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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병화 시 모음 80편 /그도세상

페이지 정보

작성자 profile_image 김용호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홈페이지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댓글 1건 조회 11회 작성일 25-06-05 14:29

본문

조병화시모음 80편
☆★☆★☆★☆★☆★☆★☆★☆★☆★☆★☆★☆★
《1》
너와 나는
조병화

이별하기에 슬픈 시절은 이미 늦었다

모두가 어제와 같이 배열되는 시간 속에
나에게도 내일과 같은 그날이 있을 것만 같이
그날의 기도를 위하여
내 모든 사랑의 예절을 정리해야 한다

떼어버린 카렌다 속에 모닝커피처럼
사랑은 가벼운 생리가 된다
너와 나의 회화엔 사랑의 문답이 없다

또 하나의 행복한 날의 기억을 위하여서만
눈물의 인사를 빌리기로 하자

하루와 같이 지나가는 사람들이었다
그와도 같이 보내야 할 인생 이였다

모두가 어제와 같이 배열되는 시간 속에
나에게도 내일과 같은 그날이 있을 것만 같이

이별하기에 슬픈 시절이 돌아간 샨데리아
그늘에 서서 아무에게도 보이지 않는
작별을 해야 한다

너와 나는
☆★☆★☆★☆★☆★☆★☆★☆★☆★☆★☆★☆★
《2》
꽃을 버릴 때처럼

조병화


꽃을 버릴 때처럼
잔인한 마음이 있으리

아직도 반은 살아 있는 꽃을
버릴 때처럼
쓰린 마음이 있으리

더우기 시들은 꽃을 버릴 때처럼
애처로운 마음이 또 있으리

한동안 같이 살던 것들
같이 지낸 것들
같이 있었던 것들을
버릴 때처럼
몰인정한 마음이 있으리

아, 그와도 같이
버림을 받을 때처럼
처참한 마음이 또 있으리
☆★☆★☆★☆★☆★☆★☆★☆★☆★☆★☆★☆★
《3》
늘, 혹은 때때로

조병화

늘, 혹은 때때로
생각나는 사람이 있다는 건
얼마나 생기로운 일인가

늘, 혹은 때때로
보고 싶은 사람이 있다는 건
얼마나 즐거운 일인가

카랑카랑 세상을 떠나는
시간들 속에서

늘, 혹은 때때로
그리워지는 사람이 있다는 건
얼마나 인생다운 일인가

그로 인하여
적적히 비어 있는 이 인생을
가득히 채워가며 살아갈 수 있다는 건
얼마나 고마운 일인가

가까이, 멀리,
때로는 아주 멀리
보이지 않는 그곳에서라도
끊임없이 생각나고, 보고싶고,
그리워지는 사람이 있다는 건
얼마나 지금, 내가
아직도 살아 있다는 명확한 확인인가

아, 그러한 네가 있다는 건
얼마나 따사로운 나의 저녁 노을인가
☆★☆★☆★☆★☆★☆★☆★☆★☆★☆★☆★☆★
《4》
5월

조병화

스물을 갓 넘은 여인의 냄새를
온몸에 풍기며
온갖 꽃송이들이 물 돋은 대지에
나뭇가지 가지에 피어난다.
흰 구름은 뭉게뭉게 라일락의
숫 푸른 향기를 타고
가도 가도 고개가 보이지 않는
푸른 먼 하늘을 길게 넘어간다.
아, 오월은 여권도 없이 그저
어머님의 어두운 바다를 건너
뭣도 모르고
내가 이 이승으로 상륙을 한 달
해마다 대지는 꽃들로 진창이지만
까닭 모르는 이 허전함
나는 그 나른한 그리움에 취한다.
오, 오월이여
☆★☆★☆★☆★☆★☆★☆★☆★☆★☆★☆★☆★
《5》
가을

조병화

전투는 끝났다
이제 스스로 물러날 뿐이다
긴 그 어리석은 싸움에서
그 어리석음을 알고
서서히, 서서히, 돌아서는
이 허허로움

아, 얼마나 세상사 인간관계처럼
부끄러운 나날이었던가
실로 살려고 기를 쓰는 것들을 보는 것처럼
애절한 일이 또 있으랴

가을이 접어들며 훤히 열리는
외길, 이 혼자
이제 전투는 끝났다.
돌아갈 뿐이다.
☆★☆★☆★☆★☆★☆★☆★☆★☆★☆★☆★☆★
《6》
개울

조병화

개울에 손을 담그며
지나는 마음으로 띄우는 말이
온 세상 인간의 개울

사랑아 마르지 말라
사랑아 머물지 말라
사랑아 상하지 말라
사랑아 어둡지 말라
사랑아 처지지 말라
사랑아 돌아서지 말라
사랑아 조바심치지 말라
사랑아 노쇠하지 말라

빛으로 어둠으로 빛으로
오로지 내일로 흐르는 시내
강이 되고
바다가 되려니

사랑아
저 하늘에서까지
☆★☆★☆★☆★☆★☆★☆★☆★☆★☆★☆★☆★
《7》
곁에 없어도
조병화

길을 다하여 먼 날
우리 서로 같이 있지 못해도
그 눈 나를 찾으면
그 속에 내가 있으리

목숨 다하여 먼 날
우리 서로 같이 있지 못해도
그 생각 나를 찾으면
그 속에 내가 있으리
☆★☆★☆★☆★☆★☆★☆★☆★☆★☆★☆★☆★
《8》
고독과 그리움

조병화

쓸쓸합니다.
쓸쓸하다 한들 당신은 너무나 먼 하늘 아래 있습니다.
인생이 기쁨보다는 쓸쓸한 것이 더 많고,
즐거움보다는 외로운 것이 더 많고,
쉬운 일보다는 어려운 일이 더 많고,
마음대로 되는 일 보다는 마음대로 안 되는 일이 더 많고,
행복한 일보다는 적적한 일이 더 많은 것이라고 알고는 있지만,
이렇게 외롭고 쓸쓸할 땐 한정없이 당신이 그리워집니다.
이러한 것이 서로 사랑하는 사람들의 감정이라 하겠지만,
그 이상으로 당신이 그립습니다.
참아야 하겠지요.
견디어야 하겠지요.
참고 견디는 것이 인생의 길이겠지요.
이렇게 칠십이 넘도록 내가 아직 해탈을 하지 못하고 있는 것은
'인간의 고독'입니다.
살기 때문에 느끼는 그 순수한 고독입니다.
인생에 있어서 제일로 무서운 병은 고독입니다.
그 고독때문에 생겨나는 '그리움'입니다.
'고독과 그리움',
그 강한 열병으로 지금 나는 이렇게 당신을 앓고 있습니다.
이렇게 당신을 앓고 있는 '고독과 그리움'이
얼마나 많은 작품으로 치료되어 왔는지 당신은 알고 계실 겁니다.
지금 그 견디기 어려운 '고독과 그리움',
그 쓸쓸한 마음을 달래기 위해서 이 편지를 쓰고 있습니다.
참으로 많은 '고독과 그리운 사연'을 당신에게 보냈습니다.
세월 모르고. 멀리 떨어져 있는 당신에 대한 내 이 열병 치료는
오로지 '고독과 그리움'을 담아 보내는 이 나의 말들이옵니다.
멀리 떨어져 있기 때문에 더욱 심하게 생겨나는 이 쓸쓸함,
이 고통이 나의 이 가난한 말로써 먼 당신에게 전해졌으면 합니다.
만분지 일이라도.
어지럽게 했습니다. 난필(亂筆)을 용서하시기 바랍니다.
이제 많이 늙었습니다. 미안합니다.
☆★☆★☆★☆★☆★☆★☆★☆★☆★☆★☆★☆★
《9》
고독하다는 것은

조병화

고독하다는 것은
아직도 나에게 소망이 남아 있다는 거다
소망이 남아 있다는 것은
아직도 나에게 삶이 남아 있다는 거다
삶이 남아 있다는 것은
아직도 나에게 그리움이 남아 있다는 거다
그리움이 남아 있다는 것은
보이지 않는 곳에
아직도 너를 가지고 있다는 거다

