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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명해지는 육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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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profile_image 안희선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댓글 0건 조회 2,098회 작성일 15-08-04 00:38

본문

투명해지는 육체 / 김소연

月, 당신은 장을 보러 나갔다 잘게 썰린 해파리를 사와서 찬물로 씻었다 베란다에선 파꽃이 피었고 달팽이는 그 위에 둥글게 앉아 있었다 火, 당신은 나를 차마 깨우지 못했다 똬리를 틀고 잠든 나의 테두리를 동그랗게 에워싸며 조용히 다가와 다시 누웠다 水, 당신은 기차를 탔다 덜컹이기 위해서 창문에 이마를 대고 매몰차게 지나가는 바깥풍경을 바라보기 위해서 나는 옥상에 의자를 내놓고 앉아 있었다 눈을 감고 귀를 깃발처럼 높이 매달았다 여린 기차 소리가 들렸다 木, 사랑을 호명할 때 우리는 거기에 없었다 서로가 서로에게 사나운 짐승이 되어 있었다 동시에 서로가 서로에게 초식동물이 되어 있었다 두려움에 떨었다 당신의 떨림과 나의 떨림 사이에서 시뻘건 피가 흘렀다 우리가 나누었던 대화들이 응혈처럼 물컹 만져졌다 金, 내가 집을 나간 사이 당신은 혼자 힘으로 여러 번 죽고 여러 번 다시 태어났다 꽃들도 여러 번 피었다 졌다 당신이 서성인 발자국들이 보였다 무수히 겹쳐 있어 수많은 사람이 다녀간 흔적과도 같았다 밥 냄새 꽃 냄새 빨래 냄새가 지독하게 흥건했다 치르치르와 미치르가 돌아온 집도 그랬을 거야 당신은 빨래를 개며 말했다 土, 우리라는 자명한 실패를 당신은 사랑이라 호명했고 나는 고개를 끄덕였고 돌아서서 모독이라 다시 불렀다 모든 몹쓸 것들이 쓸모를 다해 다감함을 부른다 당신의 다정함은 귓바퀴를 돌다 몸 안으로 흘러들고 파먹히기를 바란다고 일기에 쓴다 파먹히는 통증 따윈 없을 거라 적는다 일기장을 펼칠 때마다 동안 지었던 죄들이 책상 위에 수 북 하 게 쏟아져 내렸다 日, 우리는 주고받은 편지들을 접어 종이비행기를 날렸다 양 날개에 빼곡했던 글자들이 첫눈처럼 흩날려 떨어졌다 다시 月, 당신은 장을 보러 나간다 당신이 돌아오지 않을 수도 있다 현관문 바깥쪽에 등을 기댄 채 입을 틀어막고 한참을 울다 들어올 수도 있다 어쨌거나 파꽃은 피고 달팽이도 제 눈물로 점액질을 만들어 따갑고 둥근 파꽃의 표면을 일보 일보 가고 있다 냉장고처럼 나는 단정하게 서서 속엣것들이 환해지고 서늘해지길 기다리는 중이다

<시작 노트> "당신을 사랑하는 일이 나의 하루하루이다." 사랑에 대해 쉽게 말할 수 없게 되었다. 사랑을 너무 잘 알아버렸기 때문일 수도, 사랑을 너무 모르게 되었을 수도 있다. 어쨌거나 이제는 당신을 사랑하는 일이 나의 하루하루이다. 모든 몹쓸 것들이 쓸모를 다하는 시간이다. 그러므로 나는 파꽃 위에 앉은 달팽이 한 마리인 셈이다. 어쩌면 내가 파꽃일 수도 있다. 당신일 수도 있고, 당신이 수요일마다 탔던 기차일 수도 있고, 그게 수요일이 아닐 수도 있다. 어쨌거나 이제는 통증조차 훈훈하다.

어쨌거나 일주일을 꼬박꼬박 이렇게 살 것이다. 이 생각만으로 나는 더없이 서늘해진다.

1967년 경북 경주에서 태어나, 1993년 『현대시사상』으로 등단 시집으로, 『극에 달하다』 『빛들의 피곤이 밤을 끌어당긴다』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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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상 & 생각> 일상적인 권태로운 삶을 통해서 서서히 식어가는 이른바, <한때의 열정적이었던 사랑>을 솔직히 바라보고 그것을 가감加減없이 수용함으로써 그 사랑을 보다 객관적인 입장에서 시인 자신의 내면에 재정립하려는 모습이다 그러한 건... " 냉장고처럼 나는 단정하게 서서 속엣것들이 환해지고 서늘해지길 기다리는 중이다 " 라는 말미末尾의 표현에서 더욱 뚜렷해지는 것 같고 즉, 그저 물불 안 가리고 달뜨는 사랑의 허무함을 지적하는 동시에 그런 사랑에 집착했던 것에 대한 겸허한 성찰이라고 할까 사실, 상대가 없으면 금방이라도 죽을 것 같이 호들갑을 떨던 사랑도 현실의 생활( 月 ~ 日, 그리고 다시 또 月 )을 겪으면서 속절없이 무덤덤해지는 경우가 그 얼마나 많던가 (그럴 경우, 흔히 말하기 좋게 <권태기>라고도 한다지만) 어쨌던 그런 밋밋한 삶이 지속되는 한, 삶에서 더 이상의 사랑을 기대하긴 힘들 것 같다 아마도, 시인은 그런 정체停滯된 사랑을 다시 움직이고 싶은 내적內的 갈구渴求가 있었던 것 같다 다만, 종래의 달뜬 가슴이 아니라 오히려 서늘해진 가슴으로 그 사랑을 다시 말한다는 점에 차이가 있겠지만.. 어쨌거나, 시인 자신이 <시작 노트>에서도 말하듯이 이제는 통증마저도 훈훈한 것이다 이런 면에서 삶과 사랑에 관한 시인의 깊은 통찰洞察이 엿보이는 시 한 편이란 생각 파꽃 위에 앉은 느린 달팽이... 열정적熱情的인 사랑이 아니라 해서, 하나도 급할 것 없는 달팽이의 <투명한 몸을 닮은 사랑>이 고단한 삶의 무게를 지닌 채, <보다 깊고 서늘한 사랑>에로 물기 머금은 촉수觸手를 뻗어간다 - 희선, <사족> 김인숙의 장편<우연>의 내용도 연상되는 시.. "사람이 사람을 만나는 일에 필요한 것이 무엇일까. 그것은 어쩌면 추억이고, 자기 안의 결핍이고, 혹은 상처거나, 홀로 꿈꾸었던 소망일 것이다. 그러나 새로운 것은 아무 것도 없다. 모든 것은 이미 내 안에 있었고, 또한 그의 안에 있었다. 그것이 슬픔이든 기쁨이든, 혹은 모욕이든 찬사든, 그와 내가 치러야 할 생의 순간들은 언제나, 갑작스럽게 내 앞에 있다. 그러나 그 느닷없는 순간을 위해, 나는 이미 오래전부터 그를 알고 있었을 것이다. 사랑이란 것은 항상 낯설지만, 실은 가장 익숙한 것에서부터 온다." - '작가의 말'중에서

Love Hurt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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