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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고 싶은 날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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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profile_image 안희선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댓글 4건 조회 1,571회 작성일 15-10-06 00:39

본문

고 싶은 날이 있습니다



음악에 압도되어 버리고 싶은 날이 있습니다.
음악이 너무 가슴에 사무쳐 볼륨을 최대한 높여 놓고
그 음악에 무릎 꿇고 싶은 날이 있습니다.


내 영혼의 깃대 위에 백기를 달아
노래 앞에 투항하고 싶은 날이 있습니다.
음악에 항복하고 처분만 기다리고 싶은 저녁이 있습니다.
지고 싶은 날이 있습니다.


어떻게든 지지 않으려고 너무 발버둥치며 살아왔습니다.
너무 긴장하며 살아왔습니다.
지는 날도 있어야 합니다.
비굴하지 않게 살아야 하지만 지지 않으려고만 하다 보니
사랑하는 사람, 가까운 사람,
제 피붙이한테도 지지 않으려고 합니다.


지면 좀 어떻습니까.
사람 사는 일이 이겼다 졌다 하면서 사는 건데
절대로 지면 안 된다는 강박이
우리를 붙들고 있은 지 오래되었습니다.


그 강박에서 나를 풀어 주고 싶습니다.
폭력이 아니라 사랑에 지고 싶습니다.
권력이 아니라 음악에 지고 싶습니다.


돈이 아니라
눈물나도록 아름다운 풍경에 무릎꿇고 싶습니다.
선연하게 빛나는 초사흘 달에게 항복하고 싶습니다.
침엽수 사이로 뜨는 초사흘 달,
그 옆을 따르는 별의 무리에 섞여
나도 달의 부하,
별의 졸병이 되어 따라다니고 싶습니다.


낫 날 같이 푸른 달이 시키는 대로 낙엽송 뒤에 가 줄 서고 싶습니다.
거기서 별들을 따라 밤하늘에 달배, 별배를 띄우고 별에 매달려
아주 천천히 떠나는 여행길에 따라가고 싶습니다.
사랑에 압도당하고 싶습니다.
눈이 부시는 사랑,
가슴이 벅차 거기서 정지해 버리는 사랑,
그런 사랑에 무릎 꿇고 싶습니다.


진눈깨비 같은 눈물을 뿌리며
사랑하는 사람을 만나러 가고 싶습니다.
눈발에 포위당하고 싶습니다.
두 손 두 발 다 들게 하는 눈 속에 갇히고 싶습니다.
허벅지까지 쌓인 눈 속에 고립되고 싶습니다.
구조신호를 기다리며 눈 속에 파묻혀 있고 싶습니다.


나는 그동안 알맞게 익기만을 기다리는 빵이었습니다.
적당한 온도에서 구워지기만을 기다리는
가마 속의 그릇이었습니다.


알맞고 적당한 온도에 길들여진 지 오래되었습니다.
오븐 같은 공간,
가마 같은 답답한 세상에 갇힌 지 오래되었습니다.
거기서 벗어나는 날이 있어야 합니다.
산산조각 깨지는 날도 있어야 합니다.
버림받는 날도 있어야 합니다.


수없이 깨지지 않고,
망치에 얻어맞아 버려지지 않고
어떻게 품격있는 도자기가 된단 말입니까.
접시 하나도 한계온도까지 갔다 오고 나서야 온전한 그릇이 됩니다.


나는 거기까지 갔을까요.
도전하는 마음을 슬그머니 버리고 살아온 건 아닌지요.
적당히 얻은 뒤부터는 나를 방어하는 일에만 길들여진 건 아닌지요.
처음 가졌던 마음을 숨겨 놓고 살고 있지는 않은지요.
배고프고 막막하던 때 내가 했던 약속을 버린 건 아닌지요.
자꾸 자기를 합리화하려고만 하고
그럴듯하게 변명하는 기술만 늘어 가고 있지는 않은지요.


가난한 마음을 잃지 않아야 합니다.
가난했기 때문에 정직하고 순수했던 눈빛을 잃지 않아야 합니다.
적당한 행복의 품에 갇혀 길들여지면서
그것들을 잃어 가고 있다면 껍질을 벗어야 합니다.


우리가 가고자 했던 곳이 그 의자,
그 안방이 아니었다면
털고 일어서는 날이 있어야 합니다.
궤도를 벗어나지 않고 어떻게 우주까지 날아갈 수 있습니까.
제 목청의 가장 높은 소리를 넘어서지 않고
어떻게 득음할 수 있습니까.


소리의 끝을 넘어가고자 피 터지는 날이 있어야 합니다.
생에 몇 번, 아니 단 한 번만이라도
내 목소리가 폭포를 넘어가는 날이 있어야 합니다.
너무 안전선 안에만 서 있었습니다.
그 안온함에 길들여진 채 안심하던 내 발걸음,
그 안도하는 표정과 웃음을 버리는 날이 하루쯤은 있어야 합니다.
그날 그 자리에 사무치는 음악,
꽁꽁 언 별들이 함께 있으면 좋겠습니다.





                                                                                           /  도종환



 

 



뭔가,  감상에 갈음하는 말을 남기고 싶지만..
 
(시마을 회원님들의 건안 . 건필하심을 먼 곳에서 기원하며)


                                                                                                   - 희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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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목록

kgs7158님의 댓글

profile_image kgs7158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꽃잎은 하염없이 바람에 지고  만날날은 아득타 기약이 없네...
무어라 맘과맘은 맺지못하고 한갓되이 풀잎만 맺으려는가
바람에 꽃이지니 세월 덧 없어 만날길은 뜬구름 기약아 없네

조은글 즐감하고갑니다 행복한 하루들 되소서^^

뒤에서두번째님의 댓글

profile_image 뒤에서두번째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세상을 사랑하는 사람
가슴이 따뜻한 사람
상대를 아껴주는 마음을 가진사람
이런 사람들이 가질수 있는마음이 져주고 싶은 마음 아닐까 싶네요
좋은글 감사합니다 선생님...

안희선님의 댓글의 댓글

profile_image 안희선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귀한 말씀에 감사드립니다

지금,여긴 눈이 내린답니다 (웃음)

- 암튼, 여긴 사람이 살기엔 매우 부적합하단 느낌요 (뭐, 이딴 데가 다 있는지)


건, 그렇구..

늘, 건강하세요

- 지가 건강을 잃고 보니, 세상 만사 모든 게 뜻 없단 생각이 들어서요

우선 사람이 지 몸이 건강해야 , 시를 쓰던.. 시를 읽던 할 수 있기에  (ㄸ, 웃음)


그건 정말 그렇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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