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름재 박병순 시 모음 22편 > 자유게시판

<p style="margin: 0px">구름재 박병순 시 모음 22편<br /></p> <p style="margin: 0px">★☆★☆★☆★☆★☆★☆★☆★☆★☆★</p> <p style="margin: 0px">1. 속금산 금줄 매고 </p> <p style="margin: 0px">박병순</p> <p style="margin: 0px">갑술년(甲戌年) 해뜰 무렵 마이 영봉을 향하여<br />한 박적 맑은 물을 높이 치켜들어,<br />그 정기 들이마시고 새 한 해를 맞는다.</p> <p style="margin: 0px">여기는 산악 고원 분지 산밭〔山田〕일구고 다락논 갈아,<br />장작 패고 숯을 굽고 누에 치고 삼 농사 짓고,<br />머루랑 다래랑 우름 더덕 송이 먹으며 살아 왔으니.</p> <p style="margin: 0px">상전 월포 일대 쏘가 되고 좁은 땅 좁아지고 사람 줄고,<br />갈수록 산인 고단한 우리 고장이지만,<br />산 곱고 물 맑고 인심 좋아 시인 묵객 줄 이었네.</p> <p style="margin: 0px">쌀 농산물 개방 농촌 지원 그따위 소리 말고,<br />새해 새날 새아침에 무슨 반가운 소식 없을까?<br />까치떼 몰려와 정다운 화음 와지직근 우짖으라.</p> <p style="margin: 0px">화목한 가정 다정한 이웃 겨레 사랑 나라 사랑으로,<br />동녘의 해를 맞아 가슴을 활짝 열고,<br />북녘의 동포들과 손을 맞잡고 조국 통일을 의논하자,</p> <p style="margin: 0px">너 잘 살고 나 잘 살고 너도 행복 나도 행복,<br />온 겨레가 한살 되어 통일 만세 부르는 날,<br />속금산 금줄 매고 북을 둥둥 춤 덩실덩실 추자야!</p> <p style="margin: 0px">☆★☆★☆★☆★☆★☆★☆★☆★☆★☆★</p> <p style="margin: 0px">2. 실향가(失鄕歌)<br />- 추석날에</p> <p style="margin: 0px">박병순</p> <p style="margin: 0px">고향은 고향이로되<br />벌써 내 고향이 아니옵네.</p> <p style="margin: 0px">어머니 가시온 뒤<br />아버지도 변하셨다.</p> <p style="margin: 0px">추석날 하늘 바라<br />목을 놓아 우노라.</p> <p style="margin: 0px">술을 부어놓고<br />정성껏 절을 한다.</p> <p style="margin: 0px">구부려 닿은 이마<br />그 모습 떠오르네.</p> <p style="margin: 0px">어머니!<br />이 자식들을<br />혼령은 보시오니까?</p> <p style="margin: 0px">어머니 살으신 제<br />그 사랑이 기루오이다.</p> <p style="margin: 0px">발끝에 채이는 이슬<br />눈물 되어 지오이다</p> <p style="margin: 0px">☆★☆★☆★☆★☆★☆★☆★☆★☆★☆★</p> <p style="margin: 0px">3. 너만 있다면<br />- 학에 띄우는 노래</p> <p style="margin: 0px">박병순</p> <p style="margin: 0px">차마 떠난단 말하기가 어려워서,<br />예사로 악수로만 둥둥 떠나 온 뜻은,<br />모른 듯 자주 찾아와 만나보고 싶어였다.</p> <p style="margin: 0px">이제 날이 가고 해가 바뀜에 즈음하여,<br />달을 건너고도 딴 일에 바빠하는 것은,<br />물결이 바위를 모래알로 가시듯 세월도 정을 앗는걸까?</p> <p style="margin: 0px">언제나 한결같던 고마움을 죽는다 잊을런가!<br />삼 년 외로움도 그로 하여 내 덜였고,<br />호롱불 위태로웠던 생명도 너 때문에 남았다.</p> <p style="margin: 0px">세월아 흐르거라 나를 씻어 흐르거라.<br />해도 달도 별도 별도 나를 외면하려무나.<br />그 속에 너만 있다면 나는 바라 살겠다.