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향
페이지 정보
작성자
본문
고향
또, 서서히 초롱초롱한 현(縣)을 켜는 향수 때문에
먼 북회귀선에 흩날리는 발자취를 더듬어 과거 속을
들락거리는 그리움이 닿는 곳이 내가 태어난 대구
지산동인데, 두산오거리 남쪽엔 우리집이 있었고
북쪽엔 외갓집이 있었다
그 당시엔 살기 좋은 산자수명(山紫水明)한 고장인데
더구나 수성들은 수성못이 있었기에 그야말로
문전옥답을 가진 외가는 아주 부잣집이고 우리집은
메뚜기 이마빡 정도 되는 땅뙈기도 없는 초막이었는데
오래전에 여느 도시의 동네처럼 되었다
내가 여섯살 될 무렵, 이듬해 초등에 입학하기 위해
대명동 할매집에 들어 갔는데, 어쩌다 이맘때에
외갓집에 놀러가면 부지깽이도 한 몫 거든다는 모내기가
한창인데 못줄도 잡고 중참도 날랐다, 날랐다고 케봐야
기껏! 막걸리를 꾹꾹 눌러 담은 주전자나 식수통이 고작이다
작금! 계절이 뒤죽박죽이지만 옛날에는 참 착해서
어떠한 일이 있드라도 책임완수를 다했다
장마철, 장대비가 쏟아지는 밤이면 *개구리들이
저그 엄마 무덤이 떠내려 간다고 밤새도록 울고불고 해서
잠을 설쳤다,*
(야~이 놈들아! 너그 엄마 생전에 그렇쿰
지독시리 말 안듣고 애 미기더구만 뒤 늦게
후회 해봤자 무슨 소용이 있으랴, 어이구!)
파아란 청자빛으로 휘돌아 나가는 실개천에
버들가지 한들한들, 지붕에는 종달새 노래 따라
박이 춤추고, 땅거미 깔리면 외눈박이 별떼들이
은하수에 조탁(澡濯)한 전설을 수 놓는 멍석에
별이 빛나는 밤,
흐릿한 호롱불에 빙 둘러 앉아 도란도란거리던 곳,
꼬박꼬박 세월을 허물은 가슴 언저리에 꽃부리를
지르고 잠들었는 연둣빛 어린 날들이 있는 고향에
가봐도 낯선 나그네들만 사는 예전의 고향은 뻐꾸기
둥지 위로 날아간 뫼끝에,
마음은 멀어 떠도는 구름 같고, 언제부턴지
무미건조한 회색의 이 세상에 오늘도 희디흰 박주가리
깃털의 풍경 한 점이 삭막한 메아리로 울려 퍼진다
* 전래 동화 인용 (청개구리는 울지 않는다고 함)
댓글목록
김태운.님의 댓글

땅거미 깔리면 외눈박이 별떼들이 조탁(澡濯)한 전설을
은하수 멍석에 수 놓는
별이 빛나는 밤, ///
멋지네요
추영탑님의 댓글

대구가 고향이시군요.
어린시절은 누구에게나 그리움의 산실쯤이지만
세월의 손이 길어 한꺼번에 다 싸잡아 흘러가
버렸으니, 세월이 흘리고 간
그리움 한 조각에 마음만 흥건해 집니다.
문장이 애절하여 깊은 여운을 남겨 줍니다. ^^
쇠스랑님의 댓글

엄마 같은고향은 늘 그립습니다요
머물러 주셔서 감사합니다
좋은 시간 되시구요
쇠스랑님의 댓글

추영탑님,
좋게 봐 주셔서 고맙습니다
자주 행복하십시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