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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중일기를 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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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profile_image 안희선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댓글 0건 조회 753회 작성일 16-07-17 02:35

본문

6월 14일 [양력 7월 12일]<정유> 비가 잠깐 오다 개었다.

아침밥을 먹은 뒤에 낙안이 와서 봤다. 가리포첨사를 청해다가 같이 아침밥을 먹었다. 순천부사·광양현감이 왔다. 광양현감은 노루고기를 차려냈다. 전운사(轉運使) 박충간(朴忠侃)의 공문과 편지가 왔다. 경상좌수사의 공문과 그 도우수사의 공문이 왔다. 저물녘에 비바람이 세게 치더니 곧 그쳤다.

6월 15일 [양력 7월 13일]<무술> 비가 잠깐 오다 개었다.

우수사(이억기)·충청수사(정걸)·순천부사(권준)· 낙안군수(신호) ·방답첨사(이순신)가 불러 와서 철맞이 음식을 먹으며 놀다가 저물어서야 헤어졌다.

6월 16일 [양력 7월 14일]<기해> 잠깐 비왔다.

저녁나절에 낙안군수를 통하여 진해의 고목(告目)을 얻어 보니, 함안에 있는 각 도의 대장들이, `왜놈들이 황산동(黃山洞)으로 나가 진을 쳤다'는 소문을 듣고 모두 물러나, 진양과 의령을 지킨다고 하니, 참으로 놀라운 일이다. 순천부사·광양현감이 왔다. 초저녁 쯤에 영등포의 척후병이 와서 보고한 내용에, "김해 ·부산에 있던 적선 무려 오백 여 척이 안골포·제포 등지로 들어왔다."고 한다. 다 믿을 수는 없지만, 적도들이 세력을 모아서 옮겨 다니며 침범할 계획도 없지 않을 것이다. 그래서 우수사 (이억기)와 충청수사 정걸(丁傑)에게 공문을 보냈다. 밤 열 시쯤 에 대금산 척후병이 와서 보고하는 것에도 마찬가지여서, 송희 립(宋希立)을 경상우수사(원균)에게 가서 의논케 하니, "내일 새 벽에 군사를 거느리고 오겠다."는 것이다. 적의 꾀란 무척 헤아리기 어렵다.

6월 17일 [양력 7월 15일]<경자> 비가 오다가 개이다가 한다.

이른 아침에 경상우수사 원균(元均)·전라우수사 이억기(李億祺) ·충청수사 정걸(丁傑) 등이 와서 의논했는데, `함안에 있던 여러 장수들이 진주로 물러가 지킨다'는 말이 과연 사실이었다. 식사를 한 뒤에 경수(景受) 이억기(李億祺) 영감의 배에 가서 앉을 자리를 고치게 하여 우수사의 배에서 종일 이야기했다. 조붕 (趙鵬)이 창원에서 와서 `적세가 엄청나게 대단하다'고 했다.

6월 18일 [양력 7월 16일]<신축> 비가 오다가 개이다가 한다.

아침에 탐후선이 들어왔다. 닷새만에 여기 이르렀다. 아주 옳지 않다. 그래서 곤장을 쳐서 보냈다. 오후에 경상우수사(원균)의 배로 가서 같이 앉아 군사일을 의논하고 왔다. 연거푸 한잔 한잔 마신 것이 몹시 취하여 돌아왔다. 부안·용인이 와서 그 어머니가 갇혔다가 도로 풀려 나왔다고 했다.

6월 19일 [양력 7월 17일]<임인> 비가 오다가 개이다 했다.

바람이 세차게 불며 그치지 않다. 진을 오양역(烏揚驛 거제시 사등면 오량리) 앞으로 옮겼으나, 바람에 배를 고정할 수가 없으 므로, 다시 고성 역포(亦浦: 통영시 용남면)로 옮기다. 봉과 변유헌(卞有憲) 두 조카들을 본영으로 보내어 어머니의 안부를 알아서 오게 했다. 왜놈의 물건과 명나라 장수의 선물 및 기름 등을 아울러 본영으로 보냈다. 각 도에 공문을 보냈다.

6월 20일 [양력 7월 18일]<계묘> 흐리며 바람이 세게 불었다.

제삿날이라 종일 혼자 앉아 있었다. 저녁에 방답·순천부사·광 양현감이 와서봤다. 조붕(趙鵬)이 그의 조카 조응도(趙應道)와 함께 와서 봤다. 이날 배 만들 재목을 운반해 오는 일로 그대 로 역포에서 잤다. 밤이 되니 바람이 잤다.

6월 21일 [양력 7월 19일]<갑진> 맑다.

새벽에 진을 한산도 망항포(閑山島 望何應浦)로 옮겼다. 점심을 먹을 때 원연이 왔다. 우수사도 청해서 같이 앉아 술을 몇잔 마시고 헤어졌다. 아침에 아들 회가 들어왔다. 그 편에 어머니 께서 편안하시다는 소식을 들으니, 다행이다.

6월 22일 [양력 7월 20일]<을사> 맑다.

전선(戰船)에 자귀질을 시작했는데, 자귀장이 이백열네 명이다. 물건나르는 사람은 본영에서 일흔두명, 방답에서 서른다섯 명, 사도에서 스무다섯 명, 녹도에서 열다섯 명, 발포에서 열두 명, 여도에서 열다섯 명, 순천에서 열 명, 낙안에서 다섯 명, 흥양·보 성에서 각 열 명이었다. 방답에서는 처음에 열다섯 명을 보냈기에 군관과 아전을 처벌하였는데, 그 정상이 몹시 간교하였다. 제2호 지휘선의 급수군 손걸(孫乞)을 본영으로 돌려보냈던 바, 못된 짓을 많이 하고 돌아다니다가 갇혔다기에 붙잡아 오라고 하였더니, 이미 들어와서 현신하였으므로, 제 맘대로 드나든 죄를 다스리고, 아울러 우후의 군관 유경남(柳景男)도 처벌하였다. 오후에 가리포첨사가 왔다. 적량의 고여우(高汝友)와 이효가(李孝可)도 왔다. 저녁에 소비포 이영남(李英男)이 와서 봤다. 초저녁에 영등포 척후병이 와서 보고하기를,`별다른 소식은 없지만 적선 두 척이 온천(칠천량)으로 들어가는 것을 보고 왔다'고 했다.

6월 23일 [양력 7월 21일]<병오> 맑다.

이른 아침에 자귀장이들을 점호하였더니 한 명도 결근이 없었다고 했다. 새 배에 쓸 밑판을 만드는 것을 마쳤다.

6월 24일 [양력 7월 22일]<정미>(비가 내렸다)

식사를 한 뒤에 비가 많이 오고 바람이 세게 불더니 저녁까지 그치지 않아다. 저녁에 영등포 척후병이 와서 보고하였다. "적선 오백 여 척이 23일 밤중에 소진포(거제시 장목면 송진포)로 모여 들어갔는데, 그 선봉대는 칠천량에 이르렀다."는 것이다. 초저녁에 또 대금산 정찰군과 영등포 정찰군이 와서 보고하는 것도 역시 마찬가지였다.

