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다의 살점을 떼어 갖다놓았다 접시처럼 생긴 작은 파란 호수 호숫가 주위를 가득 메운 엉덩이들 호수엔 파도는 나타나지 않고 작은 호수 속에 아직 물고기는 없다 동그란 무대 위에 하얀 장화 신은 여 조련사 호루라기로 마법을 걸더니 관중의 눈동자를 모으고 호루라기 소리와 함께 돌고래 두 마리가 조련사 앞에 무대 위로 미끄러지며 올라온다 관중석에선 환호의 갈채를 만들고 호수 속으로 다시 들어가더니 호수 속은 잔잔함이 잠시 침묵을 지키며 공중으로 돌고래 두 마리가 날아오르더니 바다의 날치처럼 솟아오른다 꼬리지느러미로 물 위를 걸어 다니고 조련사가 큰 동그라미를 들고 있으면 동그라미로 과녁을 관통하는 화살이 된다 관중석에서 박수소리로 파도를 만들고 휘파람을 풍선 터트리듯 펑펑 터트린다 관중석에 한 돌고래가 큰 풍선을 꼬리로 던지면 손과 손들은 돌고래가 주는 익살을 받으려 하고 조련사의 호루라기 마법이 풀리자 돌고래들은 물 위에서 다시 점프로 인사를 한다.
시마을 同人
<감상, 그리고 한 생각>
시가 시인의 체험에서 비롯된 관조觀照, 또는 감각의 의도적인 조화라는데 동의 한다면...
一見, 위의 시는 돌고래의 쇼를 실감나게 전달하는 것에 그치고 있다고도 여겨진다.
그러나, "바다의 살점을 떼어 갖다놓았다" 라는 첫 行의 울림이 졸곧 따라 다녀 <잃어버린 自然>을 읽는다는 아픔이 자리하는 건 나만의 지나친 비약적 讀法일까.
(하여, 시에 있어서는 단 한 줄[絃]의 울림이 그 나머지의 모든 걸 말해줄 수도 있으니)
하긴, 우리네 삶이라 하여 조련사 호루라기의 획일된 指示에 따라 움직이는 저 돌고래들의 서글픈 Show와 다를 바 무엇인가.
온갖 사회적 규범과 지시의 호루라기 소리에 의해 떠밀리며 혹은, 서로를 그악스레 떠밀며 <現實生活>이라는 수조水槽 안에 갇혀 사는 우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