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잊을 수 없는 사람, 그리고 아름다운 마무리

페이지 정보

작성자 profile_image 안희선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댓글 8건 조회 2,340회 작성일 15-07-30 01:22

본문


잊을 수 없는 사람            - 법정(法頂)


수연(水然)스님!
그는 정다운 도반(道伴)이요, 선지식(善知識) 이었다.
자비(慈悲)가 무엇인가를 입으로 말하지 않고 몸소 행동으로 보여준
그런 사람이었다.
길가에 무심히 피어 있는 이름 모를 풀꽃이 때로는 우리의 발길을
멈추게 하듯이, 그는 사소한 일로써 나를 감동케 했던 것이다.

수연 스님!
그는 말이 없었다.
항시 조용한 미소를 머금고 있을 뿐, 묻는 말에나 대답을 하였다.
그러한 그를 15년이 지난 지금도 잊을 수가 없다.
아니 잊혀지지 않는 얼굴(像)이다.

1959년 겨울, 나는 지리산 쌍계사 탑전에서 혼자 안거를 하려고 준비를 하고 있었다.
준비래야 삼동(三冬) 안거 중에 먹을 식량과 땔나무, 그리고 약간의 김장이었다.
모시고 있던 은사(恩師) 효봉선사가 그해 겨울 네팔에서 열리는 세계 불교도
대회에 참석차 떠나셨기 때문에 나는 혼자서 지낼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음력 시월 초순 하동(河東) 악양(岳陽) 이라는 농가에 가서 탁발을 했다.
한 닷새 한 걸로 겨울철 양식이 되기에는 넉넉했었다.
탁발을 끝내고 돌아오니 텅 비어 있어야 할 암자(庵子)에
저녁 연기가 피어오르고 있었다.

걸망을 내려놓고 부엌으로 가보았다.
낯선 스님이 한 분 불을 지피고 있는 것이다.
나그네 스님은 누덕누덕 기운 옷에 해맑은 얼굴,
조용한 미소를 머금고 합장을 했다.
그때 그와 나는 결연(結緣)이 되었던 것이다.
사람은 그렇게 순간적으로 맺어질 수 있는 모양이다.
피차가 출가한 사문(沙門)이기 때문에 더욱 그랬다.

지리산으로 겨울을 나러 왔다는 그의 말을 듣고 나는 반가웠다.
혼자서 안거하기란 자유로울 것 같지만, 정진하는데는 장애가 많다.
더구나 출가가 연천(年淺)한 그때의 나로서는 혼자 지내다가는
잘못 게을러질 염려가 있었기 때문이다.

시월 보름 동안거(冬安居)에 접어드는 결제일(結制日)에
우리는 몇 가지 일을 두고 합의를 해야만 했었다.
그는 모든 일을 내 뜻에 따르겠다고 했다.
하지만 정진하는 데는 주객(主客)이 있을 수 없다.
단둘이 지내는 생활일지라도 둘의 뜻이
하나로 묶여야만 원만히 지낼 수 있는 것이다.
그는 전혀 자기 뜻을 세우지 않았다.
그대로 수순(隨順)하겠다는 것이다.

육신의 나이는 나보다 한 살 모자랐지만,
출가는 그가 한 해 더 빨랐다.
그는 학교 교육은 많이 받은 것 같지 않았으나
천성이 차분한 인품이었다.어디가 고향이며 어째서
출가했는지 서로가 묻지 않는 것이 승가(僧家)의 예절임을
아는 우리들은 지나온 자취 같은 것은 알 수가 없었다.
그리고 알 필요도 없는 것이다.

다만 그 사람의 언행이나 억양으로 미루어
교양과 출신지를 짐작할 따름이다.
그는 나처럼 호남 사투리를 쓰고 있었다.
그리고 소화 기능이 안 좋은 것 같았다.

나는 공양주(供養主: 밥 짓는 소임)를 하고
그는 국과 찬을 만드는 채공(菜供)을 보기로 했다.
국을 끓이고 찬을 만드는 그의 솜씨는 보통이 아니었다.
시원치 않은 감일지라도 그의 손을 거치면 감로미(甘露味)가 되었다.
나는 법당과 정랑의 청소를 하고 그는 큰방과 부엌을 맡기로 했다.
그리고 우리는 하루 한 끼만 먹고 참선만을 하기로 했었다.