이렇게 저렇게 생각을 해 보아도
어린 시절의 마당보다 좁은
이 세상
인간의 자리
부질없는 자리

가리울 곳 없는
회오리 들판

아 고독하다는 것은
아직도 나에게 소망이 남아 있다는 거요
소망이 남아 있다는 것은
아직도 나에게 삶이 남아 있다는 거요
삶이 남아 있다는 것은
아직도 나에게 그리움이 남아 있다는 거요
그리움이 남아 있다는 것은
보이지 않는 곳에
아직도 너를 가지고 있다는 거다
☆★☆★☆★☆★☆★☆★☆★☆★☆★☆★☆★☆★
《10》
고요한 귀향

조병화

이곳까지 오는 길 험했으나
고향에 접어드니 마냥 고요하여라

비가 내리다 개이고
개다 눈이 내리고

눈이 내리다 폭설이 되고
폭설이 되다 봄이 되고 여름이 되고

홍수가 되다 가뭄이 되고
가을 겨울이 되면서

만남과 이별이 세월이 되고
마른 눈물이 이곳이 되면서

지나 온 주막들 아련히
고향은 마냥 고요하여라

아, 어머님 안녕하셨습니까.
☆★☆★☆★☆★☆★☆★☆★☆★☆★☆★☆★☆★
《11》
공존의 이유

조병화


깊이 사귀지 마세
작별이 잦은 우리들의 생애

가벼운 정도로
사귀세

악수가 서로 짐이 되면
작별을 하세

어려운 말로
이야기
하지 않기로 하세

너만이라든지
우리들만이라든지

이것은 비밀일세라든지
같은 말들은
하지 않기로 하세

내가 너를 생각하는 깊이를
보일 수가 없기 때문에

내가나를 생각하는 깊이를
보일 수가 없기 때문에

내가 어디메쯤 간다는 걸
보일 수가 없기 때문에

작별이 올 때
후회하지 않을 정도로 사귀세

작별을 하며
작별을 하며
사세

작별이 오면
잊어버릴 수 있을 정도로
악수를 하세.
☆★☆★☆★☆★☆★☆★☆★☆★☆★☆★☆★☆★
《12》
구월의 시

조병화

인간은 누구나
스스로의 여름만큼 무거워지는 법이다.
스스로 지나온 그 여름만큼
그만큼 인간은 무거워지는 법이다.

또한 그만큼 가벼워지는 법이다.
그리하여 그 가벼움만큼 가벼이
가볍게 가을로 떠나는 법이다.

기억을 주는 사람아
기억을 주는 사람아
여름으로 긴 생명을
이어주는 사람아

바람결처럼 물결처럼
여름을 감도는 사람아
세상사 떠나는 거
비치 파라솔은 접히고 가을이 온다
☆★☆★☆★☆★☆★☆★☆★☆★☆★☆★☆★☆★
《13》
그리운 사람이 있다는 것은

조병화

살아가면서 언제나
그리운 사람이 있다는 것은
내일이 어려서 기쁘리

살아가면서, 언제나
그리운 사람이 있다는 것은
오늘이 지루하지 않아서 기쁘리

살아가면서, 언제나
그리운 사람이 있다는 것은
늙어 가는 것을 늦춰서 기쁘리

이러다가 언젠가는 내가 먼저 떠나
이 세상에서는 만나지 못하더라도
그것으로 얼마나 행복하리

아 그리운 사람이 있다는 것은
날이 가고 날이 오는 먼 세월이
그리움으로 곱게 나를 이끌어 가면서

다하지 못한 외로움이
훈훈한 바람이 되려니
얼마나 허전한 고마운 사랑이런가
☆★☆★☆★☆★☆★☆★☆★☆★☆★☆★☆★☆★
《14》
그저 그립다 말 한마디

조병화

나의 밤은 당신의 낮,
나의 낮은 당신의 밤,
세월을 이렇게 하루 앞서 사는 나의 세월
그만큼, 인생이라는 세월을
당신보다 먼저 살아가는 세월이어서
세상의 쓰라린 맛을
먼저 맛보고 지나가는 세월이지만
당신에게 전할 말이란 한 마디뿐이옵니다.
그저 그립습니다.

세상엔 천둥 벼락이 하두 많아서
하루아침에 천지가 변하는 수도 있어
한 치 앞을 모르는 인생을 살아가는 나로서
어찌, 소원 같은 것을 하겠습니까만
내게 남은 말 한마디는
그저 당신이 그립습니다.
그저 당신이 그립습니다.
☆★☆★☆★☆★☆★☆★☆★☆★☆★☆★☆★☆★
《15》
그저 그립습니다

조병화

나의 밤은 당신의 낮 나의 낮은 당신의 밤
세월을 이렇게 하루 앞서 사는 나의 세월

그 만큼 인생이라는 세월을
당신보다 먼저 살아가는 세월이어서

세상의 쓰라린 맛을
먼저 맛보고 지나가는 세월이지만
당신에게 전할 말이란 말 한마디 뿐이옵니다.

그저 그립습니다.
세상엔 천둥 벼락이 하두 많아서
하루아침에 천지가 변할 수 있어

한치 앞을 모르는 인생을 살아가는 나로서
어찌 소원 같은 것을 하겠습니까만

내게 남은 말 한마디는,
그저 그립습니다.
그저 그립습니다.
☆★☆★☆★☆★☆★☆★☆★☆★☆★☆★☆★☆★
《16》
기다림은 아련히

조병화

이제, 여름 가고 가을 가고
인생의 겨울로 접어들면서
기다림은 먼 소식처럼 아련해지며

맑게 보다 맑게
가볍게 보다 가볍게
엷게 보다 엷게
부담 없이 보다 부담 없이
스쳐 가는 바람처럼 가물가물하여라

긴 생애가 기다리는 세월
기다리면서 기다리던 것을 보내며
기다리던 것을 보내면 다시 기다리며
다시 기다리던 것을 다시 보내면
다시 또다시 기다리며
살아가는 것이 인생이어라, 하면서
이 인생의 겨울 저녁 노을
노을이 차가워라

기다릴 것도 없이 기다려지는 거
기다려져도 아련한 이 기다림
노을진 겨울이거늘

아, 사랑아

인생이 이러한 것이어라.
기다림이 이러한 것이어라
☆★☆★☆★☆★☆★☆★☆★☆★☆★☆★☆★☆★
《17》


조병화

내 손길이 네게 닿으면
넌 움직이는 산맥이 된다

내 입술이 네게 닿으면
넌 가득 찬 호수가 된다

호수에 노를 저으며
호심으로
물가로
수초 사이로

구름처럼 내가 가라앉아 돌면
넌 눈을 감은 하늘이 된다

어디선지
노고지리
가물가물
먼 아지랭이

네 눈물이 내게 닿으면
난 무너지는 우주가 된다.
☆★☆★☆★☆★☆★☆★☆★☆★☆★☆★☆★☆★
《18》
나 돌아간 흔적

조병화

세상에 나는 당신을 만나러 왔습니다.
작은 소망도 까닭도 없습니다.
그저 당신 곁에 잠시 있으러 왔습니다.

아시아 동방 양지바른 곳
경기도 안성 샘 맑은 산골

산나물 꿀 벌레 새끼치는 자리에
태어나
서울에 자라
당신을 만나 나 돌아가는 흔적
아름다움이여
두고 가는 것이여

먼 청동색 이끼 낀 인연의 줄기 줄기
당신을 찾아 세상 수 만리 나 찾아 왔습니다
까닭도 가난한 소망도 없습니다
그저 당신 곁에 잠시 있으러 왔습니다
이 세상은 사랑의 흔적
두고 가는 자리

사랑이 가기 전에 나 돌아가고 싶습니다
세상에 당신이 사라지기 전에 나 돌아가고 싶습니다
당신을 만나러 수 만리
소망도 까닭도 없이
그저 당신 곁에 잠시 나 있으러
나 찾아 왔습니다
☆★☆★☆★☆★☆★☆★☆★☆★☆★☆★☆★☆★
《19》
나는

조병화

나는 약한 벌레와 같이 살아가는 미미한 존재이오나
누구에게도 열 수 없는 외로움을 하나 가지고 있습니다

나는 그저 묵묵히 살아가는 약한 벌레이오나
누구에게도 보일 수 없는 나를 하나 가지고 있습니다

아, 그와도 같이
미미한 인생이오나

나는 누구에게도 줄 수 없는 외로움 하나 있습니다
누구에게도 보일 수 없는 나를 하나 가지고 있습니다
☆★☆★☆★☆★☆★☆★☆★☆★☆★☆★☆★☆★
《20》
나도 그랬듯이

