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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옮긴글] 김수영의 문학과 선(禪)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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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profile_image 선돌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댓글 0건 조회 139회 작성일 22-06-01 0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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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광스님의 한국학에세이 시즌2] <10> 김수영의 문학과 선(禪)
  •  문광스님/조계종 교육아사리·동국대 HK 연구교수
  •  승인 2022.05.31 15:19
  •  댓글 1

김수영의 불교적 해석…‘풀’의 ‘와선’과 죽음의 변주곡

시인 김수영의 ‘시와 산문’은
‘하이데거의 예술론’을 넘어
禪과 제대로 랑데부 한 뒤
절정에서 유작시 ‘풀’로 응결

크게 죽어 도리어 살아난다는
‘대사각활’ 선정세계를
김수영은 ‘풀의 와선과
죽음의 변주곡’을 통해 완성
김수영(1921~1968)은 그의 트레이드마크인 강렬한 눈빛에서 “바로 보마”라는 의지가 드러나고 있다. 시인 황동규는 늘 김수영의 눈빛에 대한 이야기를 시에서 회상하곤 한다.
김수영(1921~1968)은 그의 트레이드마크인 강렬한 눈빛에서 “바로 보마”라는 의지가 드러나고 있다. 시인 황동규는 늘 김수영의 눈빛에 대한 이야기를 시에서 회상하곤 한다.

최근 정목스님의 유나방송에서 ‘불교의 관점에서 새롭게 해석한 김수영의 ‘풀’’이라는 나의 새로운 김수영론이 방영되었다. 김수영의 임종게와도 같은 마지막 시 ‘풀’은 세상을 뜨던 해인 1968년에 썼던 산문 ‘와선(臥禪)’과 함께 읽어야 제대로 된 분석이 가능하고 시인 김수영의 본질에 접근할 수 있다는 내용이었다.

이는 한국의 문학계와 평론가, 시인들에게 공식적으로 김수영의 재해석을 제시한 것이며, ‘김수영 다시 읽기’를 요청한 것이다. 그리고 개인적으로는 20대 10년 동안 김수영의 문학과 사상을 가르쳐 주셨던 스승 유중하 선생님에게 50대에 제출하는 제자의 마지막 기말 리포트의 성격도 함께 가지는 것이었다.

김수영과 불교

김수영은 ‘반시론’이라는 자신의 대표적인 시론(詩論)에서 ‘하이데거의 릴케론’을 언급하며 “뚫고 나가고 난 뒤보다는 뚫고 나가기 전이 더 아슬아슬하고 재미있다”고 말하고 있다. 그리고는 “여태껏 시를 긁적거리게 하고 있는 것은 어머니가 농사를 짓는 것 이외에 불교를 믿고 있다는 것이 또한 무언중에 나에게 영향을 주고 있는 것 같다”고 하면서 “결국 내 자신의 되지 않은 문학행위도 따지고 보면 노모가 절에 다니는 거나 조금도 다를 게 없다”는 의미심장한 일구(一句)를 내뱉고 있다.

김수영이 거의 외울 만큼 샅샅이 진단해 보았다고 했던 ‘하이데거의 릴케론’은 산문 ‘와선’에 와서 그 본격적인 해부의 실상을 보여준다. 김수영의 시와 산문은 하이데거의 예술론을 넘어 불교의 선(禪)과 제대로 랑데부하고 난 뒤 그 절정에서 마지막 유작시 ‘풀’로 응결되었다. ‘풀’이라는 시는 김수영 미학의 정수인 ‘죽음과 사랑의 대극(對極)’을 온전히 보여줌과 아울러 시선(詩禪)이 일여(一如) 함을 실증해 보인 작품이다. 불교와 선(禪)을 투과하지 않은 ‘풀’에 대한 해석과 평론은 수능시험 준비를 위한 국어문제집 풀이 수준에서 한 걸음도 나아가지 못한 것이다. “우리 시단에 가장 필요한 것이 진정한 난해시”라고 외쳤던 김수영의 ‘난해(難解)’의 의미는 불가해(不可解)가 아니라 선해(禪解)였다는 것을 나는 스님이 되고 나서야 알게 되었다.