그때 우리는 초발심(初發心)한 풋내기 사문들이라 계율(戒律)에
대해서는 시퍼랬고 바깥일에 팔림이 없이 정진만을 열심히 하려고 했다.

그해 겨울 안거(冬安居)를 우리는 무사히 마칠 수 있었다.
그 뒤에 안 일이지만 아무런 장애 없이 순일하게 안거를
보내기란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다.

이듬해 정월 보름은 안거가 끝나는 해제(解制日).
해제가 되면 함께 행각(行脚)을 떠나 여기저기
절 구경을 다니자고 우리는 그 해제절(解制節)을 앞두고 마냥 부풀어 있었다.

그런데 해제 전날부터 나는 시름시름 앓기 시작했다.
며칠 전에 찬물로 목욕한 여독인가 했더니,
열이 오르고 구미가 뚝 끊어졌다.
그리고 자꾸만 오한이 드는 것이었다.
해제는 되었어도 길을 떠날 수가 없었다.

산에서 앓으면 답답하기 짝이 없다.
사문은 성할 때도 늘 혼자지만 앓게 되면
그런 사실이 구체적으로 감촉된다.
약이 있는 것도 아니고 가까이에 의료기관도 없다.
그저 앓을 만큼 앓다가 낫기를 바랄 뿐이다.
그리고 그때 우리는 철저하게 무소유(無所有)였다.
밤이면 헛소리를 친다는 내 머리맡에서 그는 줄곧 앉아 있었다.
목이 마르다고 하면 물을 끓여 오고, 이마에
찬 물수건을 갈아주느라고 자지 않았다.

그러던 어느 날 아침, 그는 잠깐 아랫 마을에 다녀오겠다고
나가더니 한낮이 되어도 돌아오지 않았다.
해가 기울어도 감감 소식이었다.
쑤어둔 죽을 저녁까지 먹었다.
나는 몹시 궁금했다.

밤 열 시 가까이 되어 부엌에서 인기척이 났다.
그새 나는 잠이 들었던 모양이다.
그가 방문을 열고 들어올 때 그의 손에는 약사발이 들려 있었다.
너무 늦었다고 하면서 약을 마시라는 것이다.
이때의 일을 나는 잊을 수가 없다.
그의 헌신적인 정성에 나는 어린애처럼 울어버리고 말았다.
그때 그는 말없이 내 손을 꼬옥 쥐어주었다.

암자에서 가장 가까운 약국이래야 40여 리 밖에 있는 구례읍이다.
그 무렵의 교통수단이라고는 구례 장날에만
장꾼을 싣고 다니는 트럭이 있었을 뿐.
그러니까 그날은 장날도 아니었다.
그는 장장 80리 길을 걸어서 다녀온 것이다.

서로가 돈 한푼 없는 처지임을 알고 있었다.
그는 구례까지 걸어가 탁발을 하였으리라.
그 돈으로 약을 지어온 것이다.
머나먼 밤길을 걸어와 약을 달였던 것이다.

자비(慈悲)가 무엇인가를 나는 평생 처음 온
심신으로 절절하게 느낄 수 있었다.
그리고 도반의 정(情)이 어떤 것인지도 비로소 체험할 수 있었던 것이다.
그토록 간절한 정성에 낫지 않을 병이 어디 있을까.
다리가 좀 휘청거리긴 했지만,
그 다음날로 나는 거동하게 되었다.

그 때 우리가 거처하던 암자에서 5리 남짓 깊숙이 올라가면
폭포 곁에 토굴을 짓고 참선하는 노장(老長) 스님 한 분이 계셨다.
노장님이 무슨 볼일로 동구 밖에 다녀올라치면
으레 우리들 처소에 들르곤 했다.
그때마다 노장님이 메고 온 걸망은 노장님보다 먼저 토굴에 가 있었다.
그가 아무말도 없이 져다주기 때문이었다.
그는 이렇듯 무슨 일이고 그가 할 만한 일이면
말없이 선뜻 해버리는 것이었다.

