늙은 소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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늙은 소낭* / 테우리
오가는 근처, 수백 년 묵은 이무기다
마구 거칠어진 비늘이며 갈래갈래 우거지며 뻣뻣이 솟구친 날갯짓이며 언젠가 시커먼 아스팔트에 갇힌 묵직한 밑동이 박차 오르는 순간의 용틀임은 가히 청룡의 뺨을 수차례 후려갈기고도 남겠다. 일몰과 함께 얼씬거리던 형광의 여의주 유혹에 불쑥 내민 혓바닥이 헉헉거리던 지난날의 허송이며, 송두리째 태워버릴 것 같던 무정한 불볕과 씨름하던 세월이며, 숱한 비바람과 눈보라의 훼방에 맞서던 승천의 갈망은 그야말로 저토록 처절한 풍채, 마치 거룩함이다. 때론 우악스럽기까지 했지만,
오백 년을 꽉 채워야할지
천년을 더 묵혀야할지
젠장, 한 치 앞을 성급히 지나치는 소란의 질주들 오락가락이다
제 갈 길 헤매는 오리의 무중처럼 금세 먹먹해져버리는
고장난 시곗속 촌음의 정체들이다
당신의 신분은 한때, 이곳의 터줏대감이며 수호신이었겠지
마을의 터무니조차 슬슬 지워져버리는 요즘 당신은
숨 막힌 주변머리들 철벽 콘크리트에 둘러싸인 채
마냥, 꿈틀거리고 있다. 더없이 쓸쓸히
미르의 꿈도 마냥 미루고 싶은 걸까
마침, 오를 때가 된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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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주방언, ‘소나무’
댓글목록
두무지님의 댓글

현대문명의 콩크리트 속에 갇혀 있는
늙은 소낭!
그 이무기는 몇년을 기다려야 승천 할수 있을까요.
아마도 우리의 마음 속에 영원한 소낭(인간의 장기의 일부)
으로 남아 봉사 하겠지요.
잘보고 갑니다
건필을 기대 합니다.
김태운.님의 댓글의 댓글

이무기가 용이 되려면 보통 오백 년이랍디다, ㅎㅎ
그새 승천을 못하면 이무기로 살다가는 거겠죠?
기어이 용이 못된 천년송은
늙어 쓰러지겠지요
감사합니다
추영탑님의 댓글

나무는 나이들면 나이에 걸맞게
스스로의 몸을 다스린다고 보여집니다.
쩍쩍 갈라진 피부, 그래도 푸른 잎을
내는 온후함,
이무기와의 비유는 아주 쩍 들어맞지 않나
생각합니다. 소낭이 소나무의 제주 방언임도
처음 배웠습니다.
감사합니다. ^^
김태운.님의 댓글

고목이야말로 제자리에서 쓰라린 수련을 하는 승천의 심기가 아닐까싶습니다
스스로 제몸을 다스리며 인내하는...
고목들처럼 묵언수행을 하다보면
언젠간 용이 되어 승천하듯
등신불로라도 해탈하겠지요
에구, 무신 소린지...
감사합니다
쇄사님의 댓글

소낭은 비유다.
이 시는 용에 대한 얘기.
용의 상관물로 소나무를 가져 온 것 .... 이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오래 오래
똑바로
본, 눈을 멍하니 쳐다보다 갑니다.
김태운.님의 댓글

늙은 소낭은 마치 청룡이란 생각
아니, 아직 오르지 못한 이무기라는 생각이지요
저가 둘러쓴 껍질이 오랠 수록 용의 비늘을 닮아가지요
그토록 오래 묵언수행을 했으니
더없이 승천할 자격이 있는 거지요
쇄사(소나 쇠 같은 냄새 물씬)님처럼
꼿꼿이 묵묵히 수행하신다면
그 이름 만천하에 떨칠 수 있다
이 말씀입니다. ㅎㅎ
힐링님의 댓글

제주의 풍물 중에서 역사의 맥을 퐁낭을
접하면 마을의 수호신이자 청룡의 기상을
볼 수 있는 것처럼 오랜 세월을 더불어
시간 밖의 시간을 불러오는 소낭은
또 하나의 제주의 사람들의 깊은 전설을 전하는
관문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그 관문에서 자랐으니 상상력을 폭을 넓히면
무한대의 시심을 건져 올리는 그 마음을
함께 나누고 싶습니다.
김태운 시인님!
김태운.님의 댓글

퐁낭(팽나무)이야말로 마을의 수호신이지요
소낭에 비하면 아무래도 낙엽수라 청룡이라 부르기엔 조금 한계가 있지요
큰 소낭은 마을 밖 초입에 또는 뒷 동산에 우뚝했지요
그야말로 신격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지요
여기 소낭은 우리 아파트 근처에 똬리를 틀고 있는데
얼마 못 가서 사라질 것 같다는 생각입니다
근처에 콘크리트들이 얼씬거리는 걸 보면...
추겨주심에 황송할 따름입니다
감사합니다
고현로2님의 댓글

강원도는 소낭그라고 합니다.
야는 소낭그 짱카놓고 어데루 내삔기래요? 멈씰나네... 일케여.
소낭그의 화려한 사유, 현란한 수사에 먹먹하게 헉헉거리다 갑니다.
즐거운 야밤이 되시길 빕니다^^
김태운.님의 댓글

그러고보니 강원도와 제주도의 말쌈이 그럭저럭 비스무리하군요
나무를 낭이라 하듯 낭그라 하는군요
씰데없는 수사가 지랄하면 이 글은 베린 글이겟지요
ㅎㅎ, 감사합니다
시엘06님의 댓글

문장과 형식이 힘차고 거침없네요.
마치 거센 파도를 마음으로 받아 휘갈려 쓴 것처럼 강합니다.
괜히 제 마음도 시원하네요.
잘 감상했습니다.
김태운.님의 댓글

소낭은 더욱이 늙은 소낭은 우리들과 친근한 근친이며 수호신이지요
늘 푸른 모습으로 우릴 단단히 지켜주는 묵묵한 배경이지요
그런 그가 요즘은 무척 슬쓸해보이더군요
불현듯 사라져버릴 것 같은 조바심에서 아쉬움에서
내친감에 용으로 승화시켜본 것이랍니다
서툰 글에 내려주신 말씀
겸허히 받잡겟습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