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지 11) 따먹다
페이지 정보
작성자
본문
따먹다
장미꽃 흐드러진 동암역 광장
챙 모자를 쓴 사내와 중년 여인이 동전 치기를 하고 있다
부와 가난의 국경선을 긋고
낮과 밤의 아찔한 경계를 드나들며
먹느냐 먹히느냐 절체절명의 전쟁놀이를 하는 것이다
꽁초를 주워 물은 사람들이 콜로세움 경기장 검투사대결을
진지하게 바라보고 있다
한 달도 안감은 것 같은 머리
허리를 굽힐 때마다 장미꽃 무늬가 드러났다
우수수 꽃잎이 굴러다니고 머리 희끗희끗한 노구들이
허연 환호성을 드러내고 있다
꿀밤을 먹이며 연신 사내를 따먹고 있는
그러니까 사내는 그녀의 확실한 밥이다
옷까지 훌렁 벗고 따먹히는 것이다
나도 부드러운 촉수 머리부터 발끝까지 따먹힌 적이 있었던가
문득 입영전야 오 촉 전구가 즐비한 골목
무참하게 따먹혀 버렸던
어둠에 돗자리가 말리고 있는 광장
이파리 같은 그녀가 짤랑거리며 하루를 따먹은 놀보다
황홀한 꿈의 궁전으로 들어가고
껍질 같은 사내가
거미처럼 광장을 어슬렁거리고 있다
댓글목록
김태운.님의 댓글

따먹던 시절은 이제 가고 따먹히는 시절이라도 다시 오면 좋으련만, ㅎㅎ
아무튼 삶의 현장을 바라보는 시각이 참 다채롭습니다
우리 갑장님들 한 번 모여야할 텐데...
어슬렁거리며 잘 감상했습니다
김선근님의 댓글의 댓글

울 테우리 갑장님 체구로 보나 뭣으로 보나
아직은 장대 휘두르며 밤이나 홍시깨나 따 잡수실 것 같은디요 ㅎㅎ
어쩌면 산다는 것은 따먹느냐 따먹히느냐
절체절명의 순간이 아닌가 생각해 봅니다
사랑은 따먹혀도 좋은 즐거운 비명이 아닌가 생각도 해 보면서요
늘 따뜻한 걸음에 감사드립니다요
문운을 빕니다
추영탑님의 댓글

우리고장에서는
'처녀를 따먹다'란 말이 한 때 유행했었지요.
"걔, 내가 따먹었다." 하면 연상되는 상황,
남자 입장에서는 따 먹힌 게 분명한데,
여자를 따 먹었다니 얼른 이해되지 않는
어휘였는데, 지금은 그런 소리는 어디로 사라졌는지....
먹어도 그만 먹혀도 그만인 요즘의 세태에선
그 말 자체가 괴리인데, 시인님의 눈에 띈 풍경은 좀 색다른 광경입니다.
부와는 전혀 상관없는 먹힘과 먹음, 그네들의
일상이 아니었으면 하는 마음입니다.
많은 것을 암시하는 듯한 양질의 시를 읽고
한참 생각에 잠겨 봅니다.
감사합니다. ^^
김선근님의 댓글

ㅎㅎ 그렇군요 따먹었는지 따먹힌건지 ,,,,,
처음 인사드립니다 추영탑 시인님
저는 생활시를 좋아합니다
그러니까 어디서든지 직접 보고 들은 것들을 쓰는 것이지요
언젠가 역광장에서 중년 남여가 동전치기 하는 것을
한참 바라보았지요
따먹히면서도 행복한 모습을 ,,,,,,
시인님 반갑습니다
창방에서 빛나는 문운을 이루시기 바랍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