절망/김수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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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너덜길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댓글 0건 조회 482회 작성일 20-12-06 19:54본문
절망(絶望)
김수영
풍경이 풍경을 반성하지 않는 것처럼
곰팡이 곰팡을 반성하지 않는 것처럼
여름이 여름을 반성하지 않는 것처럼
속도가 속도를 반성하지 않는 것처럼
졸열과 수치가 그들 자신을 반성하지 않는 것처럼
바람은 딴 데에서 오고
구원은 예기치 않은 순간에 오고
절망은 끝까지 그 자신을 반성하지 않는다
- 시집 <사랑의 변주곡>에서, 1990 -
* 시집의 발간 연도는 1990년이지만 이 시의 씌어진 해는 1965년이다.
풍경, 곰팡이, 여름, 속도, 졸열, 수치 이들의 공통점은 반성이 없다는 것이다.
시인은 반성 없는 삶을 절망이라고 부르고 있다.
키에르 케고르식으로 말하면
죽음에 이르는 병은 절망이며,
김수영식으로 말하면
그 절망은 그 자신을 반성하지 않는 것이다.
그러나 반성하는 삶은 행복이 그 손에 쥐어진다.
그가 예기치 않은 순간에, 바람처럼, 구원이 오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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