조병화

머지 않아 그날이 오려니
먼저 한 마디 하는 말이
세상만사 그저 가는 바람이려니,
그렇게 생각해 다오
내가 그랬듯이

실로 머지 않아 너와 내가 그렇게
작별을 할 것이려니
너도 나도 그저 한세상 바람에 불려가는
뜬구름이려니, 그렇게 생각을 해다오
내가 그랬듯이

순간만이라도 얼마나 고마웠던가
그 많은 아름답고, 슬펐던 말들을 어찌 잊으리
그 많은 뜨겁고도, 쓸쓸하던 가슴들을 어찌 잊으리
아, 그 많은 행복하면서도 외로웠던 날들을 어찌 잊으리

허나, 머지 않아 이별을 할 그날이 오려니
그저 세상만사 들꽃을 스쳐 지나가는
바람이라고, 생각을 해 다오

행복하고도 쓸쓸하던 이 세상을
내가 그렇게 했듯이
☆★☆★☆★☆★☆★☆★☆★☆★☆★☆★☆★☆★
《21》
나의 사랑하는 자에게

조병화

너의 집은 하늘에 있고
나의 집은 풀 밑에 있다해도
너는 내 생각 속에 산다

너는 먼 별 창안에 밤을 재우고
나는 풀벌레 곁에 밤을 빌린다해도
너는 내 생각 속에 잔다

너의 날은 내일에 있고
나의 날은 어제에 있다해도
너는 내 생각속에 세월이다

문닫은 먼자리, 가린자리
너의 생각 밖에 내가 있다해도
너는 내 생각 속에 있다

너의 집은 하늘에 있고
나의 집은 풀 밑에 있다해도
☆★☆★☆★☆★☆★☆★☆★☆★☆★☆★☆★☆★
《22》
낙엽끼리 모여 산다

조병화

낙엽에 누워 산다.
낙엽끼리 모여 산다.
지나간 날을 생각지 않기로 한다.
낙엽이 지는 하늘가에
가는 목소리 들리는 곳으로 나의 귀는 기웃거리고
얇은 피부는 햇볕이 쏟아지는 곳에 초조하다.
항시 보이지 않는 곳이 있기에 나는 살고 싶다.
살아서 가까이 가는 곳에 낙엽이 진다.
아, 나의 육체는 낙엽 속에 이미 버려지고
육체 가까이 또 하나 나는 슬픔을 마시고 산다.
비 내리는 밤이면 낙엽을 밟고 간다.
비 내리는 밤이면 슬픔을 디디고 돌아온다.
밤은 나의 소리에 차고
나는 나의 소리를 비비고 날을 샌다.
낙엽끼리 모여 산다.
낙엽에 누워 산다.
보이지 않는 곳이 있기에 슬픔을 마시고 산다.
☆★☆★☆★☆★☆★☆★☆★☆★☆★☆★☆★☆★
《23》
내 마음에 사는 너

조병화

너의 집은 하늘에 있고
나의 집은 풀 밑에 있다해도
너는 내 생각 속에 산다

너는 먼 별 창안에 밤을 재우고
나는 풀벌레 곁에 밤을 빌리다 해도
너는 내 생각 속에 잔다

너의 날은 내일에 있고
나의 날은 어제에 있다해도
너는 내 생각 속에 세월이다

문닫은 먼 자리, 가린 자리
너의 생각 밖에 내가 있다해도
너는 내 생각 속에 있다

너의 집은 하늘에 있고
나의 집은 풀 밑에 있다해도
너는 내 생각 속에 산다
☆★☆★☆★☆★☆★☆★☆★☆★☆★☆★☆★☆★
《24》
너는 내 생각 속에 산다

조병화

너의 집은 하늘에 있고
나의 집은 풀 밑에 있다 해도
너는 내 생각 속에 산다

너는 먼 별 창안에 밤을 재우고
나는 풀벌레 곁에 밤을 빌린다 해도
너는 내 생각 속에 잔다

너의 날은 내일에 있고
나의 날은 어제에 있다 해도
너는 내 생각 속에 세월이다

문 닫은 먼 자리, 가린 자리
너의 생각 밖에 내가 있다 해도
너는 내 생각 속에 있다

너의 집은 하늘에 있고
나의 집은 풀 밑에 있다 해도
너는 내 생각 속에 산다
☆★☆★☆★☆★☆★☆★☆★☆★☆★☆★☆★☆★
《25》
널 위해서 시가 쓰여질 때

조병화

널 위해서 시가 쓰여질 때
난 행복했다

네 어둠을 비칠 수 있는 말이 탄생하여
그게 시의 개울이 되어 흘러내릴 때
난 행복했다

널 생각하다가 네 말이 될 수 있는
그 말과 만나
그게 가득히 꽃이 되어 아름다운
시의 들판이 될 때
난 행복했다

멀리 떨어져 있는 너와 나의 하늘이
널 생각하는 말로 가득히 차서
그게 반짝이는 넓은 별밤이 될 때
난 행복했다

행복을 모르는 내가
그 행복을 네게서 발견하여
어린애처럼 널 부르는 그 목소리가
바람이 되어
기류(氣流) 가득히 네게 전달이 될 때
난 행복했다

아, 그와 같이 언제나
먼 네가 항상 내 곁에 있는 생각으로
그날 그날을 적적히 보낼 때
공허(空虛)처럼
난 행복했다.
☆★☆★☆★☆★☆★☆★☆★☆★☆★☆★☆★☆★
《26》
눈 내리는 밤엔

조병화

비가 쏟아져 오면 우울한 남자의 가슴을 디디고
소리 없이 지나가는 듯 한데 --

아 오늘과 같이 눈 내리는 밤엔
여인의 따뜻한 가슴 안에 귀여운 아해처럼
내가 안겨 있는 듯한 무슨 일일까
난로 앞에선가
혹은 물끊는 화롯가 어디선가
오 밤엔
로만스의 기쁜 소식이 오락가락
나도 헤아릴 수 없는 기다림에 잠이 오락가락 --
나는 가까워오는 봄이 싫어
눈 속으로 멀리 도망하고 싶다
뒤떨어진 세월의 詩人이래서가 아니건만
팽창하는 시절이 두렵다

외투깃을 여미고 유리창을 내다본다

아 오늘과 같이 눈 내리는 밤엔
여인의 따뜻한 가슴 안에
내가 귀여운 아해처럼 안겨 있는 듯하다
☆★☆★☆★☆★☆★☆★☆★☆★☆★☆★☆★☆★
《27》
늘 혹은 때때로

조병화

늘, 혹은 때때로
생각나는 사람이 있다는 건
얼마나 생기로운 일인가

늘, 혹은 때때로
보고 싶은 사람이 있다는 건
얼마나 즐거운 일인가

카랑카랑 세상을 떠나는
시간들 속에서

늘 , 혹은 때때로
그리워지는 사람이 있다는 건
얼마나 인생다운 일인가

그로 인하여
적적히 비어있는 이 인생을
가득히 채워가며 살아갈 수
있다는 건
얼마나 고마운 일인가

가까이, 멀리, 때로는 아주 멀리
보이지 않는 그곳에서도
끊임없이 생각나고 보고 싶고
그리워지는 사람이 있다는 건
얼마나 지금, 내가
아직도 살아있다는 명확한 확인인가

아, 그러한 네가 있다는 건
얼마나 따사로운 나의 저녁 노을인가
☆★☆★☆★☆★☆★☆★☆★☆★☆★☆★☆★☆★
《28》
늘 혹은

조병화

늘, 혹은
때때로 생각나는
사람이 있다는 건
얼마나 생기로운 일인가?

늘, 혹은
때때로 보고 싶은
사람이 있다는 건
얼마나 즐거운 일인가?
늘, 혹은
때때로 그리워지는
사람이 있다는 건
얼마나 인생다운 일인가?

그로 인하여
적적히 비어있는 이 인생을
가득히 채워가며
살아갈 수 있다는 건 얼마나 고마운 일인가?

가까이, 멀리,
때로는
아주 멀리 보이지 않는
그곳에서라도
끊임없이 생각나고,
보고 싶고,
그리워지는
사람이 있다는 건
얼마나 지금,
내가 아직도 살아 있다는 명확한 확인인가?

