벗이여, 어디가서 나를 찾는가? 보라, 나는 너의 곁에 있다. 나의 어깨가 그대의 어깨에 기대어 있다. 절이나 교회에서 나를 찾지 말라. 그곳에 나는 없다.
인도의 성스러운 불탑들 속에도 회교의 찬란한 사원에도 나는 없다. 어떠한 종교의식 속에서도 나를 발견할 수 없다 목둘레로 다리를 꼬고 앉아 요가 수행을 해도 채식주의를 철저히 지킨다해도 그리고 굳은 결심 속에 속세를 떠난다 해도 그대는 나를 발견하지 못할 것이다
그대여 진정으로 나를 찾는다면 지금 이 순간에 나를 볼 수 있으리라 바로 지금 이 순간 속에서 나를 만날 수 있으리라
(까비르는 말한다) '친구여, 나에게 말해다오, 무엇이 신(神)인가?'
신은 숨 속의 숨이다.
까비르 KABIR(1440 ~ 1518)를 아는가?
까비르를 알아야 한다. 아니, 적어도 까비르를 알고자 노력해야 한다. 까비르는 1440년경 인도 비하르州 베나레스에서 가난한 과부의 사생아로 태어나 이내 어머니에게 버림을 받고 업동이로서 베짜는 직조공이었던 회교도 집안에서 자라서 평생 베를 짜며 평범한 삶을 살다 갔지만 그의 집에는 힌두교의 사두와 요기, 회교의 파키(수행자)와 수피(회교의 신비주의자)들의 방문이 끊이지 않은 위대한 영혼의 소유자였다.
인도 민중문학民衆文學의 아버지로 불리는 그는 글을 배우지 않아, 단 한 줄의 시도 쓰지 않았다고 한다. (왜? 글을 모르니까)
하지만, 그는 인도 신비주의의 대표적인 구술口述시인으로서 시성詩聖이라 일컫는 <타골>과 <마하트마 간디>의 정신적인 스승이기도 하다.
그의 생애生涯는 그저 베짜고 물긷고 시장에 가는 것이 전부로 보였을 정도이지만, 신神을 향한 헌신과 사랑의 노래는 입에서 입으로 전해졌다.
까비르의 신神은 기독교에서 말하는 유일唯一의 초월신超越神도 아니요, 그렇다 해서 범신론汎神論도 아니다. 추상적이거나 맹목적인 존재가 아닌 그 자신의 체험을 바탕으로 한 각성된 영혼의 상태로서 신神을 말하고 있다.
그의 신神에 대한 사랑은 현세現世에서 생활하는 매 순간순간의 체험을 통해 구체화 할 수 있는 그런 사랑과 절대적 헌신獻身이다.
그는 형식적인 모든 종교와 명상마저 거부한다. 종교라는 이름 아래 행해지고 있는 어떤 형태의 조직이나 권위, 그리고 물질적 타락을 거부한 채 신神에 대한 순수한 사랑과 헌신만을 강조한다.
작금 이 땅에서도 종교의 테두리 속에서 얼마나 어리석은 일들이 많이 벌어지고 있는가. 종교간 다툼이 문명의 충돌로 비쳐져 세계의 종말을 가져올 수도 있다는 경고까지 있는 현실을 보면 인류는 미래에 어떤 선택을 할 것인가.
일찌기 석가모나 부처님께서도 진리는 결코 말할 수 없는 것이라 가르쳤다. 유마경에서도 전해지는 무설설無說說 침묵의 소리를, 영혼의 교감을 통해서만 체득이 가능하리라. 자연 앞에 경건한 마음으로 서서 꽃이 피고, 새가 울고, 바람불고, 물흐르는 가운데 전해져 오는 진리의 소식에 감사해야 한다.
욕심을 채우기 위해 온갖 비리와 범죄를 부끄러워 하지않는, 후안무치한 행위를 멈추고 순수한 영혼의 떨림에 응답해야 한다.
까비르의 죽음도 의미심장하다.
그의 시신을 두고 다툴 힌두교 제자들과 회교 제자들을 위해 죽은 뒤, 일정기간 천으로 덮어둘 것을 당부한 그 마음에 이르면... 그야말로 신비하다.
나중에 천을 들어보니 몸은 어디로 가고 꽃 몇송이만이 남아있었다는 거룩한 죽음.
힌두교 제자들은 그 꽃을 화장하여 강가에 뿌리고, 회교 제자들은 땅에 묻어 묘지를 만들었다는 이야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