</p> <p style="margin: 0px">☆★☆★☆★☆★☆★☆★☆★☆★☆★☆★</p> <p style="margin: 0px">4. 눈이 쌓이는 밤에 </p> <p style="margin: 0px">박병순</p> <p style="margin: 0px">눈이 소리 없이 사뭇 쌓이는 밤에,<br />오순도순 옛 이야기 상기도 꽃이 피는,<br />산갓집 지붕 밑에는 꿈이 남아 좋구나.</p> <p style="margin: 0px">이웃집 호롱불 하나 둘마저 꺼지고,<br />눈이 길로 쌓이는 괴괴한 이 밤은,<br />원수도 내 사랑으로 속삭이고 싶구나.</p> <p style="margin: 0px">차도 사람도 날새도 그친 막막한 밤에,<br />한 등잠 심지가 타다 타다 절로 꺼진,<br />들창에 눈보라 스쳐라 눈 눈발이 밝아라.</p> <p style="margin: 0px">☆★☆★☆★☆★☆★☆★☆★☆★☆★☆★</p> <p style="margin: 0px">5. 묵뫼 </p> <p style="margin: 0px">박병순</p> <p style="margin: 0px">못 다핀 따리아로<br />엄마 앞서 가던 네가,<br />공동묘지 한 모롱에<br />외로이 묻혔다가,</p> <p style="margin: 0px">이십 년 지샌 이제여<br />하마 묵뫼 되었구나.</p> <p style="margin: 0px">봄에는 진달래꽃<br />가을엔 들국화를</p> <p style="margin: 0px">궂은 비 쑥국새 소리<br />겨울날 눈분비 소리</p> <p style="margin: 0px">그마저 들을 리 있나<br />칡덩굴만 뻗는구나. </p> <p style="margin: 0px">☆★☆★☆★☆★☆★☆★☆★☆★☆★☆★</p> <p style="margin: 0px">6. 무덤 앞에서 </p> <p style="margin: 0px">박병순</p> <p style="margin: 0px">제철을<br />못 다 피고<br />저버린 다알리아야!</p> <p style="margin: 0px">비탈진 <br />무덤 속에<br />혼자서 묻히다니,</p> <p style="margin: 0px">어머니<br />너를 못 잊어<br />일 년 만에 가셨다.</p> <p style="margin: 0px">울음이 <br />터져 나와<br />무덤 앞에 느끼는 제,</p> <p style="margin: 0px">들국화<br />하늘하늘<br />뜨거운 눈시울에,</p> <p style="margin: 0px">어리는 <br />환영(幻影)을 보며<br />옛일 생각하노라.</p> <p style="margin: 0px">☆★☆★☆★☆★☆★☆★☆★☆★☆★☆★</p> <p style="margin: 0px">7. 물소리 </p> <p style="margin: 0px">박병순</p> <p style="margin: 0px">밤낮을 흘러가도 다함이 없는 물의 의미<br />깨칠 듯 깨칠 듯하여 물소리를 듣노라.<br />이 가슴 마구 울려 놓고 누비며 호며 가는.</p> <p style="margin: 0px">밤낮을 달려가도 앞을 다투는 물의 의미<br />잡힐 듯 잡힐 듯하여 물소리를 듣노라.<br />이 안을 갈갈이 찢어 놓고 목을 놓아 우는.</p> <p style="margin: 0px">밤낮을 울어 가도 그침이 없는 물의 의미<br />알 듯 알 듯하여 물소리를 듣노라.<br />이 간장 호되게 우비어 놓고 쌀쌀히 떨쳐 가는.</p> <p style="margin: 0px">☆★☆★☆★☆★☆★☆★☆★☆★☆★☆★</p> <p style="margin: 0px">8. 설봉 속금산 </p> <p style="margin: 0px">박병순</p> <p style="margin: 0px">뽀얀 옷 갈아 입고 하늘서 내려온 선년가?<br />땅에서 솟아난 보살의 화신인가!<br />눈 쌓인 신기한 두 봉우리 가슴에 와 안기네.</p> <p style="margin: 0px">소복한 두 모습이 순수하고 다정해서,<br />껴안은 동자도 재롱하는 웃음꽃 피워,<br />공방든 내외 말문 열려 도란도란 정담이네.</p> <p style="margin: 0px">이젠 나도 돌아와 당신 품안에 살고 싶네.