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간 도로 공사/김경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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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너덜길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댓글 0건 조회 451회 작성일 20-12-28 13:39본문
야간 도로 공사
김경후
오랫동안 짓밟힐 길을 깔기 위해
오랫동안 짓밟힌 길을 파낸다
이 길에서 나는 몇 글자나 바꾸었나
열대야 두시
이 길에서
팔월의 부글대는 검은 타르와 역청
부글대는 증기와 거품
아무리 많은 글자를 바꿔도
열대야 두시
이 길에서
후진하고 또 후진하는
파내고 또 깔리는
오랫동안 짓밟히고 짓밟힐 자들
오랫동안 짓밟힐 글자들 글자들
이 길엔 이길 수 없어, 아무것도
이 길에선 말이지
바꿀 게 없어, 한 글자도, 이 길에선
언제나 야간 도로 공사 중
눈부신 타워라이트
롤러차가 뜨겁고 무겁게 굴러가고 있다
- 시집 <오르간, 파이프, 선인장>에서, 2017 -
* 추운 겨울이지만 마음에선 언제나 열대야의 싸움을 벌이고 있는
모든 시인들에겐 이 시가 얼마간의 위로가 되리라.
파낼 것은 파내고, 바꿀 것은 바꾸는 일, 또 어쩔 땐 절대로 바꿀 수 없는 글자들,
그리하여 오랫동안 밟고 다닐 길을 만드는 일,
곧 시의 길이므로,
시인은 언제나 야간 도로 공사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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