한동안 우리는 만나지 못한 채 각기 운수(雲水)의 길을 걸었었다.
서신 왕래마저 없으니 어디서 지내는지 서로가 알 길이 없었다.
운수들 사이는 무소식이 희소식으로 통했다.
세상에서 보면 어떻게 그리 무심할 수 있느냐 하겠지만,
서로가 공부하는 데 방해를 끼치지 않도록 배려하고 있는 것이다.

인정(人情)이 많으면 도심(道心)이 성글다는
옛 선사(禪師)들의 말을 빌릴 것도 없이, 집착은 우리를 부자유하게 만든다.
해탈(解脫)이란 고(苦)로부터 벗어난 자유자재의 경지를 말한다.
그런데 그 고의 원인은 다른 데 있지 않고 집착에 있는 것이다.
물건에 대한 집착보다도 인정에 대한 집착은 몇 곱절 더 질긴 것이다.
출가는 그러한 집착의 집에서 떠남을 뜻한다.
그러기 때문에 출가한 사문들은 어느모로 보면
비정하리만큼 금속성(金屬性)에 가깝다.

그러나 그러한 냉기는 어디까지나
긍정의 열기(熱氣)로 향하는 부정의 기류(氣流)이다.
긍정의 지평(持平)에 선 보살[求道者]의 자비는 봄볕처럼 따사로운 것이다.

내가 해인사로 들어가 퇴설선원(堆雪禪院)에서 안거하던 여름,
들려오는 풍문에 그는 오대산(五臺山) 상원사(上院寺)에서 기도를 하고 있다고 했다.
여름 살림이 끝나면 그를 찾아가보리라 마음 먹고 있었더니,
그가 먼저 나를 찾아왔었다.
지리산에서 헤어진 뒤 다시 만나게 된 우리는 서로 반기었다.
그는 예(例)의 조용한 미소를 머금고 내 손을 꼬옥 쥐었다.
함께 있을 때보다 안색이 못했다.
앓았느냐고 물으니 소화가 잘 안 된다고 했다.
그럼 약을 먹어야 하지 않겠느냐 했더니 괜찮다고 했다.
그가 퇴설당(堆雪堂)에 온 후로 섬돌 위에는 전에 없이 변화가 일기 시작했다.
여남은 켤레되는 고무신이 한결같이 하얗게 닦이어 가지런히 놓여 있곤 했었다.
물론 그의 밀행(密行)이었다.

스님들이 빨려고 옷가지를 벗어놓으면
어느새 말끔히 빨아 풀먹여 다려놓는 것이었다.
이러한 그를 보고 스님들은 '자비보살' 이라 불렀다.

그는 공양을 형편없이 적게 하였다.
물론 이제는 우리도 삼시 세 끼를 스님들과 함께 먹고 지냈었다.
한날 나는 사무실에 말하고 그를 억지로 데리고 대구(大邱)로 나갔었다.
아무래도 그의 소화기가 심상치 않았다.
진찰을 받고 약을 써야 할 것 같았다.

버스 안에서였다.
그는 호주머니에서 주머니 칼을 꺼내더니
창틀에서 빠지려는 나사못 두 개를 죄어놓았다.
무심히 보고 있던 나는 속으로 감동했다.
그는 이렇듯 사소한 일로 나를 흔들어놓는 것이다.
그는 내 것이네 남의 것이네 하는 분별이 없는 것 같았다.
어쩌면 모든 것을 자기 것이라 생각했는지도 모른다.
그러기 때문에 사실은 하나도 자기 소유가 아닐 수도 있는 것이다
그는 실로 이 세상의 주인이 될만한 사람이었다.

그해 겨울 우리는 해인사에서 함께 지내게 되었다.
그의 건강을 걱정한 스님들은 그를 자유롭게 지내도록 딴 방을 쓰라고 했다.
그러나 그는 대중과 똑같이 큰방에서 정진하고 울력(작업)에도 빠지는 일이 없었다.
그러다가 반 살림(안거 기간의 절반)이 지날 무렵 해서
그는 더 버틸 수가 없도록 약해졌다.