<br />평생 우러러 그 정기 마셔 왔거니,<br />죽어도 그 자비에 싸여 얼싸 환생 꿈꾸리라.</p> <p style="margin: 0px">☆★☆★☆★☆★☆★☆★☆★☆★☆★☆★</p> <p style="margin: 0px">9. 속금산(마이산) 전설 </p> <p style="margin: 0px">박병순</p> <p style="margin: 0px">아득한 옛날 저 숫속금산은 한 밤중에 크자 했다.<br />암속금산은 새벽에 크자고 했다.<br />산 산도 아내를 사랑하여 새벽녘에 크자 했다.</p> <p style="margin: 0px">물동이를 이고 나온 아낙네가 외치는 소리<br />“아! 산이 크네, 아아! 저 산이 크네”<br />하늘에 닿을 듯 솟아 올랐던 자웅은 주저앉았다.</p> <p style="margin: 0px">숫속금산은 분노에 넘쳐 두 아들을 빼앗고,<br />암속금산을 발로 차버린 차버린 뒤,<br />몇 겁이 흘러도 공방든 채로 그만 굳어 버렸다.</p> <p style="margin: 0px">구름도 시름되어 저 봉을 스치는가!<br />구구구 산비둘기 짝을 불러 서로 나네.<br />사무친 그 한을 풀게 다시 솟아올라라.</p> <p style="margin: 0px">☆★☆★☆★☆★☆★☆★☆★☆★☆★☆★</p> <p style="margin: 0px">10. 손 손 손을 마주치며 </p> <p style="margin: 0px">박병순</p> <p style="margin: 0px">성적산(聖迹山) 내린 정맥 북쪽 뻗어 마이산(馬耳山)을,<br />말귀 모양 솟은 두 봉 전설 또한 신기로와,<br />정기론 봉 앞에 서면 시름마저 가시네,</p> <p style="margin: 0px">월랑교(月浪橋) 건너올라 옥류천(玉流泉) 물 마시고,<br />우화정(羽化亭) 땀을 씻어 내려뵈는 고운 골이,<br />산수에 슬기가 얼려 인물 더욱 튀누나!</p> <p style="margin: 0px">순조 때 삼의당(三宜堂) 김씨 내외 금실 좋게 살다 묻힌,<br />내 노란 시인 묵객 예로부터 줄 이으니,<br />산 산도 손 손 손을 마주치며 나그네를 부르네.</p> <p style="margin: 0px">☆★☆★☆★☆★☆★☆★☆★☆★☆★☆★</p> <p style="margin: 0px">11. 아쉬움 </p> <p style="margin: 0px">박병순</p> <p style="margin: 0px">마음도 몸도 갈갈이 찢긴 비탈길인데,<br />가시덤불에 찔리고 발부리를 채이며,<br />행여나 새봄을 기다려 보는 나날의 아쉬움.</p> <p style="margin: 0px">여긴 방안 온도가 빙점(氷點)을 오르내리는 고원(高原)<br />인정도 사정도 없는 외딴집인데,<br />산만을 바라다보고 살아가는 아쉬움.</p> <p style="margin: 0px">달이 창을 우비는 오밤중 여울물도 그쳤는지,<br />미칠 듯 외로움이 치밀어 오는 사나운 잠자리……<br />달 지고 또 다기 밝기를 기다리는 아쉬움.</p> <p style="margin: 0px">고달픔 외로움 피맺힘으로 얽힌 험준한 운명의 능선,<br />언제면 다 넘으려나 요 고약한 팔자란 등성이,<br />봄 봄 봄 봄이면 하고 내 못 넘는 아쉬움.</p> <p style="margin: 0px">☆★☆★☆★☆★☆★☆★☆★☆★☆★☆★</p> <p style="margin: 0px">12. 어머니 </p> <p style="margin: 0px">박병순 </p> <p style="margin: 0px">어머니의<br />무릎을 떠나<br />공부하던 어린 시절,<br />벌써 <br />금요일이면<br />마음은 들까불려,<br />이튿날<br />세 시간 끝나면<br />불티 닫듯하였지.<br />집에만<br />돌아오면 <br />내가 바로 귀공자고,<br />일요일<br />낮때 지면<br />귀양길 가는 마음<br />어머닌<br />미리 아시고<br />나를 멈춰 주셨다.<br />첫닭도 <br />울기 전에<br />밥을 다 지어 놓고,<br />내 아들 <br />고달파라<br />차마 잠을 못 깨우셔,<br />두 홰째<br />닭이 울고야<br />소리하던 어머니!