6월 25일 [양력 7월 23일]<무신> 종일 비가 많이 왔다.

우수사(이억기)와 함께 같이 앉아서 적을 칠 일을 의논하는데, 가리포첨사도 왔다. 경상우수사 (원균)도 와서 함께 상의했다. 소문에 "진양에는 성이 포위되었는 데도 감히 아무도 나가 싸우지 못한다"고 한다. 연일 비가 내려서 적도들이 물에 막혀 날뛰지 못하는 것을 보면, 하늘이 호남지방을 잘 돕고 있는 것이다. 다행다행이다. 낙안에 군량 백서른섬 아홉 말을 나누어 주고, 또 순천부사(권준)가 군량 이백 섬을 가져 와서 바치고서 벼를 찧어 쌀을 만들었다고 했다.

6월 26일 [양력 7월 24일]<기유> 비가 많이 오고 마파람이 세게 불었다.

복병선이 와서 변고를 보고하여 말하기를, "왜적의 중선·소선 각 한 척이 오양역(烏揚驛) 앞까지 이르렀다."했다. 호각을 불어 닻을 올리고 모두 적도(통영시 화도)로 가서 진을 쳤다. 순 천이 군량 일백 오십 섬 아홉 말을 받아들여 의능의 배에 실었다. 저녁에 김붕만(金鵬萬)이 진양의 적정을 살피고 오서 보고하기를, "적도들이 동문 밖에서 무수히 진을 합쳤는데, 연일 비가 많이 와서 물에 막혀 있고, 독하게 날뛰며 싸우고 있으나 큰물이 적의 진을 침몰시키려 한다면 군량을 대주고 구원병을 이어 줄 길 도 없으니, 대군을 합쳐 쳐들어 가기만 한다면 한꺼번에 섬멸할 수 있다."고 하였다. 그런데 이미 양식이 끊어졌고, 우리 군사는 편히 앉아서 고달픈 적을 맞이 하는 것이니, 그 형세가 마땅히 백승할 수 있는 것이다. 하늘이 또한 도와주고 있으니, 비록 수로에 있는 적이 오·륙백 척을 합하여 오더라도 우리 군사를 당해 낼 수는 없을 것이다.

6월 27일 [양력 7월 25일]<경술> 잠깐 비가 오다 개이다 했다.

오정 때에 적선 두 척이 견내량에 나타났다고 했다. 그래서, 온 진이 출항하여 나가 보니, 이미 달아나고 없었다. 그래서 불을도(통영시 적도·화도) 바깥 바다에 진을 쳤다. 아침에 순천부사·광양현감을 불러 와서 군사 문제를 토의했다. 충청수사가 그 군관을 시켜 흥양 군량이 떨어졌으니 석 섬을 꾸어 달라고 하기에 꾸어 주었을 따름이다. 강진의 배가 적과 싸우고 있다는 것을 들었기 때문이다.

6월 28일 [양력 7월 26일]<신해> 잠깐 비가 오다 개이다 했다.

어제 저녁에 강진의 척후선이 왜적과 싸운다는 소식을 들었다. 그래서 온 수군이 출항하여 견내량에 이르니, 왜적들은 우리 군사들을 바라보고 놀라 황급히 달아났다. 역풍과 역조류를 받아 들어올 수가 없어 그대로 머물러 밤을 지내고 새벽 두 시쯤에 불을도에 도착했다. 이 날이 곧 명종의 제삿날이기 때문이다. 종 봉손(奉孫)·애수 (愛守) 등이 들어와 분산(墳山:무덤이 있는 선산)소식을 자세히 물어서 알게 되니, 참으로 다행이다. 원 수사와 우수사와 같이 와서 군사일을 의논했다.

6월 29일 [양력 7월 27일]<임자> 맑다.

하늬바람이 잠깐 불더니 청명하게 개였다. 순천부사·광양현감이 와서 봤다. 어란만호(정담수)·소비포권관(이영남)등도 와서 봤다. 종 봉손(奉孫) 등이 아산으로 가는데 홍(洪)·이(李) 두 선비와 윤선각(尹先覺) 명문(明聞)에게 편지를 써서 보냈다. 진양이 함락되었다. 황명보(黃明甫)· 최경회(崔慶會)· 서례원(徐 禮元)· 김천일(金千鎰)· 이종인(李宗仁)· 김준민(金俊民)이 전사했다고 한다.

계사년 7월 (1593년 7월)

7월 초1일 [양력 7월 28일]<계축> 맑다.

인종(仁宗)의 제삿날이다. 밤기운이 몹시 서늘하여 잠을 이루지 못했다. 나라를 생각하는 마음이 조금도 놓이지 않아 홀로 봉 창 아래에 앉아 있으니, 온갖 생각이 다 일어난다. 선전관이 내려 왔다고 들었는데. 초저녁에 임금의 분부(宥旨)를 가지고 왔다.

7월 초2일 [양력 7월 29일]<갑인> 맑다.

날이 늦어서야 우수사(이억기)가 와서 배를 타고 선전관(류형)을 함께 대접하였다. 점심을 먹고나서 헤어져 돌아갔다. 해질 무렵에 김득룡(金得龍)이 와서 진양이 불리하다고 전했다. 놀라고 염려됨을 이길 길 없다. 그러나 그럴리 만무하다. 이건 반드시 어떤 미친 놈이 잘못 전한 말일 것이다. 초저녁에 원연·원식(元埴)이 와서 군사에 관한 극단적인 말을 하니, 참으로 우습다.

7월 3일 [양력 7월 30일]<을묘> 맑다.

적선 몇 척이 견내량을 넘어오고, 한편으론 뭍으로도 나오고 있으니 통분하다. 우리 배들이 바다로 나가 이들을 쫓으니, (적 들은) 도망쳐 버려 도로 물러나와 잤다.

7월 4일 [양력 7월 31일]<병진> 맑다.

흉악한 적 수만여 명이 죽 벌여 서서 기세를 올리니 참으로 통분하다. 저녁에 걸망포(巨乙望浦)로 물러나 진을 치고 잤다.

7월 5일 [양력 8월 1일]<정사> 맑다.

새벽에 척후병이 와서 보고하는 내용에, "적선 열 여 척이 견내량을 넘어온다"고 했다. 그래서 여러 배들이 한꺼번에 출항 하여 견내량에 이르니, 적선은 허겁지겁 달아났다. 거제땅 적도 (赤島)에는 말만 있고 사람은 없으므로 싣고 왔다. 저녁나절에 변존서(卞存緖)가 본영으로 갔다. 또 진양이 함락되었다는 보고가 광양에서 왔다. 두치(豆恥)의 복병한 곳에서 성응지(成應祉)와 이승서(李承緖)가 보낸 것이다. 저녁에 도로 걸망포(巨乙望 浦)에 이르러 진을 치고 밤을 지냈다.