아,
그러한 네가 있다는 건
얼마나 따사로운 나의
저녁 노을인가?
언제나 힘이되어 주는 벗이여! 님이여!
내가 사랑하는 사람이여!
나를 사랑하는 사람이여!
☆★☆★☆★☆★☆★☆★☆★☆★☆★☆★☆★☆★
《29》
늙는다는 것은

조병화

늙는다는 것은 버리며 사는 것이려니
늙는다는 것은 나누며 사는 것이려니

늙는다는 것은 물러나며 사는 것이려니
늙는다는 것은 물려주며 사는 것이려니

아, 늙는다는 것은
포기하며 사는 것이려니

초월하며 사는 것이려니
비어주며 사는 것이려니

매일이 그러하길
매일매일이 그러하길

남은 날 남은 날까지 그러하길
생각하며 다짐하며 사는 요즘

아, 늙는다는 것은
혼자 남아가길 사는 것이려니.
☆★☆★☆★☆★☆★☆★☆★☆★☆★☆★☆★☆★
《30》
달님에게

조병화

달님아, 이 세상에서 가장 소중한 것은
꿈이란다.

꿈은 사랑보다도 소중한 보석이란다.

꿈을 가진 사람은 흔들리지 않는단다.
꿈을 가진 사람은 외로워하지 않는단다.
꿈을 가진 사람은 설사 인생에 슬픔이 있다 해도
기쁨을 주는 꿈으로 쉬지 않고
슬픈과 외로움을 이기며 살아간단다.
☆★☆★☆★☆★☆★☆★☆★☆★☆★☆★☆★☆★
《31》
더는 갈 수 없는 세월

조병화

걸어서 더는 갈 수 없는 곳에
바다가 있었습니다


날개로 더는 날 수 없는 곳에
하늘이 있었습니다


꿈으로 다는 갈 수 없는 곳에
세월이 있었습니다

아, 나의 세월로 다가갈 수 없는 곳에
내일이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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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2》
들꽃처럼

조병화

들을 걸으며
무심코 지나치는 들꽃처럼
삼삼히 살아갈 수는 없을까

너와 내가 서로 같이 사랑하던 것들도
미워하던 것들도
작게 피어난 들꽃처럼
지나가는 바람에 산들산들
삼삼히 흔들릴 수는 없을까

눈에 보이는 거, 지나가면 그뿐
정들었던 사람아, 헤어짐을 아파하지 말자

들꽃처럼, 들꽃처럼, 실로 들꽃처럼
지나가는 바람에 산들산들
아무것도 없었던 거처럼
삼삼히, 그저 삼삼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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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3》
마음

조병화

항시 깊은 물 속과 같이 고요한 내 마음에
당신은 끊임없이 불어오는 고요한 바람

잠드는 깊은 내 마음 고요한 자리에
당신은 어지러이 불어옵니다

당신은 멋대로 다녀가는 나의 귀여운 손님
당신은 내 가슴에 시간을 접어두고 돌아갑니다

돌장난 하는 아이처럼
연못가에서 돌장난 하는 아이처럼

당신은 내 마음에 돌을 던지단 돌아갑니다
해 저물면 시간을 던지단 돌아갑니다

당신은 멋대로 다녀가는 나의 귀여운 손님
내 마음 좁은 문을 소리 없이 고요히 드나듭니다
☆★☆★☆★☆★☆★☆★☆★☆★☆★☆★☆★☆★
《34》
만남과 이별


조병화

만남의 기쁨이
어찌 헤어짐의 아픔에 비하리

나를 기쁘게 한 사람이나
나를 슬프게 한 사람이나
내가 기쁘게 한 사람이나
내가 슬프게 한 사람이나
 
인생은 그저 만났다간 헤어지는 곳
그렇게 만났다간 헤어져가야 하는
먼 윤회의 길
 
지금 새로 기쁨으로 만났다 한들
머지 않아 헤어져야 하는 슬픔
어찌 이 새로운 만남을 기쁘다고만 하리
 
눈물로 눈물로 우리 서로 눈물로
숨어서 울며, 웃으며 헤어져야 할
이 만남과 헤어짐

정이 깊을 수록 더욱 마음이 저려지려니
이 인생의 만남을
어찌 그 헤어짐의 아픔에 비하리
☆★☆★☆★☆★☆★☆★☆★☆★☆★☆★☆★☆★
《35》
먼 곳에서

조병화

이젠 먼 곳들이 그리워집니다.
먼 곳에 있는 것들이 그리워집니다.

하늘 먼 별들이 정답듯이
먼 지구 끝에 매달려 있는 섬들이 정답듯이

먼 강가에 있는 당신이
아무런 까닭 없이 그리워집니다.

철새들이 날아드는 그곳
그곳 강가에서 소리 없이 살아가는 당신이
그리운 것이 그리워집니다.

먼 먼 곳이 날로 그리워집니다.
먼 하늘을 도는 별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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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6》
물은 흘러감에 다시 못 온다 해도

조병화

언젠가 너와 내가 강가에서
이야기한 것처럼
물은 흘러감에
다신 못 온다 해도
강은 항상 그 자리
흐르고 있는 것

이 세상, 만물, 만사가
헛되고 헛된 것이라 하지만
생은 다만 자릴 바꿀 뿐
강물처럼 그저 한자리
있는 것이다

너도 언젠가는 떠나고
나도 떠날 사람이지만
언젠가 너와 내가 같이 한 자리
강 마을 강 가,
이야기하던 자리
실로 헛되고 헛되지 않는 것은
우리가 살아있는 그 사실이다

해는 떴다 지며
떴던 곳으로 돌아가고
바람은 이리 돌며 저리 돌아
불던 곳으로 돌아감에
사람은 혼자서 살다가 가면
그뿐, 그 자리엔 없다 해도
실로 헛되고 헛된 것은
그렇게 생각을 하는 생각일 뿐
강물은 흐름에 마르지 않고
너와 내가 떠남에
실로 있었던것이다

언젠가 너와 내가 강가에서
이야기한 것처럼
언젠가 너와 내가 강가에서
이야기한 것처럼
☆★☆★☆★☆★☆★☆★☆★☆★☆★☆★☆★☆★
《37》
바다

조병화

사랑하는 사람아 그리운 사람아
먼 곳에 있는 사람아

바다가 우는 걸 본 일이 있는가 바다가
흐느끼는 걸 본 일이 있는가

바다가 혼자서 혼자서
스스로의 가슴을 깎아내리는
그 흐느끼는 울음 소리를 들은 일이 있는가

네게로 영 갈 수 없는
수많은 세월을

절망으로 깨지며 깨지며
혼자서 혼자서 사그라져 내리는
그 바다의 울음 소리를 들은 일이 있는가
☆★☆★☆★☆★☆★☆★☆★☆★☆★☆★☆★☆★
《38》


조병화


벗은 존재의 숙소이다
그 등불이다
그 휴식이다
그리고
보이지 않는 먼 내일에의 여행
그 저린 뜨거운 눈물이다
그 손짓이다
오늘 이 아타미 해변
태양의 화석처럼
우리들 모여
어제를 이야기하며 오늘을 나눈다
그리고, 또
내일 뜬다
☆★☆★☆★☆★☆★☆★☆★☆★☆★☆★☆★☆★
《39》
별도 울 때가

조병화

한참 별들을 멀리 바라보고 있노라니
눈물을 흘리고 있는 별이 있었습니다

별도 우는가 하는 생각이 들자
너무 멀리 오래 홀로 떨어져 있어서
서로 만날 가망 없는 먼 하늘에 있어서

아니면 별의 눈물을 보는 것은
스스로의 눈물을 보는 것이려니
밤이 깊을수록, 적막이 깊을수록
눈물을 보이는 별이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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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0》
비를 좋아하는 사람은

조병화


비를 좋아하는 사람은 과거가 있단다.
슬프고도 아름다운 사랑의 과거가

비가 오는 거리를 혼자 걸으면서
무언가 생각할 줄 모른는 사람은
사랑을 모르는 사람이란다

낙엽이 떨어져 뒹그는 거리에
한 줄의 시를 띄우지 못하는 사람은
애인이 없는 사람이란다.

