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지 8] 나의 변천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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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변천사 / 테우리
소싯적엔 천덕꾸러기 바깥 신세였다
문도 벽도 천정도 없는 초라한 궁상과 지저분이 동거한 처지
찜통에 얼음장에 겨우 두 다리 엉거주춤 정도였다
누구든 코를 막고 비껴가길 원했지만 그들과는 어차피 불가분의 관계
그때도 물론 나를 찾는 손님들 예외 없이 제 음식을 퍼주고 갔다
찔끔 국물만 던져주는 야박한 인심들도 더러 있었지만
비쩍 마른 사람보다 살찐 사람들이 비교적 통이 컸다
차차 벽장이 자라고 지붕이 씌워지고 문짝이 달라붙었다
세월 따라 나의 미개한 궁지도 서구문명을 따랐다
지금은 그 처지가 비바람 한 점 없는 집안으로 돌연변이했다
양푼이처럼 찌그러지던 손님들 인상도 훨씬 부드러워졌다
평소 하얀 나를 천사처럼 더욱 깔끔하게 살펴준다
간혹, 누렇게 뜬 신경질적인 손님도 있지만
직장에서 변색한 스트레스를 받았거나
집안에서 퇴색한 전쟁을 치렀거나
과음 또는 과식을 했거나
까닭이야 어쨌든 예나 지금이나 단골들 일단 나를 붙들고 잠시 용쓰고 나면
통증이 싹 가라앉는 듯 한결 같이 순산의 표정들이다
저들이 저토록 마냥 기분이 좋다는 건
나의 가리지 않는 왕성한 먹성 탓
요즘 따라 내가 가장 그리운 손님은 언제부턴가 발길이 뚝 끊어져버린 기둥뿌리 둘
지금은 제법 싱싱하게 자랐을 테지만 배곯은 오리걸음으로 버거운 닭벼슬을 쫓는지
설사, 뒤똥뒤똥이건 푸드득이건 도통 오리무중이다
다음으로, 허구한 날 한 시라도 들락거리지 않으면 뒤가 숭숭한,
나를 만나기 무섭게 구시렁구시렁 다분히 꺼림칙한 족속들
하지만 날이 갈수록 더욱 근친처럼 진화하고 퇴화하는
깔끔 떠는 여자와 시들해진 남자
나와 더불어 늙어가는
어느 부부다
싫든 좋든 나는 저들이 품은 생각을 실컷 까발려야 한다
무조건 속속들이 들여다봐야 한다
결국,
저들의 진정한 체온을 느끼는 게
나의 존재가치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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