7월 6일 [양력 8월 2일]<무오> 맑다.

아침에 방답첨사(李純信)이 와서 보고, 소비포권관(李英男)도 와서 봤다. 한산도에서 배를 끌고 오는 일로 중위장이 여러 장수들 을 데리고 나갔다. 공방(工房) 곽언수(郭彦壽)가 행재소에서 들어 왔는데, 도승지 심희수(沈喜壽)와 지사 윤자신(尹自新)과 좌의정 윤두수(尹斗壽)의 답장도 왔고, 윤기헌(尹耆憲)도 안부를 보내어 왔고, 승정원 소식도 아울러 왔다. 이들을 보니, 탄식할 일들만 많다. 흥양현감이 군량을 싣고 왔다.

7월 7일 [양력 8월 3일]<기미> 맑다.

순천부사·가리포첨사·광양현감이 와서 보고는 군사일을 의논했다. 각각 가볍고 날랜 배 열다섯 척을 뽑아 견내량 등지로 가서 탐색하러 위장(衛將)이 거느리고 나갔더니, 왜적의 종적이 없다고 했다. 거제에서 사로잡혔던 한 사람을 얻어 와서 왜적의 소행을 꼼꼼히 물으니, "흉적들이 우리 수군의 위세를 보고 달아 나려고 하였다"고 하고, 또 "진양이 이미 함락되었으니, 전라도까지 넘어 것이다"라고 했다. 이 말은 속인 것이다. 우수사(이억기)가 내 배로 왔기에 같이 이야기하였다.

7월 8일 [양력 8월 4일]<경신> 맑다.

남해로 왕래하는 사람 조붕(趙鵬)에게서 듣건대, "적이 광양을 친다"하여, "광양 사람들이 벌써 고을 관청과 창고를 불질렀다"고 한다. 해괴함을 이길 길 없다. 순천부사(권준)·광양현감(어영담) 을 곧 보내려고 하다가, 길가다가 들은 소문을 믿을 수 없으므로, 이들을 머무르게 하고, 사도군관 김붕만(金鵬萬)을 알아 오도록 보냈다.

7월 9일 [양력 8월 5일]<신유> 맑다.

남해현령이 또 와서 전하기를, "광양·순천이 이미 다 타버렸다"고 했다. 그래서 광양현감(어영담)·순천부사(권준)와 송희립 (宋希立)·김득룡(金得龍)·정사립(鄭思立) 등을 떠나 보내 놓고, 이설(李渫)은 어제 먼저 보냈다. 듣자하니, 뼈속까지 아파 와 말을 못하겠다. 우수사(이억기) 및 경상우수사(원균)과 함께 일을 논의했다. 이 날 밤 바다에 달은 밝고, 잔 물결하나 일지 않네. 물과 하늘이 한 빛인데, 서늘한 바람이 건듯 불구나. 홀로 뱃전에 앉았으니, 온갖 근심이 가슴을 치민다. 밤 한시에 본영 탐후선이 들어와서 적정을 알리는데, "실은 왜적 들이 아니고, 영남 피난민들이 왜놈옷으로 가장하고 광양으로 마구 들어가서 여염집을 불질렀다"고 했다. 그러니 이건 기쁘고 다행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진양이 함락되었다는 것도 헛소리라고 하였다. 그러나 진양의 일만은 이럴리 만무하다. 닭이 벌써 운다.

7월 10일 [양력 8월 6일]<임술> 맑다.

김붕만(金鵬萬)이 두치(豆恥)에서 와서 하는 말이, "광양의 왜적들은 사실이다"고 했다. 다만, 왜적 백 여 명이 도탄(陶灘)에서 건너와 이미 광양을 침범하였다고 했다. 놈들의 한 짓을 보면 총통도 한발 쏜 일이 없다"고 했다. 왜놈이 포를 한 발도 쏘지 않을리가 전혀 없다. 경상우수사와 본도 우수사가 왔다. 원연(元 )도 왔다. 저녁에 오수(吳水)가 거제의 가삼도(가조도)에서 와서 하는 말이, "적선이 안팎에서도 보이지 않는다"고 했다. 또 말하기를, "사로잡혔다가 도망쳐 나온 사람이 말하기를,적도들이 무수히 창원 등지로 가더라"고 했다. 그러나 남들이 하는 말이라 믿을 것이 못된다. 초저녁에 한산도 끝에 있는 세포(細浦)로 진을 옮겼다.

7월 11일 [양력 8월 7일]<계해> 맑다.

아침에 이상록(李詳祿)은 명령을 어긴 일로 먼저 나가고, 여러 장수들은 전령내릴 일로 나갔다가 돌아와서 보고하여 말하기를, "적선 열 여 척이 견내량에서 내려온다"고 하므로, 닻을 올려 바다로 나가니, 적선 대여섯 척이 벌써 진 앞에 이르기에, 그대로 추격하니 달아나 재빨리 도로 넘어가버렸다. 오후 네 시쯤에 걸망포(巨乙望浦)로 돌아와서 물을 길었다. 사도첨사(김완)가 되돌아 와서 하는 말이, "두치(豆恥) 나루의 적의 일은 헛소문이요, 광양 사람들이 왜놈옷으로 갈아 입고 저희들끼리 서로 장난한 짓이다"고 하니, 순천과 낙안은 벌써 결딴 다났다고 했다. 이토록 통분함을 이길길 없다. 어두울 무렵 오수성(吳壽成)이 광양에서 와서 보고하는데, "광양 의 적변은 모두 진주와 그 고을 사람들이 흉계를 짜낸 것이었다. 고을의 곳간은 쓸쓸하고 마을은 텅 비어 종일 돌아 다녀봐야 한 사람도 만나지 못한다고 한다. 순천이 가장 심하고, 낙안이 그 다음 간다"고 했다. 새벽에 우수사의 배로 갔더니 수사 원균(元均)과 직장(直長) 원연(元 ) 등이 벌써 먼저 와 있었다. 군사 일을 의논하다가 헤어졌다.

7월 12일 [양력 8월 8일]<갑자> 맑다.

식사하기도 전에 울(蔚)과 송두남(宋斗男)과 오수성(吳壽成)이 돌 아갔다. 저녁나절에 가리포첨사·낙안을 청해 와서 일을 의논하고 같이 점심을 먹고나서 돌아 갔다. 가리포의 군량 진무가 와서 전하는 말이,"사량 앞바다에 와서 묵을 때, 왜적들이 우리나라 옷으로 변장하고, 우리 나라의 작은 배를 타고 마구 들어와 포를 쏘며, 약탈해 가고자 한다."고 했다. 그래서 곧장 각각 가볍고 날랜 배 세 척을 합하여 아홉 척을 보내어 달려가 잡아 오도록 단단히 명령하여 보냈다. 또 각각 배 세 척씩을 정하여 착량으로 보내어 요새를 방어하고 오라고 했다. 고목이 왔다. 또 광양 일은 헛소문이라고 했다.