함박눈 내리는 밤에 혼자 있으면서도
꼭 닫힌 창문으로 눈이 가지지 않는 사람은
사랑의 덧을 모르는 가엾은 사람이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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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1》
사랑 혹은 그리움

조병화

너와 나는
일 밀리미터의 수억분지 일로 좁힌 거리에 있어도
그 수천억 배 되는 거리 밖에
떨어져 있는 생각

그리하여 그 떨어져 있는 거리 밖에서
사랑, 혹은 그리워하는 정을 타고난 죄로
나날을, 스스로의 우리 안에서, 허공에
생명을 한 잎, 한 잎 날리고 있는 거다

가까울수록 짙은
외로운 안개
무욕한 고독

아, 너와 나의 거리는
일 밀리미터의 수억분지 일의 거리이지만
그 수천억 배의 거리 밖에 떨어져 있구나.
☆★☆★☆★☆★☆★☆★☆★☆★☆★☆★☆★☆★
《42》
사랑

조병화

기다린다는 건
차라리 죽음보다 더 참혹한 거

매일 매시 매초, 내 마음은
너의 문턱까지 갔다간
항상 쓸쓸히 되돌아온다

그러나 죽지 않고 살고 싶은
이 기다리는 고통은
아직 네가 있기 때문이다

비굴을 넘어서
☆★☆★☆★☆★☆★☆★☆★☆★☆★☆★☆★☆★
《43》
사랑은

조병화

사랑은 아름다운 구름이며
보이지 않는 바람
인간이 사는 곳에서 돈다.

사랑은 소리나지 않는 목숨이며
보이지 않는 오열
떨어져 있는 곳에서 돈다.

주어도 주어도 모자라는 마음
받아도 받아도 모자라는 목숨

사랑은 닿지 않는 구름이며
머물지 않는 바람
차지 않는 혼자 속에서 돈다
☆★☆★☆★☆★☆★☆★☆★☆★☆★☆★☆★☆★
《44》
사랑의 계절

조병화

해마다 꽃피는 계절이면
산에 들에 하늘에
사랑하고 싶은 마음

사랑하고 싶은 마음은
그 누구와 같이 집을 짓고 싶은 마음
그 누구와 같이 살고 싶은 마음이어라

끝이 보이지 않는 세상 아물아물
헤아릴 수 없는 시간에 매달려

한동안

사랑하고 싶은 마음은, 구름 끝에
그 누구와 같이 둥지를 치고 싶은 마음
그 누구와 같이 둥, 둥, 떠가고 싶은 마음

아, 해마다 꽃돋는 나날이면
내 마음에 돋는 너의 봉오리.
☆★☆★☆★☆★☆★☆★☆★☆★☆★☆★☆★☆★
《45》
사랑의 노숙

조병화

너는 내 사랑의 숙박이다
너는 내 슬프고 즐거운 작은 사랑의 숙박이다
우리는 사랑 없이는 살 수 없다
인생은 하루의 밤과 같이 사라져 가는 것이다
견딜 수 없는 하루의 밤과 같은 밤에
우리는 사랑 포옹 결합 없이는 살 수가 없는 인간이다
너는 내 사랑의 유산이다
너는 내 온 존재의 기억이다
나는 아무것도 가지지 못한 가난한 인간
아무것도 가지지 못한 채 그대로 떠나야 하는 생명
너는 그대로 있어라
우리가 가고 내가 가고 사랑이 사라질지라도
너는 무럭무럭 자라고 있어라
때오면 너도 또한 이 세상에 사랑을 남기고 가거라
견디기 어려운 외로움과 숨가쁜 밤과 사랑을 남기고
가난히 자리를 떠나라
지금 이 순간과 같이 나와 같이
너는 이 짧은 사랑의 숙박이다
너는 내 짧은 생존의 기억이다
☆★☆★☆★☆★☆★☆★☆★☆★☆★☆★☆★☆★
《46》
사랑하면

조병화

우리가 어쩌다가 이렇게 서로 알게 된 것은
우연이라 할 수 없는 한 인연이려니
이러다가 이별이 오면 그만큼 서운해지려니
그냥 지나칠 수 없는 슬픔이 되려니

우리가 어쩌다가 이렇게 알게 되어
서로 사랑하게 되면 그것도
어쩔 수 없는 한 운명이라 여겨지려니
이러다가 이별이 오면 그만큼 슬퍼지려니
그거 어쩔 수 없는 아픔이 되려니

우리가 어쩌다가 사랑하게 되어
서로 더욱 못견디게 그리워지면, 그것도
그렇게 될 수밖에 없는 숙명으로 여겨지려니
이러다가 이별이 오면 그만큼 뜨거운 눈물이려니
그렇게 될 수밖에 없는 흐느낌이 되려니

아, 사랑하게 되면 사랑하게 될수록
이별이 그만큼 더욱더 애절하게 되려니
그리워지면 그리워질수록, 그만큼
이별이 더욱더 참혹하게 되려니
☆★☆★☆★☆★☆★☆★☆★☆★☆★☆★☆★☆★
《47》
산책

조병화

참으로 당신과 함께 걷고 싶은 길이었습니다
참으로 당신과 함께 앉고 싶은 잔디였습니다
당신과 함께 걷다 앉았다 하고 싶은
나무 골목길 분수의 잔디
노란 밀감나무 아래 빈 벤치들이었습니다
참으로 당신과 함께 누워 있고 싶은 남국의 꽃밭
마냥 세워 푸르기만한 꽃밭
내 마음은 솔개미처럼 양명산 중턱
따스한 하늘에 걸려 날개질 치며
만나다 헤어질 그 사람들이 또 그리워들었습니다
참으로 당신과 함께 영 걷고 싶은 길이었습니다
당신과 함께 영 앉아 있고 싶은 잔디였습니다
☆★☆★☆★☆★☆★☆★☆★☆★☆★☆★☆★☆★
《48》
생명

조병화

당신과 나의 회화에 빛이 흐르는 동안
그늘진 지구 한 자리 나의 자리엔
살아 있는 의미와 시간이 있었습니다.

별들이 비치다 만 밤들이 있었습니다
해가 활활 타다 만 하늘들이 있었습니다
밤과 하늘들을 따라
우리들이 살아 있었습니다.

생명은 하나의 외로운 소리
당신은 가난한 나에게 소리를 주시고
갈라진 나의 소리에 의미를 주시고
지구 먼 한 자리에 나의 자리를 주셨습니다.

어차피 한동안 머물다 말 하늘과 별 아래
당신과 나의 회화의 의미를 잃어버리면
자리를 거두고 돌아가야 할 나.

당신과 나의 회화에 빛이 흐르는 동안
그늘진 지구 한 자리 나의 자리엔
살아 있는 의미와 시간이 있었습니다.
☆★☆★☆★☆★☆★☆★☆★☆★☆★☆★☆★☆★
《49》
세월은

조병화

세월은 떠나가면서
기쁨보다는 슬픔을
더 많이 남기고 갑니다

봄여름이 지나가면서
가을을 남기고 가듯이
가을이 지나가면서
겨울을 남기고 가듯이

만남이 지나가면서
이별을 남기고
가듯이 사랑이 지나가면서
그리움을 남기고 가듯이

아, 세월 지나가면서
내 가슴에 지워지지 않는
빈 자리를 남기고 갑니다.
☆★☆★☆★☆★☆★☆★☆★☆★☆★☆★☆★☆★
《50》
소라

조병화

바다엔
소라
저만이 외롭답니다

허무한 희망에
몹시도 쓸쓸해지면
소라는 슬며시
물 속이 그립답니다

해와 달이 지나갈수록
소라의 꿈도
바닷물에 굳어 간답니다

큰 바다 기슭엔
온종일
소라
저만이 외롭답니다.
☆★☆★☆★☆★☆★☆★☆★☆★☆★☆★☆★☆★
《51》
시간

조병화


시간도 머물 때가 있습니다.

사랑하는 동안은
묵묵히 흐르는 유구한 시간도 발을 멈추고
사랑, 그 옆에서 기다려주곤 합니다.

덧없는 것이 시간이라기도 하고
허무한 것이 시간이라기도 하고
무정한 것이 시간이라기도 하고
잔인한 것이 시간이라기도 하고
속절없는 것이 시간이라기도 하지만
사랑하는 사람에게는 그 만큼
사랑 옆에선 발을 멈추고
시간이 중단된 우주를 마련해 주곤 합니다.
언제까지나,

그러다간
사랑이 지나가면
겉잡을 수 없는 시간의 속도,

아, 그러한 세월의 길을, 사람은
인생이라고 살아가고 있습니다.
속절없이…….