서울 도봉구 방학동 김수영 문학관에 전시되어 있는 그의 좌우명 ‘상주사심(常住死心)’.
서울 도봉구 방학동 김수영 문학관에 전시되어 있는 그의 좌우명 ‘상주사심(常住死心)’.

시인의 좌우명 ‘상주사심’

김수영의 부인 김현경은 남편의 좌우명이 ‘상주사심(常住死心)’이었다고 한다. 서울 도봉구에 마련된 김수영 문학관에는 시인의 작업실이 그대로 재현되어 있는데 벽면에 저 네 글자가 걸려 있다. 부인은 저 문구에 대해서 어디에 있는 말인지를 물어보았고 시인은 불경에 있는 구절이라고 했다고 한다. 하지만 아무리 찾아봐도 불경과 조사어록에 저런 구절은 없다. 김수영답게도 불교 관련 서적을 보다가 자기 나름대로 짜깁기를 해서 만든 말임이 틀림없다. ‘항상 죽는 마음에 주한다’는 저 문구는 김수영 이해를 위한 가장 중요한 언명이 될 것이다.

김수영은 “어떻게 잘 죽느냐, 이것을 알고 있는 시인을 ‘깨어 있는’ 시인이라고 부르고, 이것을 완수한 작품을 ‘영원히 남을 수 있는 작품’”이라고 하면서 “모든 시는 어떻게 자기 나름으로 죽음을 완수했느냐의 문제를 검토하는 방법”이라고 했다. 그는 ‘제정신을 갖고 사는 사람은 없는가’라는 글에서 “몸부림은 칠 줄 알아야 한다. 그리고 가장 민감하고 세차고 진지하게 몸부림을 쳐야 하는 것이 지식인이다. ‘진지하게’라는 말은 가볍게 쓸 수 없는 말이다”라고 하였다. 이 말들은 출가 전부터 출가한 이후에 이르기까지 나의 온몸을 관통하면서 살아 숨 쉬고 있는 구절들이다. 생사(生死)를 해탈하겠다는 수행자의 구도심과 사심(死心)에 상주(常住)하겠다는 시인의 처절한 몸부림 사이에 간극은 없는 것이다.

김수영은 ‘사랑의 변주곡’에서 ‘사랑을 만드는 기술’과 ‘눈을 떴다 감는 기술’을 말한 바 있다. 이것은 ‘참여시의 정리’에서 말한 ‘죽음을 통해서 생명을 획득하는 기술’과 다른 것이 아니다. ‘와선’은 시체는 남겨놓는 보들레르에 비해 자기의 시체마저 잡아먹는 릴케를 넘어 시체의 조그마한 흔적조차 남기지 않는 헨델의 ‘완전무결한 망각의 음(音)’을 발견한 기쁨을 읊은 글이다. ‘바깥에서 들리는 소리가 까맣게 안 들렸다가 다시 또 들릴 때 부처가 나타난다’라는 선(禪)과 헨델의 메시아가 보여준 완전한 망각의 음을 함께 논하며 시인은 자신의 작품을 잊어버려야 한다는 김수영 특유의 시학(詩學)을 전개했다. 크게 죽어서 도리어 살아난다는 선가(禪家)의 대사각활(大死却活)의 선정(禪定)의 세계를 시인 김수영은 ‘풀의 와선과 죽음의 변주곡’을 통해 미학적으로 완성해 놓았던 것이다.

34세에 쓴 시 ‘구라중화(九羅重花)’에서 “죽음 우에 죽음 우에 죽음을 거듭하리”라고 했던 김수영은 48세에 ‘풀’의 ‘와선’이라는 미학을 거쳐 죽음을 통해 다시 영원한 생명을 획득했다. 시인이 남긴 생의 마지막 시 구절은 “날이 흐리고 풀뿌리가 눕는다”였다. 하지만 우리는 그 바로 앞 행이 “바람보다 먼저 웃는다”였음은 주목하지 못했다. 완전한 죽음 전에 해탈의 웃음이 있었음을 우리는 모르고 있었던 것이다. 그렇게 시인의 죽음은 와선의 선열(禪悅)과 함께하고 있었다.