7월 13일 [양력 8월 9일]<을축> 맑다.

저녁나절에 본영 탐후선이 들어와서, "광양·두치 등에는 적의 꼬라지가 없다"고 했다. 흥양현감이 들어오고 우수사 영감도 들어왔다. 순천 거북함의 격군으로서 경상도 사람인 종 태수 (太守)가 달아나다가 잡혀 사형에 처했다. 저녁나절에 가리포첨사가 와서 보고 흥양현감(배흥립)이 들어 와서, "두치의 잘못된 거짓 보고와 장흥부사 류희선(柳希先)의 겁 내던 일을 전했다. 또말하기를, 그 고을(고흥군 남양면) 창고의 곡식을 남김없이 나누어 주고, 게포(蟹浦)에 흰콩과 중간콩을 아 울러 마흔(되)을 보냈다고 한다. 또 행주대첩을 전했다. 초저녁 에 우수사가 청하기에 그의 배로 가 봤더니, 가리포 영감이 몇 가지 먹음직한 음식물을 차려 놓았다. 밤 세시나 되어서야 헤어 졌다.

7월 14일 [양력 8월 10일]<병인> 맑더니 저녁나절에 비가 조금 내렸다.

진을 한산도 둘포(豆乙浦:통영시 한산면 두억리 개미목)로 옮겼다. 비는 땅의 먼지를 적실 뿐이다. 몸이 몹시 불편하여 온종일 신음했다. 순천부사(권준)가 들어와서 본부의 일을 말로 나타내지를 못하였다. 같이 점심을 먹고 그대로 머물렀다. 진을 한산도 둘포(豆乙浦)로 옮겼다.

7월 15일 [양력 8월 11일]<정미> 맑게 개었다.

저녁나절에 사량의 수색선·여도만호 김인영(金仁英)·순천의 김 대복(金大福)이 들어왔다. 가을 기운이 바다로 들어오니, 나그네 회포가 어지럽고. 홀로 봉창 아래에 앉았으니, 마음이 몹시도 번거롭네. 달이 뱃전을 비치니, 정신이 맑아져 잠 못이루는데, 어느 덧 닭이 우는구나.

7월 16일 [양력 8월 12일]<무진> 아침에 맑다가 저녁나절에 구름이 끼었다.

저녁에 소나기가 와서 농사에 흡족하다. 몸이 몹시 불편하다.

7월 17일 [양력 8월 13일]<기사> 비가 내렸다.

몸이 대단히 불편하다. 광양현감(어영담)이 왔다.

7월 18일 [양력 8월 14일]<경오> 맑다.

몸이 불편하여 앉았다 누웠다 했다. 정사립(鄭思立)이 돌아왔다. 우수사(이억기)가 와서 봤다. 신경황(申景潢)이 두치에서 와서 적의 헛소문임을 전하였다.

7월 19일 [양력 8월 15일]<신미> 맑다.

이경복(李景福)이 병마사에게 갈 편지를 가지고 나갔다. 순천부사 와 이영남(李英男)이 와서, "진주·하동·사천·고성 등지의 적 들이 이미 도망해 버리고 없다"고 전했다. 저녁에 진주에서 피 살된 장병들의 명부를 광양현감(어영담)이, 보내왔는데, 이를 보니, 참으로 비참하고 통탄함을 이길 길이 없다.

7월 20일 [양력 8월 16일]<임신> 맑다.

탐후선이 본영에서 들어왔는데, 병마사의 편지 및 공문과 명나라 장수의 통첩이 왔다. 그 통첩의 사연을 보니, 참으로 괴상하다. 두치의 적이 명나라 군사에게 몰리어 달아났다고 하니, 터무 니 없는 거짓말이다. 명나라 사람들이 이와 같으니 다른 사람들이야 말해 본들 무엇하랴! 통탄할 일이다. 충청수사(정걸)·순천부사(권준) ·방답첨사(이순신)· 광양현감(어영담)· 발포만호(황정 록)· 남해현령(기효근) 등이 와서 봤다. 조카 이해와 윤소인(尹素 人)이 본영으로 돌아갔다.

7월 21일 [양력 8월 17일]<계유> 맑다.

경상우수사(원균)와 충청수사 정걸(丁傑)이 함께 와서 적을 토벌하는 일을 의논하는데, 원수사의 하는 말은 극히 흉칙하고 말할 수 없는 흉계이다. 이러하고서도 일을 같이 하고 있으니, 뒷걱정이 없을까? 그의 아우 원연도 뒤따라 와서 군량을 얻어서 갔다. 저녁에 흥양도 왔다. 땅거미질 때에 돌아왔다. 초저녁에 오수(吳水) 등이 거제 망보는 곳에서 와서 보고하기를, "영등포의 적선이 아직도 머물면서 제 맘대로 횡포를 부린다"고 했다.

7월 22일 [양력 8월 18일]<갑술> 맑다.

오수(吳水)가 사로잡혔다가 도망쳐 온 사람을 싣고 올 일로 나갔다. 아들 울(蔚)이 들어와서 어머니께서 평안하시다고 자세히 말한다. 아들 염(苒)의 병이 차도가 있다.

7월 23일 [양력 8월 19일]<을해> 맑다.

울(蔚)이 돌아갔다. 충청수사 정걸(丁傑)을 불러 와서 점심을 같이 먹었다.

7월 24일 [양력 8월 20일]<병자> 맑다.

순천부사·광양현감·흥양현감이 왔다. 저녁에 방답첨사와 이 응화(李應華)가 와서 봤다. 초저녁에 오수(吳水)가 되돌아 와서 "적이 물러갔다"고 했는데, 장문포(거제시 장목면 장목리) 적들은 여전하다. 아들녀석 울(蔚)이 본영에 들어갔다고 했다.

7월 25일 [양력 8월 21일]<정축> 맑다.

우수사(이억기)가 와서 이야기했다. 조붕(趙鵬)도 와서 체찰사의 공문이 영남수사(원균)에게 왔는데, 문책하는 말이 많이 있더라고 했다.

7월 26일 [양력 22일]<무인>맑다.

순천부사·광양현감·방답첨사가 왔다. 우수사도 같이 이야기하고, 가리포첨사도 왔다.

7월 27일 [양력 8월 23일]<기묘> 맑다.

우수사의 우후(이정충)가 본영에서 와서 우도의 사정을 전하는데, 놀랄만한 일들이 많았다. 체찰사에게 갈 편지와 공문을 썼다. 경상우수사의 영리가 체찰사에게 갈 서류 초안을 가지고 와서 보고 했다.

7월 28일 [양력 8월 24일]<경진> 맑다.