☆★☆★☆★☆★☆★☆★☆★☆★☆★☆★☆★☆★
《52》
시는 영혼의 자연이어서

조병화

시를 쓰시려 하십니까.
시인으로 살려하십니까.

시인의 영혼은 큰 자연을 살아가는
고독한 겸손이옵니다

눈물도 자연이요, 슬픔도 자연이요,
사랑도 자연이요, 실연도 자연이요,
만남과 이별도 자연.

깨달음도 허망으로, 믿음도 허공으로,
큰 자연의 바람이옵니다

자연 속에서
스스로의 운명을 닦으며 닦으며
투명한 영혼을 살아가는 큰 자연이옵니다.
☆★☆★☆★☆★☆★☆★☆★☆★☆★☆★☆★☆★
《53》
신년 시(新年 詩)

조병화

흰 구름 뜨고
바람 부는
맑은 겨울 찬 하늘
그 무한을 우러러보며
서 있는
대지의 나무들처럼

오는 새해는
너와 나, 우리에게
그렇게 꿈으로 가득하여라

한 해가 가고
한 해가 오는
영원한 일월(日月)의 영원한
이 회전 속에서

너와 나, 우리는
약속된 여로를 동행하는
유한한 생명

오는 새해는
너와 나, 우리에게
그렇게 사랑으로 더욱더
가까이 이어져라
☆★☆★☆★☆★☆★☆★☆★☆★☆★☆★☆★☆★
《54》
어느 밤의 기도

조병화

잠이 오지 않다가
어느 밤의 기도
어쩌다가 잠이 시름시름 스며들면서
오락가락하다간
잠 속에선가 꿈 같은 것이
어리다가 사라지면서
슬며시 비친 어머님의 모습,
하시는 말씀이

얘야, 이젠 시간이 다 되었다,

들릴 듯 말 듯하면서 흐리멍멍한
어머님 목소리
사라지며 다시 잠이 가시는 새벽 2시

사라지신 어머님 모습 다시 보고 싶어서
눈을 감아도 잠이 들지 않는
캄캄한 빈 밤 새벽2시, 혼자서
차디찬 별바닥으로 부질없이 떨어져간다

아, 생명의 말로는 이렇게도
고통스러운 인내일까,

어머님, 이젠 손쉽게 생명을 거두어
어머님 곁으로 갈 수 있는 그 재주를
저에게 내려 주소서

저는 이렇게 기진맥진하옵니다
부탁입니다
간절히 소망하옵니다

부디.
☆★☆★☆★☆★☆★☆★☆★☆★☆★☆★☆★☆★
《55》
언제 이 세상 떠나더라도

조병화

언제 이 세상 떠나더라도
이 말 한마디
"세상 어지럽게 많은 말들을 뿌렸습니다"
다 잊어 주십시오

언제 이 세상 떠나더라도
이 말 한마디
"당신을 사랑했습니다"
다 잊어 주십시오

언제 이 세상 떠나더라도
이 말 한마디
"당신의 사랑의 은혜 무량했습니다"
보답 못한 거 다 잊어 주십시오

아, 언제 이 세상 떠나더라도
이 말 한마디
다 잊어 주십시오.
☆★☆★☆★☆★☆★☆★☆★☆★☆★☆★☆★☆★
《56》
오산 인터체인지

조병화

자, 그럼
하는 손을 짙은 안개가 잡는다
넌 남으로 천리
난동으로 사십리
산을 넘는 저수지 마을
삭지 않는 시간, 삭은 산천을 돈다
등은, 덴막의 여인처럼
푸른 눈 긴 다리
안개 속에 초조히
떨어져 있고
허허들판 작별을 하면
말도 무용해진다
어느새 이곳
자, 그럼
넌 남으로 천리
난 동으로 사십리
☆★☆★☆★☆★☆★☆★☆★☆★☆★☆★☆★☆★
《57》
오해로는 떠나질 마세요

조병화

오해로는 떠나질 마세요
오해를 남기고선 헤어지질 마세요

오해를 지닌 챈 갈라지질 마세요
내가 널 얼마큼 고마와했는지

내가 널 얼마큼 아파하고 있는지
내가 널 얼마큼 생각하고 있는지

그리고 네가
날 얼마큼 고마와했는지

그리고 네가
날 얼마큼 아파하고 있는지
☆★☆★☆★☆★☆★☆★☆★☆★☆★☆★☆★☆★
《68》
외로운 벗에게

조병화

고독하십니까,
운명이옵니다

몹시 그립고 쓸쓸하고, 외롭습니까,
운명이옵니다

어이없는 배신을 느끼십니까,
운명이옵니다

고립무원, 온 천하에 홀로
알아주는 사람도 없이 계시옵니까
그것도 당신의 운명이옵니다

아, 운명은 어찌할 수 없는
전생의 약속인 것을
그곳에 그렇게
민들레가 노랗게 피어 있는 것도
이곳에 이렇게
가랑잎이 소리 없이 내리는 것도
☆★☆★☆★☆★☆★☆★☆★☆★☆★☆★☆★☆★
《59》
외로운 사람에게

조병화

쓸쓸합니다.
쓸쓸하다 한들 당신은 너무나
먼 하늘 아래 있습니다.

인생이 기쁨보다는 쓸쓸한 것이 더 많고,
즐거움보다는 외로운 것이 더 많고,
쉬운 일보다는 어려운 일이 더 많고,
마음대로 되는 일 보다는 마음대로
안 되는 일이 더 많고,
행복한 일보다는 적적한 일이 더 많은
것이라고 알고는 있지만,
이렇게 외롭고 쓸쓸할 땐 한정없이
당신이 그리워집니다.

이러한 것이 서로 사랑하는
사람들의 감정이라 하겠지만,
그 이상으로 당신이 그립습니다.
참아야 하겠지요.
견디어야 하겠지요.
참고 견디는 것이 인생의 길이겠지요.
이렇게 칠십이 넘도록 내가 아직
해탈을 하지 못하고 있는 것은 인간의 고독입니다.
살기 때문에 느끼는 그 순수한 고독입니다.
인생에 있어서 제일로 무서운 병은 고독입니다.
그 고독때문에 생겨나는 '그리움'입니다.

'고독과 그리움'
그 강한 열병으로 지금 나는 이렇게
당신을 앓고 있습니다.
이렇게 당신을 앓고 있는 '고독과 그리움'이
얼마나 많은 작품으로 치료되어 왔는지
당신은 알고 계실 겁니다.
지금 그 견디기 어려운 '고독과 그리움'
그 쓸쓸한 마음을 달래기 위해서
이 편지를 쓰고 있습니다.
참으로 많은 '고독과 그리운 사연'을
당신에게 보냈습니다.

세월 모르고. 멀리 떨어져 있는 당신에 대한
내 이 열병 치료는
오로지 '고독과 그리움'을 담아 보내는 이
나의 말들이옵니다.
멀리 떨어져 있기 때문에 더욱 심하게
생겨나는 이 쓸쓸함,
이 고통이 나의 이 가난한 말로써 먼 당신에게
전해졌으면 합니다.
☆★☆★☆★☆★☆★☆★☆★☆★☆★☆★☆★☆★
《60》
외로운 영혼의 섬

조병화

내 마음 깊은 곳엔
나만이 찾아갈 수 있는 외로운 영혼의 섬이 하나 있어
쓸쓸할 땐 슬며시 그곳으로 숨어 버립니다

내 마음 가려진 곳엔
나만이 소리없이 울 수 있는 외로운 영혼의 섬이 하나 있어
고독할 땐 슬며시 그곳으로 숨어 버립니다

아, 이렇게 내 마음 숨은 곳엔
나만이 마음을 둘 수 있는 외로운 영혼의 섬이 하나 있어
만사가 싫어질 땐 슬며시 그곳으로 숨어 버립니다

내 마음보이지 않는
나만이 숨을 수 있는 외로운 영혼의 섬이 하나 있어
쓸쓸하고 쓸쓸할 땐 슬며시 그곳으로 숨어 버립니다
☆★☆★☆★☆★☆★☆★☆★☆★☆★☆★☆★☆★
《61》
의 자
조병화