치료를 위해서 산중보다 시처가 편리하다.
진주에 있는 포교당(布敎堂)으로 그를 데리고 갔었다.
거기에 묵으면서 치료를 받도록 하기 위해서였다.
사흘이 지나자 그는 나더러 살림중[安倨中]이니 어서 돌아가라고 했다.
그의 병세가 많이 회복된 것을 보고 친분이 있는 포교당 주지스님과
신도 한 분에게 간호를 부탁했다.
그가 하도 나를 걱정하는 바람에 나는 일주일 만에 귀사(歸寺)하고 말았다.

두고 온 그가 마음에 걸렸었다.
전해오는 소식에는 많은 차도가 있다고 했지만.
그 겨울 가야산에는 눈이 많이 내렸었다.
한 주일 남짓 교통이 두절될 만큼 내려 쌓였었다.
밤이면 이 골짝 저 골짝에서 나무 넘어지는 소리가 요란했다.
아름드리 소나무가 눈에 꺽인 것이다.
그 고집스럽고 정정한 소나무들이 한 송이 두 송이 쌓이는
눈의 무게에 못 이겨 꺾이고 마는 것이다.
모진 비바람에도 끄덕 않던 나무들이
부드러운 것 앞에 꺾이는 묘리(妙理)를 산에서는 역력히 볼 수 있었다.

꺾여진 나무를 져 들이다가 나는 바른쪽 손목을 삐고 말았다.
한동안 침을 맞는 둥 애를 먹었었다.
한날 나는 조그만 소포를 하나 받았었다.
펼쳐보니 파스가 들어 있었다.
어떻게 알았는지 그가 사 보낸 것이다.
말이 없는 그는 사연도 띄우지 않은 채였다.

나는 슬픈 그의 최후를 되새기고 싶지 않다.
그가 떠난 뒤 분명히 그는 나의 한 분신(分身)이었음을 알 것 같았다.
함께 있던 날짜는 일년도 못 되지만 그는 많은 가르침을 남겨주고 갔다.
그 어떤 선사(禪師)보다도, 다문(多聞)의 경사(經師)보다도
내게는 진정한 도반이요, 밝은 선지식이었다.
구도의 길에서 '안다'는 것은 '행(行)' 에 비할 때 얼마나 보잘 것 없는 것인가?
사람이 타인에게 영향을 끼치는 것은
지식이나 말에 의해서가 아님을 그는 깨우쳐주었다.

맑은 시선과 조용한 미소와 따뜻한 손과 그리고
말이 없는 행동에 의해서 혼과 혼이 마주치는 것임을 그는 몸소 보인 것이다.

수연(水然)!
그 이름처럼 그는 자기 둘레를 항상 맑게 씻어주었다.
평상심(平常心)이 진리임을 행동으로 보였다.
그가 성내는 일을 나는 한 번도 본 적이 없다.
그는 한 말로해서 자비의 화신(化身)이었다.

그를 생각할 때마다 사람은 오래 사는 것이 문제가 아니다.
어떻게 사느냐가 문제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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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님께서도 자신의 입적入寂을 예감하셨음일까..
마지막 수필집의 제호題號가 '아름다운 마무리'인 걸 보면.



"아름다운 마무리는 삶에 대해 감사하게 여긴다.
내가 걸어온 길 말고는 나에게 다른 길이 없었음을 깨닫고
그 길이 나를 성장시켜 주었음을 긍정한다.

아름다운 마무리는 처음의 마음으로 돌아가는 것이다.
일의 과정에서, 길의 도중에서 잃어버린 초심을 회복하는 것이다.

아름다운 마무리는 근원적인 물음, 나는 누구인가하고 묻는 것이다.
삶의 순간순간마다 나는 어디로 가고 있는가?
하는 물음에서 그때그때 마무리가 이루어진다.
그 물음은 본래 모습을 잃지 않는 중요한 자각이다.