아침에 체찰사에게 가는 편지를 고쳤다. 경상우수사(원균) 및 충청수사(정걸)과 본도우수사(이억기)가 함께 와서 약속했다. 그러니 수사 원균(元均)의 나쁜 마음과 간악한 속임수는 아주 형편이 없다. 정여흥(鄭汝興)이 공문과 편지를 가지고 체찰사 앞으로 갔다. 순천부사·광양현감이 와서 보고 곧 돌아갔다. 사도 첨사(김완)가 복병했을 때에 잡은 보자기 열 명이 왜놈옷으로 변장하고 하는 짓거리가 매우 꼼꼼하다 하여 잡아다가 추궁을 하니, "경상우수사(원균)가 시킨 일이다."고 했다. 곤장만 쳐서 놓아 줬다.

7월 29일 [양력 8월 25일]<신사> 맑다.

새벽 꿈에 사내 아이를 얻었다. 사로잡혔던 사내 아이를 얻을 꿈이다. 순천부사· 광양현감· 사도첨사·흥양현감·방답첨사를 불러 와서 이야기했다. 흥양현감은 학질을 앓아서 곧 돌아가고, 남은 사람들은 조용히 앉아 있었다. 방답첨사는 복병할 일로 돌아 갔다. 본영 탐후인이 와서 아들 염(苒)의 병이 차도가 없다고 하니 몹시 걱정이다. 저녁에 보성군수(김득광)· 소비포권관(이영남) · 낙안군수(신호)가 들어왔다고 했다.

계사년 8월 (1593년 8월)

8월 초1일 [양력 8월 26일]<임오> 맑다.

새벽 꿈에 큰 대궐에 이르렀다. 모양이 마치 서울과 같았다. 기이한 일이 많았다. 영의정이 와서 인사를 하기에 나도 답례를 하였다. 임금님의 파천하신 일을 이야기하다가 눈물을 뿌리며 탄식하는데, 적의 형세는 이미 종식되었다고 하였다고 하면서 서로 의논할 때 좌우 사람들이 무수히 구름같이 모여 드는 것이었다. 아침에 우후가 와서 보고는 돌아갔다.

8월 초2일 [양력 8월 27일]<계미> 맑다.

아침밥을 먹은 뒤에 마음이 답답하여 닻을 올려 포구로 나갔다. 충청수사 정걸(丁傑)이 따라 나오고, 순천부사·광양현감이 와서 봤다. 소비포권관(이영남)도 왔다. 저녁에 진쳤던 곳에 되돌아왔 다. 이홍명(李弘明)이 와서 같이 저녁을 먹었다. 저물녁에 우수사(이억기)가 배에 와서 하는 말이, 방답첨사(이순신)가 부모를 뵈러 가겠다"고 간절히 청하나, 여러 장수들이 보낼 수 없다고 하므로 이에 답하였다. 또 우수사 원균(元均)이 망녕된 말을 하며 나에게 도리에 어긋난 짓을 많이 하더라고 말했는데, 모두 가 망녕된 짓이니, 어찌 관계하랴! 아침에 염(苒)의 병도 어떠한지 모르겠고, 또 적을 소탕하는 일이 남아 있어 마음 속을 파먹으니 몸도 괴로와 밖으로 나가 바람을 쐬었는데, 탐후선이 들어와서 아들 염(苒)이 아픈 데가 곪아서 종기가 되었는데, 침으로 쨌더니, 고름이 흘러 나와, 며칠만 늦었더라면 고치기 어려울 뻔했다고 한다. 큰일 날뻔 했다. 지금은 조금 생기가 났다하니, 다행이다. 의사 정종(鄭宗)의 은혜가 매우 크다.

8월 초3일 [양력 8월 28일]<갑신> 맑다.

이경복(李景福)·양응원(梁應元)과 영리 강기경(姜起敬) 등이 들어왔다. 염(苒)에게 침으로 종기를 쨌던 일을 전하는데, 무척 놀랬다. 며칠만 더 늦었더라면 구할 수 없었다고 전했다.

8월 초4일 [양력 8월 29일]<을유> 맑다.

순천부사·광양현감이 와서 보고는 돌아갔다. 저녁에 도원수의 군관 이완(李緩)이 삼도에 퍼져 있는 적의 형세를 보고하지 않은 군관·색리를 잡아다가 심문하려고 진에 이르니, 같잖은 웃음이 나온다.

8월 초5일 [양력 8월 30일]<병술> 맑다.

조붕(趙鵬)·이홍명(李弘明)·우수사(이억기) 및 우후가 와서 밤이 깊어서야 돌아갔다. 소비포권관(이영남)도 밤에 돌아갔다. 이완(李緩)이 술에 취하여 내 배에서 머물렀다. 소고기를 얻어다가 각 배에 나누어 보냈다. 아산에서 이례(李禮)가 밤에 왔다.

8월 초6일 [양력 8월 31일]<정해> 맑다.

아침에 이완(李緩)은 같은 때에 송한련(宋漢連)·여여충(呂汝 忠)과 함께 도원수에게로 갔다. 식사를 한 뒤에 순천부사·광양현 감·보성군수·발포만호·이응화(李應華) 등이 와서 봤다. 저녁에 경상우수사 원균(元均)이 오고, 우수사 경수 이억기(李億祺)·충 청수사 정걸(丁傑)도 와서 의논을 하고 있는 동안에 우수사 원균이 하는 말은 걸핏하면 모순된 이야기를 하니, 우습고도 우습다. 저녁에 비가 잠깐 내리더니 그쳤다.

8월 7일 [양력 9월 1일]<무자> 아침에 맑더니 해질녘에 비가 내렸다.

농사에 많이 흡족하겠다. 가리포첨사가 왔다. 소비포와 이효가(李 孝可)도 와서 봤다. 당포만호(하종해)가 작은 배를 찾아 갈려고 왔으므로 주어 보내라고 사량만호(이여념)에게 일러주었다. 가리포 영감은 곧 같이 점심을 먹고서 갔다. 저녁에 경상우수사 의 군관 박치공(朴致恭)이 와서 전하는데, "적선들이 물러갔다"고 했다. 그러나 원균(元均) 수사와 그의 군관은 항상 헛소문만 내기를 좋아하니 믿을 수가 없다.

8월 8일 [양력 9월 2일]<기축> 맑다.

식사를 한 뒤에 순천부사·광양현감·방답첨사·흥양현감 등을 블러 들여 복병 등에 관한 일을 같이 논의했다. 충청수사의 전선 두 척이 들어왔는데, 한 척은 쓸 수 없다고 하였다. 김덕인 (金德仁)이 그 도(충청도)의 군관으로 왔다. 본도 순찰사의 아병 (군사) 두 명이 공문을 가져 왔다. 적의 형세를 알려고 우수사가 으슥한 포구로 가서 수사 원균(元均)을 만났다고 하니 우습다.

8월 9일 [양력 9월 3일]<경인> 맑다.

