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의 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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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안희선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댓글 4건 조회 723회 작성일 17-01-08 11:45본문
너의 날 / 권터 아이히
너의 날은 잘못 간다
너의 밤은 황량(荒凉)한 별만 찼구나
百 가지 생각이 자꾸만 오고
百 가지 생각이 자꾸만 간다
너 기억하겠느냐 ?
일찌기 너, 다만
푸른 강 위에 뜬 한 조각배였더니
일찌기 너,
나무의 발을 가지고
이 세상 항구에 정박하고 있었더니
너 다시 그리로 돌아가야만 하겠다
옛날의 비(雨)를 마시고
푸른 잎들을 낳아야 하겠다
네 걸음이 너무 성급하고
네 말과 네 얼굴이 너무 비겁하다
너는 다시 말 없는,
거리낌 없는,
차라리 보잘 것없는 한 마리 모기
혹은
일진(一陳)의 광풍(狂風),
한 떨기 백합이 되어야겠다
Gunter Eich (1907~1972)
독일 <레부스>에서 출생.
서구 시인으로서는 드물게 동양문학을 전공하였고,
제 2차 세계대전의 광풍(狂風)에 휩쓸려 시베리아 포로
수용소에서 극심한 강제노역을 하다가 귀환.
하지만, 포로 시절에도 詩는 놓지 않았다.
시작활동(詩作活動) 이외에 방송국의 극작가로도 활동.
작품으로는, [Gedichte] [Untergrundbahn]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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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상 & 생각>
간명(簡明)하게 정의해 주는 詩를 만나면,
그 詩를 통해서 파악되는 내 모습도
선명해지는 것 같다
시를 읽고 문득 나 자신을 돌아보니,
나의 날들은 정녕 잘못 가고 있다는
생각만 든다
깊은 눈 없이 세상을 바라 보았고,
가벼운 혀로 무거운 삶을 말했으며,
고단한 노력 없이 결과에 성급하기만 했다
그리고, 현실 앞에서 항상 비겁했다
또한, 내 고통은 언제나 남의 탓으로 돌리고
진심으로 사람들을 사랑하지도 않았다
그러면서, 글로는 줄창 사랑을 말했다
정말 말 없는, 거리낌 없는,
차라리 보잘 것 없는, 저 한 마리 모기도
나보다 훨씬 정직하게 사는 것을
세상의 거센 바람에 부대끼면서도
정신을 놓지 않는, 저 한 떨기 백합(百合)이
나보다 훨씬 당당한 것을...
출발했던 최초의 항구로 되돌아 갈 수 있다면,
살아오며 헛되이 지나친 모든 것들에게
내가 그렇게 살아서 미안했다는 말을
하고 싶어진다
- 희선,
댓글목록
率兒님의 댓글
率兒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홈페이지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감상을 읽으며 불현듯 눈시울이 찡해졌습니다.
내가 그렇게 살아서 미안했다는 말을 하고 싶어진다
저 역시 그렇습니다. 이 아름다운 생명의 시간 속에 댓가 없이 던져진
제가 미안할 때도 있지요. 때로는 시간을 사라지게 하는 약이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도 간혹 합니다. 살아있는 내 몸이 뻘줌하게 보일 때는...
안희선님의 댓글의 댓글
안희선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형님,
저도 이제 갈 때가 되서 그런지..
오늘따라, 이 시가 유난히 가슴에 아프게 꽂히네요
건강이 허락하는 한, 글을 올릴 생각이지만..
왠지 이곳과의 인연도 다 해 간다는 느낌입니다
아무튼, 형님은 건강하시기에요
풀하우스님의 댓글
풀하우스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나의 날 / 안희선
깊은 눈 없이 세상을 바라 보았고,
가벼운 혀로 무거운 삶을 말했으며,
고단한 노력 없이 결과에 성급하기만 했다
그리고, 현실 앞에서 항상 비겁했다
또한, 내 고통은 언제나 남의 탓으로 돌리고
진심으로 사람들을 사랑하지도 않았다
그러면서, 글로는 줄창 사랑을 말했다
정말 말 없는, 거리낌 없는,
차라리 보잘 것 없는, 저 한 마리 모기도
나보다 훨씬 정직하게 사는 것을
세상의 거센 바람에 부대끼면서도
정신을 놓지 않는, 저 한 떨기 백합(百合)이
나보다 훨씬 당당한 것을...
출발했던 최초의 항구로 되돌아 갈 수 있다면,
살아오며 헛되이 지나친 모든 것들에게
내가 그렇게 살아서 미안했다는 말을
하고 싶어진다
*권터 아이히 시 보다 더 수승합니다.
안희선님의 댓글의 댓글
안희선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권터가 무덤을 열고 나와, 인상 쓸 거 같다는요 (웃음)
넋두리 같은 감상이었습니다
너그럽게 품어 주시니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