<br />눈이<br />펑펑<br />쏟아지는 <br />삼십 리 새벽길을,<br />그렇게 뿌리쳐도<br />싸주신 묵직하던 그 보따리<br />호젓이<br />걸으면서야<br />어머니 마음을 보았다.</p> <p style="margin: 0px">☆★☆★☆★☆★☆★☆★☆★☆★☆★☆★</p> <p style="margin: 0px">13. 외딴섬 </p> <p style="margin: 0px">박병순</p> <p style="margin: 0px">설움 설움 해도 굶는 설움이 더 크대도,<br />배고픈 사람 아니면 그 사정을 모르는 거라,<br />쌀값이 마구 올라도 모르겠단 녀석들!</p> <p style="margin: 0px">어른도 현기가 돌고 어린놈 보채어 운다.<br />버릇으로 뒤를 보며 곰곰이 생각노니,<br />끼니를 건너는 설움보다 욱여 짜는 얼굴들!</p> <p style="margin: 0px">누가 굶어 죽는대도 눈썹 하나 까딱없고,<br />모두들 눈이 뒤집혀 인정은 가뭇없다.<br />아무리 둘러보아야 마을 안의 외딴섬!</p> <p style="margin: 0px">죽는 한이 있더라도 자식은 가르쳐야겠고,<br />굶고 일을 나가는데 의용(儀容)은 갖춰야 한다.<br />험궂은 요지경 속에 허우대는 유형수!</p> <p style="margin: 0px">☆★☆★☆★☆★☆★☆★☆★☆★☆★☆★</p> <p style="margin: 0px">14. 운장산아 울어라 마니산아 솟아라 </p> <p style="margin: 0px">박병순</p> <p style="margin: 0px">노령의 제일상봉 운장산아 울어라.<br />성적산(聖迹山) 내린 정맥 마이산(馬耳山)아 솟아라.<br />오늘은 재경 진안군민대회 섬진강아 노래하라.</p> <p style="margin: 0px">월랑교(月浪橋) 건너올라 옥류천(玉流泉) 물이 맑고,<br />우화정(羽化亭) 땀을 씻어 내려뵈는 고운 골이,<br />산수에 슬기가 얼려 인물 더욱 튀었네.</p> <p style="margin: 0px">순조 때 삼의당(三宜堂) 김씨 내외 금슬 좋게 살다 묻힌,<br />내노란 시인 묵객 예로부터 줄 이으니,<br />산 산도 손 손 손 마주치며 나그네를 부르네.</p> <p style="margin: 0px">속금산 커오르던 전설 상기 새삼 새로웁고,<br />이갑룡 쌓은 탑은 신비로 싸여 있고,<br />천왕문(天王門)물을 마시면 극락은 바로 거기.</p> <p style="margin: 0px">구름 스쳐가는 부부봉 구구구 비둘기 날고,<br />금당절 종소리는 유난히도 은은한데,<br />이산 묘 찾아뵈이면 선현 정기 되살아라.</p> <p style="margin: 0px">상전 죽도에 가면 옛어른 의기가 놀고,<br />용담 백운 운일암은 올해도 단풍 붉었던가!<br />월포뜰 일대는 쏘가 돼도 진안 인정은 살아있네.</p> <p style="margin: 0px">세상 인심 고약(괴약)하여 부귀영화 못 누리지만,<br />가시돌밭 영 넘으면 음지 양지 바뀔리니,<br />진안군 벗님네야 낙담 말고 앞서 끌고 뒤서 밀세.</p> <p style="margin: 0px">운장산아 울어라 마니산아 솟아라.<br />섬진강아 노래하라 속금산 금줄 매고,<br />우리도 함께 커오르자 북을 둥둥 춤을 추자.</p> <p style="margin: 0px">☆★☆★☆★☆★☆★☆★☆★☆★☆★☆★</p> <p style="margin: 0px">15. 문을 바르기 전에 </p> <p style="margin: 0px">박병순</p> <p style="margin: 0px">총총히 먼 길을 떠난 지 하마 보름도 넘었는데,<br />네 뚫고 간 문 구멍을 아직도 막지 않은 뜻은,<br />그 구멍 넘어 귄이 쪽쪽 흐르던 모습을 보기 위해서다.</p> <p style="margin: 0px">아침 저녁 선들거리고 비바람 사납게 부는 날도,<br />네 뚫고 간 문 구멍을 상기도 막지 않은 뜻은,<br />고 구멍 넘어 정이 찰찰 넘치던 소리를 듣기 위해서다.</p> <p style="margin: 0px">가을 큰 비바람 끝에 둘레 한결 스산한데도,<br />네 뚫고 간 문 구멍을 차마 가리지 못한 뜻은,<br />이 구멍 넘어 힘이 철철 감돌던 생명 붙안고 싶어서다.