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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걸인의 손

화창한 어느 날 오후

벚꽃이 화사한 버스정거장에서

두텁고 때로 얼룩진 옷을 걸친 노인이

반쯤 감긴 눈을 왼 손등으로 비벼대며

오른손은 나에게 차비를 달라고 한다.

채워지다 만 벨트가

덜컹대는 화물 기차처럼 매달려 있고

까맣게 썩어 뭉그러진 앞니 사이에서

술에 찌든 말들이 툭툭 새어 나왔다.

차 삯도 없는데

무슨 돈으로 술은 저리 마셨을까

불쾌한 마음으로 고개를 돌리려는데

그의 손이 내 팔을 필사적으로 잡는다.

집에 갈 돈도 없는 사람이 술을 사먹어?

누추하나 멀쩡한 것 같은 노인의 사지와

당연하듯 손 내미는 그의 눈을 쏘아 보며

카드밖에 없다며 손을 뿌리치는데

반쯤 감긴 그의 눈이 젖어온다.

젖은 눈을 갈라터진 손등으로 훔치는 손

눈물을 닦는 저 손이 낯설지가 않다.

어디서 보았을까?

숫한 못질 끝에

손바닥이 곰 발바닥만큼 단단해져서

칼을 쥐어도 피 한 방울 날 것 같지 않은 저 손

마지막 못마저

제 가슴에 박은 우리 아버지의 바로 그 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