아름다운 마무리는 내려놓음이다.
내려놓음은 일의 결과나 세상에서의 성공과 실패를 뛰어넘어
자신의 순수 존재에 이르는 내면의 연금술이다.
내려놓지 못할 때 마무리는 일어나지 않는다.
그것은 또 다른 윤회와 반복의 여지를 남긴다.

아름다운 마무리는 진정한 내려놓음에서 완성된다.
아름다운 마무리는 비움이다.
채움만을 위해 달려온 생각을 버리고 비움에 다가가는 것이다.
그러므로 아름다운 마무리는 비움이고
그 비움이 가져다주는 충만으로 자신을 채운다.

아름다운 마무리는 지금이 바로 그때임을 안다.
과거나 미래의 어느 때가 아니라
지금 이 순간이 나에게 주어진 유일한 순간임을 안다.

아름다운 마무리는 지나간 모든 순간들과 기꺼이 작별하고
아직 오지 않는 순간들에 대해서는 미지 그대로 열어 둔 채
지금 이 순간을 받아들인다.

아름다운 마무리는 용서이고 이해이고 자비이다.
용서와 이해와 자비를 통해 자기 자신을 새롭게 일깨운다.
이유 없이 일어나는 일은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아름다운 마무리는 나를 얽어매고 있는 구속과
생각들로부터 벗어나 자유로워지는 것.
삶의 예속물이 아니라 삶의 주체로서 거듭난다.
진정한 자유인에 이르는 것이야말로 아름다운 마무리다.

아름다운 마무리는 茶 한 잔을 앞에 두고
그 향기와 맛과 빛깔을 조용히 음미한다.
그것은 삶에 새로운 향기와 빛을 부여하는 일이다.

아름다운 마무리는 스스로 가난과 간소함을 선택한다.
맑은 가난과 간소함으로 자신을 정신적 궁핍으로부터 바로 세우고
소유의 비좁은 감옥으로부터 해방시킨다.

아름다운 마무리는 또한 단순해 지는 것.
하나만으로 만족할 줄 안다.
불필요한 것들과 거리를 둠으로서 자기 자신과 더욱 가까워진다.
그리고 아름다운 마무리는 언제든 떠날 채비를 갖춘다.
그 어디 어느 것에도 얽매이지 않고 순례자나 여행자의 모습으로 산다.
우리 앞에 놓인 이 많은 우주의 선물도 그저 감사히 받아 쓸 뿐,
언제든 빈손으로 두고 떠날 수 있도록 준비한다.

아름다운 마무리는 낡은 생각, 낡은 습관을
미련 없이 떨치고 새로운 존재로 거듭나는 것이다.

아름다운 마무리는 끝이 아니라 새로운 시작이다."


                                                                      - 스님의 '아름다운 마무리' 中에서


 

지나치리만큼, 자신에게 엄격하셨던 분.
하지만, 대중大衆들에겐 한 없이 자애慈愛로웠던 분.

성철 스님 이후, 유일하게 존경했던 스님이었는데.

아름다운 마무리는 끝이 아니라,
새로운 시작이란 말씀을 가슴에 담으며...




                                                                         - 희선,  손모음

 


 






법정스님의 출가 전 젊은 시절의 사진들


법정스님과 고향 목포에서 12살 때 만나 60년 이상 우정을 나눠 왔던 박광순(78) 전남대 명예교수는 
자신이 소중하게 간직하고 있던 법정스님 젊은 시절의 사진을 공개했다.

이 가운데 1955년 11월 25일 스님이 7명의 친구와 사진관에서 찍은 것으로 보이는 흑백사진에서는 
스님이 당시 대학생들이 입던 검은색 학생복을 입고 입가에 잔잔한 미소를 띠고 있다.










이 사진은 스님이 서울의 선학원에서 당대 선승인 효봉 스님을 만나 불교에 귀의하기 1달여 전에 찍은 사진으로, 
출가 전에 찍은 마지막 사진이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스님은 친구들과 흑산도와 홍도를 여행하고 새벽녘 모래사장 위에서 여행의 추억을 사진으로 남기기도 했다.

