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부하다 죽어라
머리 깎은 처사 處士로 살지 마라 ! / 혜암 큰스님의 마지막 시봉 행자가 되다 - 문광
慧菴 스님 (1920 ~ 2001)은 1920년 전남 장성군 장성읍 덕진리에서 출생해
1946년 7월15일 합천 해인사에서 인곡 스님을 은사로 득도했다.
같은 해 효봉 스님을 계사로 사미계를 수지했고, 1948년 상월 스님을 계사로 비구계를 수지했다.
1947년 문경 봉암사에서 성철, 청담, 보문, 향곡 스님등 20여 스님과 4년결사안거를 성만한 후
해인사 선원, 송광사 선원, 통도사 극락암과 범어사선원, 태백산 동암, 지리산 상무주암, 칠불암 등
제방의 선원에서 초지일관용맹정진으로 수선에 진력해왔다.
평생을 성철 스님과 함께 정진하면서 해인사 가야총림을 이끌었고, 성철 스님이 입적한 이후에는
가야총림의 방장을 맡아 한국불교의 정신적 지주역할을 담당해 왔다.
성품이 대쪽처럼 곧고 적극적이어서 잘못을 보고 그냥 넘기는 일이 없을정도. 혜암 스님의 이같은 성품은
종단이 누란의 위기에 처할 때마다 앞장서서 이를 해결하는 추진력으로 일반인들에게도 잘 알려져 있다.
수면장애를 극복해야 하고, 방 안팎의 수행에 차별이 없어야 하며, 하루 한끼만 먹어도 배고픔을 몰라야 한다는 등
이른바 혜암 스님의 '토굴생활을 잘하는 이의 기준'은 공부하는 사람들 사이에서는 널리 알려져 있는 이야기.
혜암 스님은 출가 이후 입적 때까지 약 54년간 눕지 않고 수행을하는 장좌불와를 계속해 왔고,
돈오를 이루기 위해 잠을 자지 않는 등 일반상식으로는 선뜻 믿기지 않는 수행을 수십 년 간 계속해 왔다.
특히'무량법(無量法)을 닦는 데 점수(漸修)는 외도(外道)'라는 성철 스님의 말을듣고 크게 공감해
그후 함께 수행을 계속했다.
또 평생을 '절살림을 맡지 않고, 상좌를 많이 들이지 않으며, 숨어서 공부를 한다'는수행원칙을 지키며 살아왔다.
혜암 스님은 후학과 제자들에게 늘 '밥을 적게먹고, 말을 많이 하지 말며 잠을 적게 자고, 돌아다니지 말고,
책을 보지 말라'는 다섯 가지 원칙을 강조하기도 했다.
일찍이 견처(見處)에 다다랐으나 살림살이를 드러내는 것조차 부질없는 일이라는 소신으로
따로 오도송(悟道頌)을 짓지 않는 독특한 면을 보여주었다.
文光 : 동국대 불교학술원 외래교수.
2001년 해인사 원당암에서 각안 스님을 은사로 출가해
직지사에서 성수 큰스님을 계사로 비구계를 수지했다.
동국대학교 선학과·불교학과를 졸업했으며 연세대학교 중문학과에서 학사와 석사학위를 받았다.
한국학중앙연구원 철학과 박사학위를 취득했다. 2013년 통광 스님으로부터 전강을 받았으며
현재 대한불교조계종 교육아사리, 동국대학교 불교학술원 외래교수로 활동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