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국불교포럼 : 한반도 정세의 역학적 분석과 불교인의 역할
- 탄허선사의 미래학과 인왕호국경 (2022년 9월 14일) 문광 講
탄허는 1913년 독립운동가 율재(栗齋) 김홍규(金洪奎)를 부친으로 전북 김제에서 출생했다.
속명은 김택(金鐸) , 신식 학교 교육이 시작된 시절이었으나 엄격한 가통(家統)에 묶여
신교육은 엄두도 못 내고 집에서 수학했다.
20세까지 유학을 공부하다가 다시 3년간 도교에 심취하였는데,
지금 ‘노장 철학의 대가’로 손꼽히는 도교 지식도 이때에 흡수한 것이다.
탄허 스님이 입산한 것은 스물세 살 때의 일로, 17세에 성혼하여
이미 아들까지 두고 있는 상황이었다.
그는 평생의 스승을 찾아 동서남북으로 구도의 편지를 띄우기 수 년,
당시 오대산 상원사에 있던 한암 스님의 성화(聖華; 훌륭한 이름)를 듣고
편지를 낸 데서 불교와의 인연이 시작되었다.
첫 답장이 오고 다시 편지 왕래를 하기 3년,
갓 쓰고 도포 입은 유생은 “짧으면 3년, 길면 10년”을 기약하고 오대산을 찾아들었으나,
한암 스님의 인품에 매료되어 이것이 영영 탈속의 길이 되었다.
스승인 한암 스님이 입적하기까지 21년 동안 줄곧 상원사에 머물렀던 탄허 스님은
6ㆍ25 이후 동래 범어사, 통영 용화사, 삼척 영은사 등지에 잠시 몸을 담았다가
격화하는 비구.대처 싸움을 피해 다시 상원사로 갔다.
이 시기를 제외한다면 그의 승려 생활은 오대산 상원사에서 보낸 것이 대부분이다.
평생을 불교 경전 연구와 번역에 전념한 탄허 스님은
선교 양종에 수많은 업적을 쌓았고, 이러한 체계 위에서 동양의 마음을 찾으려 애쓴
대표적인 선지식이자 선지자였다.
1983년 오대산 월정사 방산굴에서 세수(世壽) 71세, 법랍(法臘) 49세로
열반에 들기 전까지 탄허 스님은 동양의 역학 원리로 어제의 역사를 되돌아보고
내일의 역사를 예지한 선지식이자 선지자였으며,
비록 몸은 산간에 머물렀으나 눈은 우주의 운행을 꿰뚫어 보았다.
文光 : 동국대 불교학술원 외래교수.
2001년 해인사 원당암에서 각안 스님을 은사로 출가해
직지사에서 성수 큰스님을 계사로 비구계를 수지했다.
동국대학교 선학과·불교학과를 졸업했으며 연세대학교 중문학과에서 학사와 석사학위를 받았다.
한국학중앙연구원 철학과 박사학위를 취득했다. 2013년 통광 스님으로부터 전강을 받았으며
현재 대한불교조계종 교육아사리, 동국대학교 불교학술원 외래교수로 활동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