아침에 아들 회가 들어와서 어머니께서는 편안하시고, 염(苒)은 병이 조금 나아졌다고 하니 기쁘고 다행이다. 점심을 먹고나서 우수사(이억기)의 배에 이르니, 충청수사(정걸)도 왔다. 영남수사 (원균)는, "복병군을 한꺼번에 보내어 복병시키기로 약속했다 하여 먼저 보냈다"고 했다. 해괴한 일이다.

8월 초10일 [양력 9월 4일]<신묘> 맑다.

아침에 방답의 탐후선이 들어와서 임금님의 분부(宥旨)와 비변 사의 공문과 감사의 편지를 가지고 왔다. 해남현감(위대기)이 방 답첨사 이순신(李純信)과 같이 왔다. 순천부사·광양현감도 왔다. 우수사(이억기) 영감이 청하므로 그의 배로 갔더니, 해남현감이 술자리를 베풀었다. 그러나, 몸이 불편하여 간신히 앉아서 이야기 하다가 돌아왔다.

8월 11일 [양력 9월 5일]<임진>

늦게 소나기가 쏟아지고 바람이 몹시 불더니만, 오후에 비는 그쳤으나 바람은 그치지 않는다. 몸이 몹시 불편하여 온종일 앉았다 누웠다 했다. 여도만호에게 격군을 잡아올 일로 사흘 기한으로 갔다 오라고 일러 보냈다.

8월 12일 [양력 9월 6일]<계사>

몸이 몹시 불편하여 종일 누워서 신음했다. 원기가 허약하여 땀이 덧없이흘러 옷을 적시는데도 억지로 일어나 앉았다. 저녁나절에 비가 내리다가 개기도 했다. 순천부사가 와서 봤다. 우수사가 와서 봤다. 방답첨사 이순신(李純信)도 왔다. 종일 장기를 두었다. 몸이 불편했다. 가리포첨사도 왔다. 본영 탐후선이 들어와서 어머니께서 평안하시다고 한다.

8월 13일 [양력 9월 7일]<갑오>

본영에서 온 공문에 결재하여 보냈다. 몸이 몹시 불편하여 홀로 봉창 아래에 앉았으니, 온갖 회포가 다 일어난다. 이경복(李景福) 에게 장계를 지니고 가라고 내어 보냈다. 경(庚)의 어미에게 노자를 문서에 넣어 보냈다. 송두남(宋斗男)이 군량미 삼백 섬과 콩 삼백 섬을 실어 왔다.

8월 14일 [양력 9월 8일]<을미> 맑다.

방답첨사(이순신)가 제사음식을 갖추어 왔다. 우수사(이억기)와 충청수사(정걸)과 순천부사(권준)도 함께 왔다.

8월 15일 [양력 9월 9일]<병신> 맑다.

오늘은 한가위 날이다. 우수사(이억기)·충청수사(정걸) 및 순천부사(권준)· 광양현감(어영담)· 낙안군수(신호)· 방답첨사(이순 신)· 사도첨사(김완)· 흥양현감(배흥립)· 녹도만호(송여종)· 이응화(李應華)· 이홍명(李弘明)· 좌우도 영감 등이 모두 모여 이야기 했다. 저녁에 아들 회가 본영으로 갔다.

8월 16일 [양력 9월 10일]<정유> 맑다.

광양현감(어영담)이 제사음식을 갖추어 왔다. 우수사(이억기)· 충청수사(정걸)· 순천부사(권준)· 방답첨사(이순신)도 왔다. 가리포첨사(구사직)·이응화(李應華)가 함께 왔다. 아침에 들으니, 제만춘(諸萬春)이 일본에서 어제 나왔다고 했다.

8월 17일 [양력 9월 11일]<무술> 맑다.

지휘선을 연기로 그을리고, 좌별도선에 옮겨 탔다. 저녁나절에 우수사(이억기)의 배로 가니, 충청수사(정걸)도 왔다. 제만춘(諸萬 春)을 불러서 문초하니, 분하고 분한 사연들이 많이 있다. 종일 의논하고 나서 헤어졌다. 초저녁이 되기 전에 돌아와 지휘선에 탔다. 이 날밤 달빛은 대낮 같고 물결은 비단결 같다. 회포를 견디기 어려웠다. 새로 만든 배로 내려 왔다. 제만춘(諸萬春)을 공초해보니 분한 사연들이 많이 있었다.

8월 18일 [양력 9월 12일]<기해> 맑다.

우수사 이억기(李億祺)·충청수사 정걸(丁傑)과 함께 이야기하였다. 순천부사·광양현감도 와서 봤다. 조붕(趙鵬)이 와서 하는 말이, "경상우수사의 군관 박치공(朴致恭)이 장계를 가지고 조정으로 갔다"고 했다.

8월 19일 [양력 9월 13일]<경자> 맑다.

아침식사를 한 뒤에 원균(元均) 수사가 있는 곳으로 가서 내 배 에 옮겨 타라고 청하였다. 우수사(이억기)·충청수사 정걸(丁傑) 도 왔다. 원연도 함께 이야기했다. 말하는 가운데서 수사 원균 (元均)이 음흉하고 도리에 어긋난 일이 많고, 그 하는 짓이 그럴 듯하게 속이니 이루 말할 수 없다. 원균(元均) 수사의 형제가 옮겨 간 뒤에 천천히 노를 저어 진으로 돌아왔다. 우수사·정 수사와 같이 앉아 자세히 이야기했다.

8월 20일 [양력 9월 14일]<신축>

아침식사를 한 뒤에 순천부사·광양현감·흥양현감이 왔다. 이응화(李應華)도 왔다. 송희립(宋希立)을 순찰사에게 문안케 했다. 또 제만춘(諸萬春)을 문초한 공문을 가지고 가게 했다. 방답 첨사와 사도첨사로 하여금, 돌산도 근처에 이사하여 사는 자들로서 작당하여 남의 재물을 약탈한 자들을 좌·우 두 패로 나누어 잡아 오라고 내어 보냈다. 저녁에 적량만호 고여우(高汝友)가 왔다. 밤이 깊어서야 갔다.

8월 21일 [양력 9월 15일]<임인> 맑다.

8월 22일 [양력 9월 16일]<계묘> 맑다.

8월 23일 [양력 9월 17일]<갑진> 맑다.

윤간(尹侃)과 조카 뇌·해가 와서 어머니께서는 평안하시다고 전한다. 울(蔚)은 학질을 앓는다는 소식도 들었다.

8월 24일 [양력 9월 18일]<을사> 맑다.

조카 해가 돌아갔다.

8월 25일 [양력 9월 19일]<병오> 맑다.

꿈에 적의 모양이 있었다. 그래서 새벽에 각 도의 대장에게 알려서 바깥바다로 나가 진을 치게 하였다. 해질 무렵에 한산도 안쪽 바다로 돌아왔다.

8월 26일 [양력 9월 20일]<정미> 맑다가 비오다 했다.