사진에서 스님은 모래사장에서 밀짚모자를 쓰고 바지를 걷어올린 채 앉아있는데 발 앞에는 홍도에서 채취 한 풍란과 나무 새장이 보인다.

어렸을 적부터 방학이 되면 산과 절을 찾아다녔다는 스님은 해남 대흥사로 나들이를 떠나 대흥사 탑과 경내 섬진교 앞에서 사진을 찍기도 했다.

이 밖에도 박 교수는 스님이 출가하고 나서 합천 해인사 등에서 찍어 보내온 사진과 친구 부부의 안부를 물으며 보냈던 엽서 등도 공개했다.

박 교수는 "어린 시절 둘이서 주말이면 목포 축성암 암자에 올라 바다를 바라보던 때가 기억난다"며 "스님이 보냈던 편지들은 
훗날 스님의 부탁으로 모두 없애버려 남아있는 사진들이 더욱 소중하게 느껴진다"고 말했다.


법정(法頂, 속명[본명] 박재철[朴在喆], 1932년 11월 5일[음력 10월 8일] ~ 2010년 3월 11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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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물꽃생각님의 댓글

profile_image 눈물꽃생각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진정한 대 자유인은
걸친것(이승 물질)이 없어야 한다
그것은 집착을 멸하는 것의 일종이다

인간의 모든 감각은 결국
마주하는 것으로부터 나오는 것이다
그 반응에 의하여 나타남
즉, 한 영혼이 한 영혼으로부터 움직이게 될 때는
지식이나 말이 아닌 행동의 반응으로부터 나온다

법정 스님은 무소유를 지키며 살아간 사람이다
스스로가 이승에서의 삶이라는 그림에
맑고 깨끗한 참 진리에 걸맞은
행동으로 세월을 그린 것이다

그는
이승의 모든 존재들에게
가진것 없이 도움을 주고싶어 했던
행동의 꼼지락 그 하 나로
붓다의 가르침을 실천한 사람이었다
아니 붓다의 기르침 이전에
손수 그렇게 살기를 작정하고 살아간 사람이다

불가에서의 수행은
마음 하 나에 선문답 모두가 다 들어있고
그 답을 얻어 깨달음을 이루었다 하더라도
행동으로 실천하지 못하면
아무것도 얻지 못함과 다를바가 없어진다

배우고 못배우고
지식과 지혜가 옳고 바르며
깨달음이 제아무리 충만한 사람도
수 많은 대중들을 위하여
거창한 일을 수행한 덕을 쌓은 사람이기 보다
가장 사소하며 보잘것 없게 작은 아무것도 아닌일에
참 도의 길을 걸어갈 줄 아는 것
알고보면,
일의 크고 작음을 보고 평하는 우리네 판단이
얼마나 보잘것 없는 감정에 치우친
오류였는가를 알게 된다

도반과 도반
그들과 함께하는 동안
아무도 상상하지 못했던 일
고무신이 말끔히 닦여있는 일
풀먹여 반듯하게 상쾌함으로 눈앞에 나타난 옷가지들
그야말로
가장 귀찮아 하여 그 누구의 머리속에서 조차 함부로 밀려난 것들과
잃어 버렸거나 상상하지 못하는 면면 일상의 일들
그 상황에서
행동으로 맑음과 깨끗함을 존재들에게 입혀주는 일
이 것이 참 도인 것을 알고 그는 항시 몸에 지닌 것이었다

그러면서도
세상의 주인이 되는 일
게을리 않아 비우고 또 비우고
비우므로 대자유와 세상의 주인된 자리를 얻은 것이다

이승에서
집착이 온전하게 소멸되게 산다는 것은
물질로 부터 해탈이며
얽매임을 벗어난 대 자유를 가지게 되는 것이다

대자유를 가지게 되면
눈을 감으나 뜨나
대우주의 눈부신 대광명을 비로소 보게된다

마음공부 하는 사람들
대선사의 가르침을 받아 깨달음을 갖기까지
무수히 많은 피나는 노력과 정성을 다한 자기를 찾는 일
수 천 수 만의 시간을 투자해도
대광명을 직접 느끼지 못하는 경계에 머물면
결코, 대자유를 얻었다가 아닌 것이다

