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가 태어나는 자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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범속을 벗어난 경지를 노래하는 것보다는
범속을 벗어나는 순간을 간신히 포착하는 시가 인간적으로,
더 정확히 말하자면 생물학적으로, 아프고 아름답다.
그런 순간이야말로 삶의 일에 비유가 되는 세계,
즉 넓게보아 알레고리의 세계와 魂 ( 혼이 실제로
존재하지 않는다 해도 결국 인간의 목마름이 만든
것이 아니겠는가 ) 의 세계,
상징의 세계가 만나는 순간이다.
그저 만나는 것이 아니라 뜨겁게 밀회(密會) 하는
순간이다.
--- 황동규 시인의 '시가 태어나는 자리'에서
황동규 시인의 그 같은 견해에 나 역시 대부분 공감하면서도,
일말一抹 가슴 한 켠이 쓸쓸해지는 이 몹쓸 기분은 무엇일까..
결국, 그런 밀회密會의 순간은 끝내 이 차가운 현실세계와는
아무런 상관도 없는 듯 하다. 어쩌면, 시를 쓴다는 것은
그같은 시적詩的 희열喜悅의 유혹에 간단間斷없이 빠지는 것과 같다.
그 같은 맥락脈絡에서 보자면, 시에서 완벽에 가까운 상징세계와의
밀회를 보여준다는 것은 ( 때때로 그에 엇비슷하게 쓰여진 힘겨운
얼굴의 시들을 대하기도 하지만 )
시를 쓰는 자者들의 자기도취처럼 보이기도 하는데..
어떤 범속凡俗의 경지를 간신히 넘어서는 순간의 포착捕捉은 분명,
시인에게는 버릴 수 없는 희열이겠으나 동시에, 이룰 수 없는
꿈의 좌절로 접어드는 고통의 또 다른 순간이기도 하다.
물론, 그 때문에 많은 시인들이 그들의 새로운 꿈을 찾기 위해
끝내 시를 포기 못하고 계속 쓰게 되는지도 모르지만..
왠지, 쓸쓸하다.
시가 태어나는 자리에... 내 꿈은 언제나 나보다 앞질러 가고
있음이, 오늘따라 더디게만 걷고있는 나를
한 없이 외롭게 한다.
- 희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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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민기09님의 댓글

"시가 태어나는 자리"는 아름답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