지금 어드메쯤 아침을 몰고 오는 분이 계시옵니다
그분을 위하여 묵은 의자를 비워 드리지요

지금 어디 메쯤에 아침을 몰고 오는 어린 분이 계시옵니다
그분을 위하여 묵은 의자를 비워 드리겠어요

먼 옛날 어느 분이
내게 물려주듯이

지금 어디 메쯤에 아침을 몰고 오는 어린 분이 계시옵니다
그분을 위하여 묵은 의자를 비워 드리겠습니다
☆★☆★☆★☆★☆★☆★☆★☆★☆★☆★☆★☆★
《62》
이렇게 될 줄 알면서

조병화
이렇게 될 줄 알면서도
당신이 무작정 좋았습니다

서러운 까닭이 아니올시다
외로운 까닭이 아니올시다

사나운 거리에서 모조리 부스러진 나의 감정들이
소중한 당신 가슴에 안겨 들은 것입니다

밤이 있어야 했습니다
밤은 약한 사람들의 최대의 행복
제한된 행복을 위하여 밤을 기다려야 했습니다

눈치를 보면서 눈치를 보면서 걸어야 하는 거리
연애도 없이 비극만이 깔린 아스팔트

어느 이파리 아스라진 가로수에 기대어
별들 아래
당신의 머리카락이 있어야 했습니다

나보다 앞선 벗들이 인생은 겉잡을 수 없이
허무한 것이라고 말을 두고 돌아들 갔습니다

벗들의 말을 믿지 않기 위하여 나는
온 생명을 바치고 노력했습니다

인생이 겉잡을 수 없이 허무하다 하더라도
나는 당신을 믿고
당신과 같이 나를 믿어야 했습니다

살아 있는 것이 하나의 최후와 같이
당신의 소중한 가슴에 안겨야 했습니다

이렇게 될 줄 알면서 이렇게 될 줄 알면서
☆★☆★☆★☆★☆★☆★☆★☆★☆★☆★☆★☆★
《63》
인생은 혼자라는 말밖엔

조병화

나보다 더 외로운 사람에게
외롭다는 편지를 보내는 것은
사치스러운 심사라고 하시겠지요
나보다 더 쓸쓸한 사람에게
쓸쓸하다는 시를 보내는 것은
가당치 않는 일이라고 하시겠지요
그리고,

나보다 더 그리운 처지에 있는 사람에게
그립다는 사연을 엮어서 보낸다는 것은
인생을 아직 모르는 철없는 짓이라고 하겠지요
아,

나는 이렇게 아직
당신에게는 나의 말을 전할
아무런 말이 없습니다
그저,

인생은 혼자라는 말 밖엔.
☆★☆★☆★☆★☆★☆★☆★☆★☆★☆★☆★☆★
《64》
자유

조병화

공중을 날 수 있는 날개를 가진 새만이
자유를 살 수 있으려니

공중을 날며 스스로의 모이를 찾을 수 있는
눈을 가진 새만이
자유를 살 수 있으려니

그렇게 공중을 높이 날면서도
지상에 보일까 말까 숨어 있는 모이까지
찾아먹을 수 있는 생명을 가진 새만이
자유를 살 수 있으려니

아, 그렇게
스스로의 모이를 찾아다니면서
먹어서 되는 모이와
먹어서는 안 되는 모이를 알아차리는
민감한 지혜를 가진 새만이
자유를 살 수 있으려니

지상을 날아다니면서
내릴 자리와 내려서는 안 될 자리,
머물 곳과 머물러서는 안 될 곳,
있을 때와 있어서는 안 될 때를
가려서
떠나야 할 때 떠나는 새만이
자유를 살 수 있으려니

가볍게 먹는 새만이
높이 멀리 자유를 날으리.
☆★☆★☆★☆★☆★☆★☆★☆★☆★☆★☆★☆★
《65》
작은 들꽃

조병화

사랑스러운 작은 들꽃아, 너나 나나
이 세상에선 소유할 것이 하나도 없단다.

소유한다는 것은 이미 구속이며
욕심의 시작일 뿐
부자유스러운 부질없는 인간들의 일이란다.

넓은 하늘을 보아라,
그곳에 어디 소유라는 게 있느냐.
훌훌 지나가는 바람을 보아라,
그곳에 어디 애착이라는 게 있느냐.
훨훨 떠가는 구름을 보아라,
그곳에 어디 미련이라는 게 있느냐.

다만 서로의 고마운 상봉을 감사하며
다만 서로의 고마운 존재를 축복하며
다만 서로의 고마운 인연을 오래오래
끊어지지 않게 기원하며
이 고운 해후를 따뜻이 해 갈 뿐,

실로 고마운 것은 이 인간의 타향에서
내가 이렇게 네 곁에 머물며
존재의 신비를 생각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이 짧은 세상에서 이만하면 행복이잖니
사랑스러운 작은 들꽃아, 너는 인간들이
울며불며 갖는 고민스러운 소유를 갖지 말아라.
번민스러운 애착을 갖지 말아라.
고통스러운 고민을 갖지 말아라.

하늘이 늘 너와 같이하고 있지 않니
대지가 늘 너와 같이하고 있지 않니
구름이 늘 너와 같이하고 있지 않니,
☆★☆★☆★☆★☆★☆★☆★☆★☆★☆★☆★☆★
《66》
작은 보따리

조병화

참으로 작은 보따리를 가지고
이곳까지 잘도 살아왔다

얼마 되지 않는 지식
얼마 되지 않는 지혜

얼마 되지 않는 상식
얼마 되지 않는 경험

얼마 되지 않는 창작
얼마 되지 않는 돈

실로 서투른 판단과 행동을 가지고
용케도 이곳까지 살아왔다

이제 머지않아 이곳을 떠나려니
아무런 후회도 없다

어쩌면 이렇게도 고마울 수 있으랴
어쩌면 이렇게도 고마울 수 있으랴
☆★☆★☆★☆★☆★☆★☆★☆★☆★☆★☆★☆★
《67》
지금 너와 네가

조병화

지금 너와 내가 살고 있는
이 시간은
죽어간 사람들이 다하지 못한
그 시간이다

그리고 지금 너와 내가 살고 있는
이 오늘은
죽어 간 사람들이 다하지 못한
그 내일이다

아! 그리고 너와 나는
너와 내가 다하지 못한 채 이 시간을 두고
이 시간을 떠나야 하리

그리고 너와 나는
너와 내가 다하지 못한 채 이 오늘을 두고
이 오늘을 떠나야 하리

그리고 너와 나는
내가 아직도 보지 못한 채 이 내일을 두고
이 내일을 떠나야 하리

오! 시간을 잡는 자여
내일을 갖는 자여

지금 너와 내가 마시고 있는
이 시간은
죽어 간 사람들이 다하지 못한
그 시간

그리고 지금 너와 내가 잠시 같이하는
이 오늘은
우리 서로 두고 갈
그 내일이다
☆★☆★☆★☆★☆★☆★☆★☆★☆★☆★☆★☆★
《68》
진실로 슬픈 것은

조병화

진실로 슬픈 것은
너와 내가 돈을 따지게 된 거다

그리고
너와 내가 소속을 따지게 된 거다

그리고 그런대로 너와 내가 서로
서로를 모르는 채 살다간 헤어져야 한다는 거다

봄 여름 시시하게도 다 지내고 말았구나
너와 내게 한 번 주어진 이 인생,

이 시간
모두 새버리고 지금은 가을
지나 온 시간 저쪽 기억의 장소에서

수시로 나와 내가 짤막한 악수를 하다간
헤어지는 지금 이 자리

진실로 쓸쓸한 것은
너와 내가 서로의 것도 아닌 돈을 따지게 된 거다

그리고
너와 내가 서로의 것도 아닌 소속을 따지게 된 거다

그리고 그런대로 너와 내가 서로 한세상
서로를 모르는 채 살다간 헤어져야 한다는 거다
☆★☆★☆★☆★☆★☆★☆★☆★☆★☆★☆★☆★
《69》
첫사랑

조병화

밤나무 숲 우거진 마을 먼 변두리
새하얀 여름 달밤
얼마만큼이나 나란히 이슬을 맞으며 앉아 있었을까
손도 잡지 못한 수줍음 짙은 밤꽃 냄새 아래
들리는 것은 천지를 진동하는 개구리 소리
유월 논밭에 깔린 개구리 소리
☆★☆★☆★☆★☆★☆★☆★☆★☆★☆★☆★☆★
《70》
초상