경상우수사 원균(元均)이 왔다. 조금 있으니 우수사(이억기) 영감과 충청수사 정걸(丁傑) 영감도 같이 모였다. 순천부사·광양현감·가리포첨사는 곧 돌아갔다. 흥양현감도 왔다. 제사음식을 대접하는데, 경상우수사 원균(元均)이 술을 먹겠다고 하기에 조금 주었더니, 잔뜩 취하여 망발하며 음흉하고도 도리에 어긋난 말하 는 것이 해괴하기도 했다. 낙안군수(신호)가 보내 온, 풍신수길(豊臣秀吉)이 명나라 황제에게 상서한 초본과 명나라 사람이 고을에 와서 적은 것들을 보니, 통분함을 이길 길이 없다.

8월 27일 [양력 9월 21일]<무신> 맑다.

8월 28일 [양력 9월 22일]<기유> 맑다.

경상우수사 원균(元均)이 왔다. 음흉하고 간사한 말을 많이 내뱉으니 몹시도 해괴하다.

8월 29일 [양력 9월 23일]<경술> 맑다.

아우 여필(汝弼)과 아들 울(蔚)·변존서(卞存緖)가 한꺼번에 왔다.

8월 30일 [양력 9월 24일]<신해> 맑다.

경상우수사 원균(元均)이 와서 영등포로 가자고 독촉하였다. 참으로 음흉스럽다고 할만하다. 그가 거느린 스무다섯 척의 배는 모두 다 내어 보내고, 다만 일여덟 척을 가지고 이런 말을 내니, 그 마음 쓰고 행사하는 것이 다 이따위이다.

계사년 9월 (1593년 9월)

9월 초1일 [양력 9월 25일]<임자> 맑다.

공문을 만들어 도원수와 순변사에게 보냈다. 여필(汝弼)·변존서 (卞存緖)·조카 이뇌등이 돌아갔다. 우수사(이억기)·충 청수사 정걸(丁傑)과 함께 이야기했다.

9월 초2일 [양력 9월 26일]<계축> 맑다.

장계의 초안을 잡아서 내려 줬다. 경상우후 이의득(李義得)·이여 념(李汝恬) 등이 와서 봤다. 어두울 녘에 이영남(李英男)이 와서 보고, 또 전하기를, 병마사 선거이(宣居怡)가 곤양에서 공로를 세웠다고 한 것과 남해현령(기효근)이 체찰사에게 꾸중을 들었는데 공손치 못하다는 이유로 불려 간 것이다고 말했다. 우습다. 기효근(奇孝謹)의 형편없는 짓이야 이미 알고 있는 터이다.

9월 초3일 [양력 9월 27일]<갑인> 맑다.

아침에 조카 봉이 들어와서 어머니께서 평안하시다고 한다. 또 본영의 소식도 들었다. 장계를 올리려고 초안을 만들었다. 순찰사 (이정암)의 편지가 왔는데,"무릇 군사인 일가족 등이 하는 일이라 일체 침해하지 말라"고 하였다. 이는 새로 부임하여 사정을 잘못 알고 하는 일이다.

9월 초4일 [양력 9월 28일]<을묘> 맑다.

폐단되는 것을 진술하는 것과 총통을 올려 보내는 것과 제만춘 (諸萬春)을 불러서 문초한 사연을 올려 보내는 것 등 세 통의 장계를 봉하여 올리는데, 이경복(李景福)이 지니고 갔다. 정승 류 성룡(柳成龍)·참판 윤자신(尹自新)·지사 윤우신(尹又新)·도승지 심희수(沈喜壽)·지사 이일(李鎰)·안습지(安習之)·윤기헌(尹 耆獻)에게는 편지를 쓰고, 전복을 정표로 보냈다. 조카 봉과 윤간(尹侃)이 함께 돌아갔다.

9월 초5일 [양력 9월 29일]<병진> 맑다.

식사를 한 뒤에 충청수사 정걸(丁傑)의 배 곁에다 배를 대어 놓고서 종일 이야기했다. 광양현감·흥양현감 및 우후(이몽구)가 와서 보고서 돌아갔다.

9월 초6일 [양력 9월 30일]<정사> 맑다.

새벽에 배 만들 재목을 운반할 일로 여러 배를 내어 보냈다. 식사를 한 뒤에 우수사(이억기)의 배로 가서 종일 이야기하고 거기서 원균(元均)의 흉칙스러운 일을 들었다. 또 정담수(鄭聃壽)가 밑도 끝도 없이 말을 만들어낸다는 말을 들으니, 우습기만 하다. 바둑을 두고나서 물러갔다. 그만두도록 할 배의 재목을 여러 배로 끌고 왔다.

9월 초7일 [양력 10월 1일]<무오> 맑다.

아침에 재목을 받아 들였다. 아침에 방답첨사가 와서 봤다. 순찰사(이정암)에게 폐단을 진술하는 공문과 군대 개편하는 일에 대한 공문을 만들어 보냈다. 종일 홀로 앉아 있으니 마음이 편하지 않다. 저녁때가 되니 탐후선이 오기를 몹시 기다려지는데도 오지 않았다. 해가 저무니 기분이 언짢고 가슴이 답답하여 창문 을 렬고 잤다. 바람을 많이 쐬어 머리가 무겁고 아프니 걱정스럽다.

9월 초8일 [양력 10월 2일]<기미> 맑다. 바람이 어지러이 불었다.

새벽에 송희립(宋希立) 등을 당포 산으로 내 보내어 사슴을 잡아 오게 했다. 우수사(이억기)가 충청수사(정걸)와 함께 왔다.

9월 초9일 [양력 10월 3일]<경신> 맑다.

식사를 한 뒤에 모여서 산마루에 올라가서 활 세 순을 쏘았다. 우수사(이억기)·충청수사 정걸(丁傑) 및 여러 장수들이 모였는데, 광양현감은 아프다고 참가하지 않았다. 저녁때에 비가 내렸다.

9월 10일 [양력 10월 4일]<신유> 맑다.

공문을 적어 탐후선에 보냈다. 저녁나절에 우수사의 배에 이르러 방답첨사와 함께 술을 마시고 헤어졌다. 체찰사의 비밀편지가 왔다. 보성군수(김득광)도 왔다가 갔다.

9월 11일 [양력 10월 5일]<임술> 맑다.

충청수사 정걸(丁傑)이 술을 마련하여 와서 봤다. 우수사(이억기) 도 오고, 낙안군수·방답첨사도 같이 했다. 흥양현감이 휴가를 받아 갔다. 서몽남(徐夢男)에게도 휴가를 주었다. 함께 나갔다.

9월 12일 [양력 10월 6일]<계해> 맑다.

식사를 한 뒤에 소비포권관(이영남)·류충신(柳忠信)·여도만호 김인영(金仁英) 등을 불러 술을 먹였다. 발포만호(황정록)가 돌아 왔다.

9월 13일 [양력 10월 7일]<갑자> 맑다.

