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부학 교실2/마종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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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너덜길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댓글 0건 조회 428회 작성일 20-12-10 09:55본문
해부학 교실2
마종기
참, 저애 좀 봐라.
꼬옥 눈감고 웃고 있는
흰 꽃으로 가슴 싼 저애 좀 봐라.
여기가 무덤이 아닐 바에야
우리는 소리 없이 울지도 못하는데
한세상 가자고 하다
끝내는 모두 지쳐버린 곳.
네 살결이 표백되어
천장의 흰 바탕 보아라.
너를 얼리던 소년은
하나씩 외로운 척 흩어져가고
수줍어 눈 못 뜨는 소녀야, 말해봐라.
전에는 종일 산을 싸돌고,
꽃 따먹고, 색깔 있는 침을 뱉어
저 냄새, 내리는 햇살 냄새에
너는 웃기만 했지.
우리는 두 손
숨을 멈춘다.
참, 저애 좀 봐라.
그래도 볼우물 웃고
우리들 차가운 손바닥 위에
헤어지는 아늑함을 가르쳐주려는
저애, 꽃순 같은 마음 소리 들어보아라.
- 시집 <조용한 개선>에서, 1966 -
* 오래된 시다.
그러나 풋풋함과 세련됨이 요즘 시에 못지 않다.
실제 1959년 <현대문학>지에 박두진의 추천으로 먼저 등재됐다.
미국에서 의사의 생활을 하면서도 모국어로 시를 썼던 시인,
쉽고 가슴 울리는 그의 시편들은 내 젊은 날의 위로였다.
소녀의 시체를 해부하는 해부학 교실에서 시인은,
한편으론 음울하고, 또 한편으론 인간 신체의 내밀한 구조를 경이에 차서 배웠다고 했다.
그리고 그는 이렇게 아름다운 시를 시체들 속에서 읊고 있었다.
맑고 아름다운 노시인의 건강을 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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