조병화


내가 맨 처음 그대를 보았을 땐
세상엔 아름다운 사람도 살고 있구나 생각하였지요

두 번째 그대를 보았을 땐
사랑하고 싶어졌지요

번화한 거리에서 다시 내가 그대를 보았을 땐
남모르게 호사스런 고독을 느꼈지요

그리하여 마지막 내가 그대를 만났을 땐
아주 잊어버리자고 슬퍼하며
미친 듯이 바다 기슭을 달음질쳐 갔습니다
☆★☆★☆★☆★☆★☆★☆★☆★☆★☆★☆★☆★
《71》
추억

조병화

잊어버리자고
바다 기슭을 걸어보던 날이
하루
이틀
사흘

여름 가고
가을 가고
조개 줍는 해녀의 무리 사라진 겨울 이 바다에
잊어버리자고
바다 기슭을 걸어가는 날이
하늘
이틀
사흘.
☆★☆★☆★☆★☆★☆★☆★☆★☆★☆★☆★☆★
《72》
투명한 고독

조병화

참으로 많은 길을 걸어서
용케도 이곳까지 온 여정
잠시 쉬면서 이 밤, 잠을 청하고 있노라니

떠날 때나, 지금 이 자리
변하지 않은 것은 실로 혼자라는 생각,
맑게 살아온 그 외로움이다

변하는 세상, 변하는 세월, 변하는 자연,
변하는 인간사, 사람을 살아오면서
하나도 변함이 없는 것은
견고한 나의 고독이다

변한다는 것은 얼마나 잔인한 허망이었던가
아, 무상한 이 세상, 맑은 탈출이여
이것도 어머님의 뜻이었던가

어머님, 참으로 감사하옵니다
어머님 뜻대로 그렇게
이 맑은 고독을 살아왔습니다
☆★☆★☆★☆★☆★☆★☆★☆★☆★☆★☆★☆★
《73》
하나의 꿈인 듯이

조병화

살아 있는 것이란 하나의 꿈인 듯이
-이렇게 외로운 시절

당신을 만난 것은
개이지 않는 깊은 꿈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가랑잎 지고 겨울비 내리고
텅빈 내 마음의 정원.

곳곳이
당신은 깊은 아지랭이 끼고

무수한 순간.
순간이 시냇물처럼 내 혈액에 물결쳐

그리움이 지면 별이 뜨고
소리 없이 당신이 사라지는 첩첩이 밤.

살아 있는 것이란 하나의 꿈인 듯이
이렇게 외로운 시절 당신을 만나고
가야 하는 것은

가시는 않는
지금은 맑은 꿈이라고 생각했습니다.
☆★☆★☆★☆★☆★☆★☆★☆★☆★☆★☆★☆★
《74》
하루만의 위안

조병화

잊어버려야만 한다
진정 잊어버려야만 한다
오고 가는 먼 길가에서
인사 없이 헤어진 지금은 누구던가
그 사람을 잊어버려야만 한다
온 생명은 모두 흘러가는데 있고
흘러가는 한줄기 속에
나도 또 하나 작은
비둘기 가슴을 비벼대며 밀려가야만 한다
눈을 감으면
나와 가까운 어느 자리에
마지막 하늘을 바라보는 내 그날이 온다
그날이 있어 나는 살고
그날을 위하여 바쳐온 마지막
소리를 생각한다
그날이 오면
잊어버려야만 한다
진정 잊어버려야만 한다
오고 가는 먼 길 가에서
인사 없이 헤어진 시방은 누구던가
그 사람으로 잊어 버려야 한다
☆★☆★☆★☆★☆★☆★☆★☆★☆★☆★☆★☆★
《75》
한 인간의 생애

조병화

할아버지가 살아온 것은 바람이었어
바람에 밀려가는 한 조각 구름이었어
조각 구름에 실려 가는 한 알의 작은 물방울이었어
우주를 안고 흘러가는 작은 물방울이었어

너도 내 나이가 되면 알 거야
네가 살아온 너를

그것이 바람이었는지
비였는지.
☆★☆★☆★☆★☆★☆★☆★☆★☆★☆★☆★☆★
《76》
해마다 봄이 되면

조병화

해마다 봄이되면
어린 시절 그분의 말씀
항상 봄처럼 부지런해라
땅 속에서, 땅 위에서
공중에서
생명을 만드는 쉬임 없는 작업
지금 내가 어린 벗에게 다시 하는 말이
항상 봄처럼 부지런해라

해마다 봄이 되면
어린 시절 그분의 말씀
항상 봄처럼 꿈을 지녀라
보이는 곳에서
보이지 않는 곳에서
생명을 생명답게 키우는 꿈
봄은 피어나는 가슴
지금 내가 어린 벗에게 다시 하는 말이
항상 봄처럼 꿈을 지녀라

오, 해마다 봄이 되면
어린 시절 그분의 말씀
항상 봄처럼 새로워라
나뭇가지에서 물위에서 뚝에서
솟는 대지의 눈
지금 내가 어린 벗에게 다시 하는 말이
항상 봄처럼 새로워라
☆★☆★☆★☆★☆★☆★☆★☆★☆★☆★☆★☆★
《77》
헤어지는 연습

조병화

헤어지는 연습을 하며 사세
떠나는 연습을 하며 사세

아름다운 얼굴, 아름다운 눈
아름다운 입술, 아름다운 목
아름다운 소목
서로 다하지 못하고 시간이 되려니
인생이 그러하거니와
세상에와서 알아야 할 할 일은
'떠나는 일'일세

실로 스스로의 쓸쓸한 투쟁이었으며
스스로의 슬쓸한 노래였으나

작별을 하는 절차를 배우며 사세
작별을 하는 방법을 배우며 사세
작별을 하는 말을 배우며 사세

아름다운 자연, 아름다다운 인생
아름다운 정, 아름다운 말
두고 가는 것을 배우며 사세
떠나는 연습을 하며 사세

인생은 인간들의 옛집
아!우리 서로 마지막 할
말을 배우며 사세
☆★☆★☆★☆★☆★☆★☆★☆★☆★☆★☆★☆★
《78》
호수

조병화

물이 모여서 이야길 한다
물이 모여서 장을 본다
물이 모여서 길을 묻는다
물이 모여서 떠날 차빌 한다

당일로 떠나는 물이 있다
며칠을 묵는 물이 있다
달폴 두고 빙빙 도는 물이 있다
한여름 길을 찾는 물이 있다

달이 지나고
별이 솟고
풀벌레 찌, 찌,

밤을 새우는 물이 있다
뜬눈으로 주야 도는 물이 있다
구름을 안는 물이 있다
바람을 따라가는 물이 있다
물결에 처지는 물이 있다
수초밭에 혼자 있는 물이 있다.
☆★☆★☆★☆★☆★☆★☆★☆★☆★☆★☆★☆★
《79》
황홀한 모순

조병화


사랑한다는 것은 사랑하는 사람에게
먼 훗날 슬픔을 주는것을, 이 나이에

사랑한다는 것은 사랑하는 사람에게
오히려 기쁨보다는
슬픔이라는 무거운 훗날을 주는 것을, 이 나이에

아, 사랑도 헤어짐이 있는것을
알면서도 사랑한다는 것은
씻어 낼 수 없는 눈물인 것을, 이 나이에

사랑하면 사랑할수록
헤어짐은 이루 말할 수 없는 적막

그 적막을 이겨낼 수 있는 슬픔을 기리며
나는 사랑한다, 이 나이에

사랑은 슬픔을 기르는 것을
사랑은 그 마지막 적막을 기르는 것을
☆★☆★☆★☆★☆★☆★☆★☆★☆★☆★☆★☆★
《80》
후조
조병화

후조기에 애착일랑 금물이었고
그러기에 감상의 속성을 벌써 잊었에라
가장 태양을 사랑하고 원망함이 후조였거늘

후조는 유달리 어려서부터
날개와 눈알을 사랑하길 알았에라

높이 날음이 자랑이 아니에라
멀리 날음이 소망이 아니에라
날아야 할 날에 날아야 함이에라

달도 별도 온갖 꽃송이도
나를 위함이 아니에라

날이 오면 날아야 할 후조이기에
마음의 구속일랑 금물이었고
고독을 날려버린 기류에 살라 함이 에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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