종 한경(漢京)·돌쇠(乭世)·해돌이(年石) 및 자모종(自募終)이 돌아왔다. 저녁에 종 금이(金伊)· 해돌이(年石) 등이 돌아갔다. 양정언(梁廷彦)도 같이 돌아갔다. 그러나 저녁에 비바람이 세게 일더니 밤새도록 그치지 않았다. 어떻게 갔을런지 모르겠다.

9월 14일 [양력 10얼 8일]<을축> 종일 비가 내리고 또 바람도 세게 불었다.

홀로 봉창 아래에 앉았으니, 온갖 생각이 다 일어난다. 순천부사가 돌아왔다.

9월 15일 [양력 10월 9일]<병인>

9월 17일 [양력 10월 11일] <무진>

큰 포구에는 달리 한 마지기에 석 섬을 내는 것을 133섬 5말을 내었다. (의견을 덧붙인 종이) 붓과 벼루에 뜻을 두었지만, 바다의 뭍의 일이 너무 바빠 쉴틈이 없고 내 구역을 내버려 두고 잊은지 오래 되었다. 이를 받들어. (** 날짜는 알 수 없으나, 1593년(계사) 9월 15일 다음에 별도의 장부터 시작하여 5 장에 걸쳐 적혀 있는 글이 있다.) ①㉠ 하나, 오랑캐의 근성은 언행이 경박하고 거칠며, 칼과 창을 잘 쓰고 배에 익숙해 있으므로, 육지에 내려오면, 문득 제 생각에, 칼 을 휘드르며 돌진하고, 우리 군사는 아직 정예롭게 훈련되어 있지 않은 무리이므로, 일시에 놀라 무너져 그 능력으로 죽음을 무릅 쓰며 항전할 수 있겠습니까. ㉡ 하나, 정철총통은 전쟁에 가장 긴요한 것인데도, 우리 나라 사람들은 그 만드는 법을 잘 알지 못하였습니다. 이제야 온갖 연구 끝에 조총을 만들어 내니, 왜놈의 총통보다도 낫습니다. 명나라 사람들이 와서 진중에서 시험사격을 하고서는 잘 되었다고 칭찬하지 않는 이가 없었습니다. 이미 그 묘법을 알았으니, 도 안에서는 같은 모양으로 넉넉히 만들어 내도록 순찰사와 병마사에게 견본을 보내고, 공문을 돌려서 알게 하였습니다. ㉢ 하나, 지난해 변란이 일어난 뒤로 수군이 전투한 것이 수십번이나 많이 되는데, 그 적들은 꺾여져 무너지지 않는게 없고, 우리는 한번도 패하지 않았습니다. ②㉠ 나라는 갈팡질팡 어지러운데, 충신으로 나설 이 그 누구인고! 서울을 떠난 것은 큰 계획이요, 회복은 그대들께 달려있나니, 국경이라 산의 달 아래 슬프게 울고, 압록강 강바람에 아픈 이 가슴, 신하들아! 오늘을 겪고 나서도, 그래도 동인 서인 싸우려느냐! 임금이 "누가 곽자의나 이광필처럼 되겠느뇨"라고 지은 시이다. ㉡ 나라는 갈팡질팡 어지러운데, 충신으로 나설 이 그 누구인고! 서울을 떠난 것은 큰 계획이요, 회복은 그대들께 달려있나니, 국경이라 달 아래 슬프게 울고, 압록강 강바람에 아픈 이 가슴, 신하들 아! 오늘을 겪고 나서도, 그래도 동인 서인 싸우려느냐! ③ 약속하는 일. 이제 여러 곳의 적들이 모두 영남의 바다로 모이고, 육지로는 함안·창원·의령에서 진양에 이르기까지, 물길로는 웅천·거제 등지까지 무수히 합세하기에 도리어 서쪽에다 뜻을 두 었으나, 이런 흉모를 더하는 것이 무척 통분할 뿐 아니라, 지난해 늦가을부터 지금까지 여러 장수들을 쓰는 것이 마음을 다했는지 여부와 시기를 따라 익히 살피면 혹시라도 먼저 돌진하자고 하여도 서로 싸우기만 하는데, 마음에 맺혀 잊지 못하는 가운데 눈물을 흘리는 자가 있고, 혹 욕심이 있어 늙은이에게 이로움이 절실하여 승패(勝敗)를 가늠하지 못하고서 저돌적으로 적의 예봉(銳鋒)에 마침내는 나라가 망하고 몸만 아프게 되었습니다. ④ 군사의 예리함의 정도가 바람과 비와 같고, 흉물들의 나머지 넋들이 달아나 숨는데,□□□ 석자 칼로 하늘에 맹세하니 산과 강 떠는도다. 만번을 죽일지라도 한 목숨 살 꾀 돌보지 않는도다. 분하고 분할 따름이다. 나라와 종사를 안정하게 하려고 충성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이에다 죽고 삶을 두니, 사직(社稷)의 위엄과 영험에 힘입어 겨우 조그마한 공로를 세웠는데, 임금의 총애와 영광이 너무 뛰어 분에 넘칩니다. 장수의 직책을 띤 몸으로 티끌만한 공로도 바치지 못하였으며, 입으로는 교서(敎書)를 외우지만, 얼굴에는 군인 으로서의 부끄러움이 있을 뿐이다. 비리고 노린내 나는 놈들에게 함락되어 앞으로 두가지 세력에 미치게 되것이니, 국가를 회복할 시기는 바로 지금입니다. 정치는 명나라 군사와 수레 및 말들의 소리를 기다리며, 하루가 1년이 되는 것 같으나, 적을 죽여 없애지 않고 화친을 삼으려 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물러난 왜적들이 우리 나라에 수년 동안 침범해와 그 욕됨 을 아직도 씻지 못했습니다. 하늘에까지 미친 분함과 부끄러움이 더욱 절실한데, 임금의 수레는 서쪽으로 가시고 종사(宗社)는 쓸쓸 하게 변하여, 온 나라 안에 충성스럽고 의리의 기운을 펴지만 스스로 백성들의 희망을 끊어버립니다. 저가 비록 아둔하고 겁이 많지만, 몸소 시석(矢石)을 무릅쓰고 여러 장수들을 위하여 먼저 나가서 몸을 다칠지라도 나라에 은혜를 갚으려는데, 지금 만약 기회를 놓친다면 앞으론 후회해도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 도끼와 쇠뇌틀을 군문(軍門)에 두고 오랫동안 쓰지 않으면서 파수꾼에게 훈계하여 말하기를, 설사 □하지 않는다 해도 곧 우리 집을 불태워서라도 왜적의 손안에서 욕먹지 말아야 한다. 바로 위급한 일에 사용되어야 합니다. 하물며 여러번 해전에서 승첩하여 크게 왜적의 콧대를 꺾었으니, 군사들의 떠드는 소리가 바다를 뒤흔들었으니, 비록 과중부적(衆寡不敵)일지라도 우리의 위세를 겁내어 감히 버티고 싸우려는자가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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