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들/안현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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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너덜길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댓글 0건 조회 1,522회 작성일 20-12-29 11:58본문
시간들
안현미
침묵에 대하여 묻는 아이에게 가장 아름다운 대답은 침묵이다
시간에 대하여도 그렇다
태백산으로 말라죽은 나무들을 보러 갔던 여름이 있었지요
그때 앞서 걷던 당신의 뒷모습을 보면서 당신만큼 나이가 들면 나는 당신 같은 사람이 되고 싶다 하였습니다
이제 내가 그 나이만큼 되어 시간은 내게 당신 같은 사람이 되었냐고 묻고 있습니다 나는 대답을 할 수 없어 말라죽은 나무 옆에서 말라죽어가는 나무를 쳐다보기만 합니다
그러는 사이 바람은 안개를 부려놓았고 열일곱 걸음을 걸어가도 당신은 보이지 않습니다 당신의 시간을 따라갔으나 나의 시간은 그곳에 당도하지 못하였습니다
당신은, 당신은 수수께끼 당신에 대하여 묻는 내게 가장 아름다운 대답인 당신을 침묵과 함께 놓아두고 죽은 시간
열일곱 걸음을 더 걸어와 다시 말라죽은 나무들을 보러 태백에 왔습니다 한때 간곡하게 나이기를 바랐던 사랑은 인간의 일이었지만 그 사랑이 죽어서도 나무인 것은 시간들의 일이었습니다
- 시집 <이별의 재구성>에서, 2009 -
* 시간은 겨울처럼 무겁고, 또 여름처럼 가볍다.
당신만큼 되길 원하는 건 내가 그만큼 당신의 시간을 사랑한다는 것.
시도 시인도 나도 당신의 시간 속 한 그루 나무가 되어가는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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