</p> <p style="margin: 0px">총총히 먼길을 떠났듯 어서들 빨리 돌아오라.<br />장미꽃 이제도 피고 국화 향기로운 뜨락으로,<br />수없이 찢고 간 문을 바르기 전에 종종걸음 쳐 빨리 오라<br />☆★☆★☆★☆★☆★☆★☆★☆★☆★☆★.</p> <p style="margin: 0px">16. 쑥국 새 운다 </p> <p style="margin: 0px">박병순</p> <p style="margin: 0px">아침 이슬 마시고 깊은 골 쑥국새 운다.<br />푸르름을 마시고 산 마을 쑥국새 운다<br />푸름에 겨워서 대낮을 쑥국 쑥국새 운다.</p> <p style="margin: 0px">아침 이슬 머금고 소반새 운다.<br />푸르름 머금고 또르르 또르 소반새 운다.<br />은구슬 굴리듯 또르르 또르 소반새 운다.</p> <p style="margin: 0px">언제나 돌아와서 산새와 함께 살며,<br />어쩌면 돌아와 산새와 함께 놀며,<br />피먹진 가슴을 풀게 나도 함께 울거나</p> <p style="margin: 0px">☆★☆★☆★☆★☆★☆★☆★☆★☆★☆★ </p> <p style="margin: 0px">17. 책 </p> <p style="margin: 0px">박병순</p> <p style="margin: 0px">헐벗고 굶주려 모은 소중한 수만 권 책이,<br />이제는 짐이 되어 운신조차 어려운데,<br />평수를 줄여야 할 운명이니 이를 장차 어쩔고?</p> <p style="margin: 0px">책이 힘이자 생명이자 종교였는데,<br />그 굳게 믿던 희망과 보람의 성벽 무너지는가!<br />장서를 넉넉히 늘어놓고 법열할 날 언제뇨?</p> <p style="margin: 0px">자식에 미뤄 주자니 또한 그에게 짐이 되고,</p> <p style="margin: 0px">남에게 주는 건 헛짓 증정도 그리 만만찮은데,<br />낙향해 꾸린 책짐을 펼칠 수 없음 자못 막막쿠나!</p> <p style="margin: 0px">세상에 이런 신세 어디 또 있을까?<br />하늘 보고 땅을 봐도 호소할 곳 망연하니,<br />하늘이 무너져도 솟아날 굶(구멍)있단 말도 헛거로고.</p> <p style="margin: 0px">이리 되작 저리 되작 곰곰이 생각는다.<br />엎치락뒤치락 몸살난 듯 발광일다.<br />해돋이 해넘이를 꿈에라도 가슴 열어 환희한다.</p> <p style="margin: 0px">그리 좋은 책이 짐 되어 원수 될 줄 알았던가?<br />밀릴대로 밀리다가 망할 때 망할망정.<br />아직은 서권기 속에 황홀한 삶 누리자.</p> <p style="margin: 0px">금보다 귀한 것은 책 위에 더 있는가!<br />사람 재는 잣대도 책 아니고 어니 헤리?<br />혼령도 호랑나비 되어 책갈피를 감돌리라.</p> <p style="margin: 0px">☆★☆★☆★☆★☆★☆★☆★☆★☆★☆★</p> <p style="margin: 0px">18. 해넘이의 노래 <br />-해돋이로 살고파라</p> <p style="margin: 0px">박병순</p> <p style="margin: 0px">서녘 하늘 넘는 해가 영창 휘황 되비췰러니,<br />황홀히 일렁이다 벌&#44167;게 달아 올라서,<br />애달아 숲에 얼굴 묻었다가 정적 가쁜 숨 덜컥 진다.</p> <p style="margin: 0px">해돋이 그 밖에는 모르고 살아온 낼러니,<br />올 들어 저절로 깨치게 된 해넘이의 뜻,<br />해넘이 해넘이의 몸부림을 이제 어렴풋 알리로다.</p> <p style="margin: 0px">해는 오늘 금방 져도 내일 또 해돋이로 뜨련만,<br />사람은 한 번 지면 어둠 속 몇 겁을 헤멜런가<br />인생도 해넘이가 해돋이로 영원으로 살고파라.</p> <p style="margin: 0px">☆★☆★☆★☆★☆★☆★☆★☆★☆★☆★</p> <p style="margin: 0px">19. 포플러 </p> <p style="margin: 0px">박병순</p> <p style="margin: 0px">넌 성숙해서 좋구나<br />늙음이 없어 더욱 좋구나.