“그릇된 명상이 아닐거다”

김수영의 발심(發心)이 보이는 시는 25세 때인 1945년에 쓴 ‘공자의 생활난’이다. 여기에서 그는 “동무여 이제 나는 바로 보마 ··· 그리고 나는 죽을 것이다”라고 외친 바 있다. 공자는 “조문도 석사가의(朝聞道 夕死可矣)”라 하여 ‘듣는다(聞)’라고 했지만 김수영은 ‘바로 보마’라고 했다. 이 정견(正見)의 다짐은 커다랗고 날카로운 시인의 눈빛과 특히 잘 어울리는데, 죽기 바로 직전 해인 1967년에 쓴 ‘사랑의 변주곡’에서 아들에게 해 주는 마지막 말에서 그 정견의 실상이 드러나고 있다. “그것은 아버지 같은 잘못된 시간의 그릇된 명상(瞑想)이 아닐거다”라는 구절이 바로 그것인데, 이는 사랑을 만드는 기술이자 눈을 떴다 감는 기술이요, 프랑스 혁명의 기술이자 4·19에서 배운 기술이며, 광신을 가르치기 위한 것이 아니라 도시의 피로에서 너의 술을 다 마시고 난 뒤에 배우게 될 미쳐 날뛸 사랑임을 말하고 있다.

이 사랑이야말로 그릇된 명상이 아니라 바른 명상에서 비롯된 것인데, 여기에서 김수영이 말한 ‘그릇된 명상’이 아닌 ‘바른 명상’은 바로 산문 ‘와선’이 보여준 새로운 명상의 세계였으며 이는 진정한 죽음을 통해 사랑을 완성해 나가는 깨침의 과정이었다고 볼 수 있겠다.

신동엽과 황동규

최근 어떤 이들이 나에게 술을 권한 적이 있는데, 이에 대해 나는 “내 술은 이미 20대에 다 마셔버렸지. 술은 20대에 다 마셔서 끝을 봐야지 촌스럽게 아직까지 마시고 있나?”라며 우스갯소리를 한 적이 있다. 그 대부분의 술은 문학과 철학을 공부하는 사람들과 마신 것이었으며 공부를 마치고 뒤풀이인 술자리가 되어서야 제대로 된 문학 담론이 나오는 건 당연지사였다.

‘사랑의 변주곡’에 나오는 김수영의 아들은 실제 아들이 아니고 신동엽과 황동규라는 이야기를 들었던 것도 유중하 선생님과의 술자리에서였다. 여기에서 광신을 가르치기 위한 것이 아니라는 말은 신동엽을 경계한 것이며, 너의 술을 다 마시고 난 날에 사랑을 배울 거라고 한 것은 황동규를 가르친 말이라는 것이다.

유중하 선생은 김수영이라는 한 점에서 신동엽과 황동규라는 두 점이 나왔으며 이는 ‘창작과 비평’과 ‘문학과 지성’이라는 한국문학의 양대 산맥의 상징이기도 하다는 설명을 해 준 기억이 난다.

황동규 시인은 영원히 김수영을 잊지 못했던 것으로 안다. 20대 어느 날, 김수영의 기일에 도봉산에 있는 김수영 시비 앞에서 대학원 수업을 마치고 우리 선생님과 학생들이 함께 술을 마시러 갔는데 그곳에서 황동규 시인을 만났다. 그분 역시 제자들과 함께 김수영 시인의 기일을 맞이하여 묘소를 참배 왔던 것이다.

황동규 시인은 14년가량의 긴 세월을 ‘풍장(風葬)’이라는 시의 연작을 썼다. 김수영의 시 ‘풀’이 그의 산문 ‘와선’의 다른 버전이었다는 것을 알고 썼던 연작시가 바로 ‘풍장’이었을 것이다. 바람이 부는데 죽은 시체를 그대로 두어 썩게 내버려 두는 장례방법이 바로 풍장이다.

바람보다 풀이 먼저 눕고 먼저 일어난다는 김수영의 미학은 죽은 시체와도 같은 와선이라는 또 다른 명상을 통해서 나온 것임을 황동규 시인은 알고 있었던 것 같다. 황동규 시인이 불교와 선(禪)에 관해 지독한 공부를 하고 만해대상까지 받았던 것은 김수영의 영향이 아니었을지, 어디선가 한 번 만나면술 한 잔 올리면서 질문을 해봄직도 하다. 

 

[불교신문 3718호/2022년5월31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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