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정 무지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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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정 무지개
하굣길,
눈덩이가 부어오른 한 소년
소년의 얼굴엔 상처 가실 날이 없다
캄보디아출신 어머니는 집을 나갔고
매일 밤 계속되는 아버지의 술주정
그러나 소년은 아무 일 없다는 듯
할머니가 차려주신 아침을 먹고
매일 녹슨 파란 대문을 나선다
오늘은 미술 수업이 있는 날
그림 주제는 “무지개”
옆에 앉은 아이가 그림을 그린다
끝없이 너른 하늘에
빨주노초파남보
7가지 색으로 구름다리를 만든다
꿈처럼 피어나는 찬란한 무지개 꽃!
소년은 한참을 망설이다가
하얀 백지위에 그림을 그린다
빨주노초파남보
끝없이 너른 하늘에
굵고 넓은 하나의 곡선을 만들고
7가지 색을 겹쳐서 색을 칠한다.
한 아이가 소리친다.
“이게 뭐야? 까만색이잖아!”
“이건 무지개가 아니잖아!”
아이들의 소란에 선생님이 다가와
소년의 무지개를 조용히 바라보다
가만히 소년의 머리를 쓰다듬자
갑자기 소년이 울먹이기 시작하고
선생님은 다정히 어깨를 다독인다.
하굣길
소년의 머리위에 무지개가 떠있다
댓글목록
안희선님의 댓글

혹시, 그 선생님이 샤워님 아니셨나요? (왠지 그럴 거 같다는)
아니.. 근데
얼마나 바쁘셨기에 통 뵐 수조차 없었던 건지
(시인님의 이쁜 얼굴도 가물가물)
하긴, 여변 女辯이라서 늘 바쁘시겠지만요
좋은 시, 잘 감상하고 갑니다
늘 건강하시고 건필하시길요
* 테라스의 꽃 아가들에게도 안부, 전해주시구요
----------------
참, 이 시를 감상하니
문득 <삐에르 르베르디>의 시 한 편도 떠오릅니다
시인님의 시에서 말해지는 그 아이가
꼭 그 아인 것 같아서 - 감정 표현의 방식에 있어서 말여요 (절망이던, 희망이던 간에)
(또한, 물론 르베르디의 시에 등장하는 선생님과
시인님의 시에 등장하는 선생님은 질적으로, 차원적으로 다르단 거
- 그니까, 그 인간성 人間性이 틀리다는 거 - 아이의 절망을 따뜻하게 보듬어 준다는 면에서)
열등생(劣等生) / 자크 프레베르
그는 머릴 흔들어 아니라고 했다
하지만 그는 마음으로 그렇다고 했다
그는 그가 사랑하는 것에는 그렇다고 한다
그는 선생에게는 아니라고 한다
그는 자리에서 일어나고
그는 질문을 받는다
그리고 별의 별 문제가 다 제출되었다
문득 그는 미칠 듯한 폭소를 터뜨린다
그는 그래하며, 모두를 지워버린다
숫자와 낱말을
날짜와 이름을
문장(文章)과 함정(陷穽)을
선생의 위협에도 불구하고
우등생 아이들의 야유에도 불구하고
모든 색깔의 분필을 들고
불행의 흑판(黑板)에
행복의 얼굴을 그린다
핑크샤워님의 댓글

시인님, 오랜만에 뵈니 정말로 반갑네요..그 동안 바빠서가 아니라 어디 좀 다녀 오느라고 시마을에 들릴 수 없었습니다..오랜만에 들렸는데 시인님이 이렇게 건재하시니 위안이 되는군요,,아, 그리고 제 글에서 등장하는 선생님은 제 고등학교 후배랍니다..검정 무지개를 그린 다문화 가정의 아이 마음을 이해할 것 같아서 구지 묻지 않았다고 하더군요...후배지만 훌륭한 선생님이란 생각입니다...열등생이란 시도 참 좋은 시란 생각이 듭니다 특히 이 구절 " 모든 색깔의 분필을 들고 불행의 흑판에 행복의 얼굴을 그린다."이 마음에 와 닿는 군요!, 시인님 오늘도 평안한 하루 되세요
안희선님의 댓글

네,
그러셨군요
암튼, 무탈하신 거 같아서 저도 반갑네요
시에서 말하는 그 따뜻한 선생님은 샤워님의 고교 후배 - 음.. 그 선배에 그 후배란 생각도
이쁜 꽃들은 모두, 잘 지내고 있겠지요
- 그렇다고 말하기
핑크샤워님의 댓글

네 잘 지내고 있답니다
다만, 베란다 꽃들은 변함없는데
테라스는 나무데코쪽은 좁혀서 주로 장미로(4계장미=5~10월까지 개화)심었구요
인조잔디쪽은 넓혀서 철쭉, 수국, 난타나,유리홉스,수박풀꽃,체리,개나리,등등 다양하게 심었답니다.
지금 장미가 한창이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