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을음에 관하여 / 허영숙
내 몸에 살아 있는 불꽃, 그러나 오늘은 휘청거리는 불꽃
푸름과 붉음의 경계에서 나는 늘 바깥에 닿아 있었다 활활 사방을 다 감싸 안은 광휘도 잠시 푸른 불꽃에 다가서지 못하고 오늘은 붉은 불빛만 한 자나 더 크게 타올라서 내 생의 외벽에 그을음이 인다
심지를 바로 세우고 사소하게 깃드는 불순물을 제거하여도 푸른 내면에 쉽게 닿지 못하는 것은 너무 먼 바깥을 자주 넘보았기 때문 심지를 잘라주어야 그을음, 그 울음을 낮출 수 있다
재도 연기도 되지 못하고 오감에 캄캄하게 묻어나는 그을음
헐렁한 바람에도 결연하지 못한 옹색한 변명 바깥만 돌다 덜 연소된 생이 만든 그늘이다
푸른 불꽃에 조금 살고 붉은 불꽃에만 오래 살다간
심지의 반성이다

2006년 <시안> 詩부문으로 등단 詩集으로, <바코드> (2010) <뭉클한 구름> (2016) 시마을 작품선집 <섬 속의 산>, <가을이 있는 풍경> <꽃 피어야 하는 이유> 同人詩集 <시와 그리움이 있는 마을> 等
<감상 & 생각>
시인이 '자기소외自己疏外'를 시로써 표출하는 것처럼 아픈 일은 없다.
(일반인의 경우에도 그것은 때로 '삶에의 의의意義상실' 혹은, 정체停滯된 삶이 내지르는 회의懷疑 같은 것으로 표출되긴 하지만)
시가 '삶의 디딤돌' 인 시인에게 있어서는, 그런 소외의식을 시로 말한다는 것 자체가 시인 스스로에게 잔인한 일이라는 것이다.
하지만, 그 같은 자괴감自愧感에 그냥 주저앉는다면 시인이 굳이 이런 아픈 시를 써야할 이유도 없을 터.
현실의 횡선橫線과 이상의 종선縱線이 교차하는 곳에서 현실에 안주했던 삶이 드리우는 그늘을 직시하고, 그것의 경계를 처절히 각성하는 상황의식.
그건 물러진 삶의 심지에 다시 맹렬하게 당기는, 푸른 정신의 불꽃.
삶의 붉은 외곽에 기웃거린 '내면의 캄캄한 그을음'을 다시 아프게 정화淨化하는, 불꽃.
심지의 반성反省이 우리 모두에게 뜨겁게 선물하는, '존재 재확인'의 치열한 불꽃이 아니겠는가.
- 희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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