대광명의 형용하기 어려운 화안하게 밝은 빛이
마음과 영혼안에 환하게 비추일 때
지금까지 지나온 길과
모든 기억이며 선지식이며
채험과 경험이 수 천억 광년을 쌓았다 할만큼 많아도
일시에 사라지고
공(空)이 된다

공의 경계에서는
내가 완전하게 사라지고
대우주의 존재만이 보이게 된다
세상일은 마치 없었던 일이 되고만다

세상일은
있는것도 아니요 없는 것도 아니게 된다
하면,
살아 꼼지락거리는 동안
선을 행하고 착해지는 일쯤은
제아무리 하찮은 것이 될지라도
못하게 될 까닭 또한 소멸하고 만다

겉으로 보기에는
금속성 같게 엄격하지만
그것들을 모두 깨달은자 처럼 능히 알고있는 실천인 것이다
그 실천을 수명이 다 하는 날까지 수행한 것이다

안희선님의 댓글

profile_image 안희선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오욕칠정五慾七情에 속박되어, 죽는 날까지 일신의 안락을 위하여 허덕이는 우리네 삶..

본래무일물本來無一物인 것을...

스님이 보시기에 그 얼마나 안타까웠겠는지

오늘 포탈에 뜬 뉴스를 보니 롯데가의 집안 내홍內訌이
실로 가관可觀에 점입가경漸入佳境이더군요

- 아비나, 그 아들들이나, 저승에 그 많은 재산은 어찌 다 가져가려는지?  (실로 궁금 & 웃음)

근데, 그런 재벌가의 추醜한 형제간 악다구니 싸움이 나와는 전혀 상관없는 일이라고 할 수 있는
사람이 또한 얼마나 될런지

돈이 있고, 없고를 떠나서 인간의 부질없는 욕망이 자아내는 삶의 무늬는
대체로 비슷할듯..

- 이런 말을 하는 희서니 역시, 그런 것으로 부터 자유로울 수 없고

그저, 스님이 일러주신 生의 아름다운 마무리를 꿈꾸어 보네요 (정말, 이제 마무리 할 때도 되었지만)

하여, 스님이 더욱 그립고..

* 참, 스님 살아 생전에 강조한 <무소유의 삶>을 곡해曲解하는 사람들이 많더군요

無所有라 해서, 일체 아무 것도 갖지 말라는 뜻은 아니고
(중생으로서 아무 것도 지니지 않고 어찌 삶을 영위할 수 있겠습니까, 당장 세끼 밥도 먹어야 하는데)
그러니까, 생활에 기본적으로 꼭 필요한 것 이외에 쓸데없는 탐심貪心은 버리라는 뜻이겠지요

눈물꽃생각님의 댓글

profile_image 눈물꽃생각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롯데가 그들은
추운 겨울날
어쩌다가 화롯가에 운좋게 자리를 차지했을 뿐
그 자리를 일어나기 전에는
자신이 따듯하게 지내는 일만 알고
그 자리 대대로 누릴 생각만 할 것이오

누가 화롯불 담아다 놓았는지 모르는 무지
그 안에 갇혀버린 불쌍한 영혼이오

먼저 사람이 되는 일은 꿈에도 생각 못하고......

눈물꽃생각님의 댓글

profile_image 눈물꽃생각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밥 세끼 먹고 잘곳이 없으면
아예 이승에서 벗어나야 돼요

무소유란
아무것도 가지지 않음인데 그마저 없다면 어찌사오
하는 것은 우리네 해석이고
쓸모가 없이 분에 넘치게 가진것
쓸모가 있더라도 사용하고 남을만큼 분에 넘치게 가진것
암튼 욕심이 개입한 가짐을 비운것이 됩니다

먹고자고 하는 일에도
반드시 내것이 아니라도 가능합니다
그것이 곧 선행이며 착한일을 하므로
그 댓가로 살아가는 일입니다

오늘날 빌어먹고 사는 일
그 또한 일종의 수행입니다

무소유라는 경계가
명징하게 어느 잣대이고 선을 말할까
이것을 가지고 논하자면
끝이 없어집니다

자신의 몸을 삶의 현장에서 지탱하는 것
빼고
갖지 않아야 함이 가장 근접한 것이 될 수 있어요

우리네 일상적 기준으로 따지자면
죽어야 가능합니다

^^*

안희선님의 댓글

profile_image 안희선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무소유란
아무 것도 갖지 않는다는 것이 아니다.

