미지보다는 우리말 낙엽은 그냥 ‘떨어지는 이파리’라는 의미가 짙기에, 그 아픔이 매우 약하게 느껴진다.
“시몬, 너는 좋으냐, 낙엽 밟는 소리가?”라는 번역은 죽음에 대한 연상보다는 그냥 낭만적인 속삭임 소리로 들려오기에 학창시절 우리에게 널리 얼려진 애송시가 되었을 게다. 다시 말하면 구르몽의 낙엽이라는 원작시는 보통 우리말 번역시보다 훨씬 더 어둡고 슬프다고 한다.
“가을은 시간 없는 종말처럼 그렇게 달콤하고 즐겁다.”라고 구르몽이 이야기하듯이 이런 시인의 말을 들으면 우리가 달콤한 속삭임으로 ‘낙엽’을 낭송하는 것이 오히려 시인의 의도에 더 맞지 않나 하는 생각도 든다.
그러나 “우리도 언젠가는 가여운 낙엽이리니”할 때의 시인의 목소리는 죽음의 그림자로 젖어든다. 프랑스 시인에게서 “시간 없는 종말처럼…달콤하고 즐거운” 가을의 이미지는 “낙엽들의 날개짓 소리, 어쩌면 그것은 여인의 옷깃 스치는 소리.”라는 시구에서 느껴진다. 이 말은 ‘낙엽은 영혼처럼 운다’라는 앞 시구와 충돌하면서 무슨 초상집에서 여인의 향수 냄새를 맡는 것 같은 이상야릇한 쾌감을 준다.
그것은 낙엽밟는 소리가 죽음을 연상시키면서 “하늘로 날아가네” 같은 즐거움을 선사한다. 동시에 여인의 옷깃 스치는 소리와 같은 느낌이 묘한 성적 쾌감을 불러 일으킨다. 이들 이미지는 물론 낙엽 밟는 소리의 느낌을 격정적으로 묘사한 것이다. 그것은 날개짓 소리, 여인의 옷깃 스치는 소리 같기 때문이다.
구르몽은 “모든 시는 몸과 관련된 일이다. 말하자면 글자 그대로 진실(real)해야 하며 몸에 느낌을 주어야 한다”라고 했다. 이런 육감적 이미지가 “여인의 옷깃 스치는 소리”다. 구르몽의 이런 참신한 이미지성 때문에 에즈라 파운드나 T. S. 엘리어트가 그토록 존경했고, 이미지즘에 실제로 영향을 많이 끼쳤다고 할 수 있다.
이 시는 정형시에 가까운 각운(-mortes, -emporte, -morte)의 어두운 음상징(音象徵)을 바탕으로 이상하리만큼 다정하고 달콤한 죽음의 속삭임이나 유혹을 반추한다. 상징의 매력이 모호성이라면 바로 이런 시를 두고 한 말이리라.
가까이 오라(이리 오렴이라고도 번역함)는 이하의 말미 시구에서처럼 시의 의미는 분명 따스하고 달콤하기까지한 죽음에의 초대다. 그러나 이런 느낌은 죽음이 아니라 “시간 없는 종말”처럼 다정하고 즐겁게만 느껴진다.
댓글목록
임기정님의 댓글
임기정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시가 얼마나 좋던지 이발소까지 걸려있던 낙엽
넌 좋으냐 낙엽밟는 소리가
네
사부작
오랫만에 낙엽 읽어보네요
하은파파님 쌩유
하은파파님의 댓글의 댓글
하은파파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방장님도 많이 읽었고
읽었던 시리라 봅니다
저도 무지 많이 들었고 읽었고
시몬 너는 아느냐
개미 허리부러지는 소리를...ㅎㅎㅎ
이렇게 읽기도 했답니다
중딩 고딩때지요
그래도 꿈이 있고 시를 사랑했던 그때
그시절이 좋았든것 같아요
그리워라 그때 그시절...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