<br />반공에 치솟아<br />우쭐대는 너를 보면,<br />땅을 다지고 서서<br />하늘로 뻗는 네 기상!</p> <p style="margin: 0px">오가는 사람에<br />희망을 주는 그늘에 서면,<br />외롬은 금방 사라지고<br />도로 어려지누나.</p> <p style="margin: 0px">위로 솟으면 숲을 이루고<br />옆으로 뻗으면 그늘을 짓는,<br />그 밋밋한 몸매에<br />시원스런 차림으로<br />까마득 향수를 잊고<br />날로 꿈을 푸르누나.</p> <p style="margin: 0px">오늘 아침사<br />새로 한 살 난<br />내 안에 한 그루 널 심노니,</p> <p style="margin: 0px">푸르름으로<br />푸른 하늘을 바라고,<br />한 평 땅<br />그늘로 하여<br />저 에덴을 가누누나.</p> <p style="margin: 0px">☆★☆★☆★☆★☆★☆★☆★☆★☆★☆★</p> <p style="margin: 0px">20. 가을이 짙어가면 </p> <p style="margin: 0px">박병순</p> <p style="margin: 0px">우물가 감나무에 더런 감이 발갛게 익어 가고,<br />아직도 뜨락엔 장미가 볼 붉히고,<br />푸르른 하늘에 흰 구름 한 점 두웅 한가롭다.</p> <p style="margin: 0px">허전했던 가슴에 기쁨이 와 철렁여도,<br />슬픔은 슬픔대로 물거품처럼 떠오르고,<br />낮 달이 종이배 되어 이 안을 안고 간다.</p> <p style="margin: 0px">차츰 가을은 짙어 가는데 가을에 깊이 젖지 못함은,<br />이 고동 설레임 아닌 불안과 초조에 떪이런가?<br />언제나 마음의 고요를 얻어 여유론 세월 누릴꼬.</p> <p style="margin: 0px">철따라 제비떼 떼 지어 남으로 가면,<br />기러기 목을 뽑아 날아들 오련만,<br />내 속에 자리한 욕망이란 샌 가도 오도 못하나!</p> <p style="margin: 0px">☆★☆★☆★☆★☆★☆★☆★☆★☆★☆★</p> <p style="margin: 0px">21. 호박꽃은 부른다 </p> <p style="margin: 0px">박병순</p> <p style="margin: 0px">나무 울타리를 무성히 뒤덮는 파아란 잎 사이로,<br />노랗게 드러난 네 얼굴에는 드메서 왔다는,<br />순이의 순직한 얼굴이 또한 그 속에 있어 좋구나.</p> <p style="margin: 0px">날개 달린 놈이면 잉잉거리며 진득한 향(香)을 듣고 누구나 오라.<br />내 입술 그리 고울 건 없어도 어서들 오라.<br />이 가슴속에다 깊숙이 묻어 문질러 주마.</p> <p style="margin: 0px">마음은 수줍어도 젊음은 푸르러,<br />이들이들 타는 해는 오오 나의 숨결,<br />숨죽어 아물기 전에 어서들 빨리 오라.</p> <p style="margin: 0px">장미처럼 눈부시진 못하여도 사나움 없고,<br />백합처럼 말쑥하진 못하여도 가냘픔 없고,<br />부둑진 삶은 하늘을 우러러 구김 없이 피었노라.<br />☆★☆★☆★☆★☆★☆★☆★☆★☆★☆★</p> <p style="margin: 0px">22. 창 </p> <p style="margin: 0px">박병순</p> <p style="margin: 0px">창이 이렇게 좋은 줄을 어제사 비로소 깨달았소.<br />창을 열어제치고 먼 산 둘레 앞에 서면,<br />자욱히 흐르는 안개 속에 나도 함께 잠기오.</p> <p style="margin: 0px">밤 창문을 열면 등대처럼 빛나는 빨간 불빛 하나!<br />별도 숨은 깜깜한 하늘 앞에 서면,<br />말 없는 저 불빛만을 하염없이 지키오.</p> <p style="margin: 0px">창 창이 좋은 줄을 이제사 깨달았소.<br />숨막힌 사람에게 창이 주는 의미,<br />외로운 사람들에게 창이 주는 의미……</p> <p style="margin: 0px">☆★☆★☆★☆★☆★☆★☆★☆★☆★☆★<br /></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