궁색한 빈털털이가 되는 것이 아니다.

무소유란 아무 것도 갖지 않는 것이 아니라
'불필요한 것을 갖지 않는다'는 뜻이다.

무소유의 진정한 의미를 이해할 때
우리는 보다 홀가분한 삶을 이룰 수가 있다.

아무리 가난해도
마음이 있는 한 다 나눌 것은 있다.
근원적인 마음을 나눌 때
물질적인 것은 자연히 그림자처럼 따라온다.


그렇게 함으로써
나 자신이 더 풍요로워질 수 있다.
세속적인 계산법으로는 나눠 가질수록
내 잔고가 줄어들 것 같지만,
출세간적인 입장에서는
나눌수록 더 풍요로워진다.

하나가 필요할 때
하나로써 만족해야지 둘을 가지려 하지 말아야 한다.
그러면 그 하나마저도 잃게 된다. 그건 허욕이다.
하나로써 만족할 수 있어야 한다.

행복은 그 하나 속에 있다.
둘을 얻게 되면 행복이 희석되어서
그 하나마저도 잃는다.

문명은 사람을 병들게 한다.
그렇지만 자연은 사람을 소생시켜 준다.
사람을 거듭나게 한다.
자연과 더불어 살 때 사람은 시들지 않고
삶의 기쁨을 누릴 수 있다.

우리가 산다는 것은 무엇인가?
그것은 기약할 수 없는 것이다.
내일 일을 누가 아는가. 이 다음 순간을 누가 아는가.
순간순간을 꽃처럼 새롭게 피어나는 습관을 들여야 한다.
매 순간을 자기 영혼을 가꾸는 일에,
자기 영혼을 맑히는 일에 쓸 수 있어야 한다.

세상이
달라지기를 바란다면
우리들 한 사람 한사람의 모습이 달라져야 한다.
나 자신부터 달라져야 한다.
한 사람 한 사람 삶의 모습이 달라져야 한다.
그래야만 세상이 달라진다.
나 자신이 세상의 일부이기 때문이다.
우리들 한 사람 한 사람이 세상의 일부이다.


-법정스님의 법문 중에서-

率兒님의 댓글

profile_image 率兒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홈페이지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무소유란 이걸 가지지 못하면 내가 죽지... 하는 집착에서 벗어나는 것! -솔아-

가지면 좋고 못 가져도 좋은 것이 아니라
가져도 좋고 안 가져도 조타!
 
그 말이 그 말인 것 같아 아리까리 할 것 같습니다.

안희선님의 댓글

profile_image 안희선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전 머리가 단순해서, 스님이 말씀하신 무소유를 그냥 이렇게 생각하렵니다

우리 모두, 태어났을 때 빈 손으로 와서
세상의 이것 저것 빌려 쓰다가
떠나갈 때 역시 빈 손으로 가는 것

하여, 살아가며 자신에게 기본적으로 꼭 필요한 거 외에
또 다른 무엇을 목숨 걸고 기필코 소유하겠단 탐심貪心은
(형님의 말씀처럼) 미망迷妄에 사로잡힌 집착이며..
그 같은 집착은 끊임없는 윤회의 고통을 만드는 업業밖에는 안된다는 거

- 야, 희서나.. 그럼 넌 맨날 왜 자갈치 타령이냐? 요즘 내 주머니 사정도 안 좋은데 (이궁, 할 말 없다는)

눈물꽃생각님의 댓글

profile_image 눈물꽃생각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한국의 어느동네 동리
구멍가게 가도
자갈치 이름가진 과자 있어요

^^*

안시인님
눈에 쌍불켜고 쫓아 오신다 느낌들면
신발 고무탐내 나도록 내빼야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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