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진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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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안희선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댓글 2건 조회 879회 작성일 17-03-19 13:49본문
황진이(黃眞伊) / 안희선
노류장화(路柳墻花)라 비웃지 마소
38년 간, 사랑이 되어 살았으니
또한, 내 앞에서
사랑이 되지 않은 것이 없었으니
아, 나의 엷은 미소로
짧았던 삶을 대신 말하리
중천(中天)의 반달은 오늘도,
고요한 그리움의 잔(盞)에 들고
밤에도 푸른 바다를 뜯는,
내 님의 거문고 소리에
달빛처럼 환해진 영혼 하나
언제나 사랑이었음을 기억하며
펼쳐지고, 또 펼쳐지는
붉은 꽃잎 같은 세월 속에
곱게 곱게 안장(安葬)이 되었으니
내 죽어서도
일점(一點) 후회없는, 사랑이 되었으니
* 노류장화(路柳墻花) : 길가에 늘어진 버들가지와
담 밑에 핀 꽃송이들은 지나다니는 사람마다
아무나 꺾을 수 있다는 뜻에서, 기방의 여인들을
비유하여 일컫는 말
조선 중기(中期) 여류 시인.
개성(開城 ; 松都) 출신. 본명은 진(眞). 기명은 명월(明月).
중종 때 진사(進士)의 서녀(庶女)로 태어나 어머니에게서 사서삼경을 배웠다.
15세 무렵 동네 총각이 그녀를 연모하다 상사병으로 죽자 기생이 되었다고 한다.
뛰어난 시 · 서(書) · 가창 재능과 출중한 용모로 당대의 문인 · 석유(碩儒)들을 매혹시켰다.
석학 서경덕(徐敬德)을 꾀려다 실패한 뒤 사제(師弟)관계를 맺었다는 등 많은 일화가 전한다.
서경덕 · 박연폭포와 더불어 송도삼절(松都三絶)로 불렸다.
기발한 이미지와 세련된 언어구사 등으로 조선시조문학의 백미(白眉)로 꼽히는 그녀의 시조,
<청산리 벽계수야><동짓달 기나긴 밤을><산은 옛 산이로되><어져 내일이여> 등
6수가 《청구영언(靑丘永言)》에 전한다
댓글목록
率兒님의 댓글
率兒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홈페이지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시대를 뛰어넘어 가슴을 설레게 하는 여인입니다.
안희선님의 댓글의 댓글
안희선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조선시대 여류작가들이 몇명 있지만..
(저 개인적으로는) 양반계급이었던 신사임당이나 허난설헌보다는
당시에 사람 취급도 못받던 천민계급의 기녀, 황진이가 쌓은 조선 시조문학의
업적이 더 뛰어나 보이더군요
진정한 여인의 인권, 한 인간으로서 고귀함과 가치를 문학으로 선언했다고 할까..
황진이를 소재로 한 영화, 드라마들이 몇개 있었지만
그 모두 황진이가 벌거벗은 에로물로 만들어 놓아서
한국 시나리오, 드라마 작가들의 드높은 수준을
엿볼 수도 있었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