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 잃은 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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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 잃은 꽃 /
집에서 개를 키운 지 오래다
평생 단벌인 옷에서 청국장 냄새가 난다
뿔난 송아지처럼 세상을 날뛰다 자는 아들놈 대신
청국장 뱃살에 얼굴 비비고 출근한 아침
누구를 찾는지
엊저녁 대문 들여다보던 강아지가
버려진 땅에 뿌리내린 개망초 옆에서
혀 내밀고 주저앉아 있다
어느 용맹무쌍한 주인이 넓은 세상으로 가라고
이곳으로 보냈을까
비 오던 지난밤
너의 첫 야영은 별조차 몰랐겠구나
오들오들 떨고 있는 물안개는 네가 밤새 만들었구나
사람아,
금세 식는 숭고한 사랑은 그만하자
이 별의 지배자가 너무 쪼잔하다
돌아서면 잊히는 이따위 아린 마음이야
모른 척하면 그만인데
나는 왜 짐승의 말 배우려고 애썼던가
아이야,
독한 주사 맞고 정신이 몽롱하더라도
미운 마음은 먹지 마라
어느 날 툭 꺾이는 꽃과 같이 이 별에선
오늘도 누군가 억울한 죽음이 뉴스에 나온다
댓글목록
왓칭님의 댓글

전혀 다른 내용이구만요..... 삼연 마음에 와닿네요. 짝짝짝
왓칭님의 댓글

흑...다시 읽어보니...소주 땡기는 시군요...
이경호님의 댓글의 댓글

하하하 그녀러 신파를 없애보려고 무진장 애썼는데...
신파가 떨어지지 않네요. 에잉 아무렴 어때요, 강아지가 불쌍하지
이런 시 쪼가리 하나가 중요하나요.^^
매사에 왓칭님에게 큰 행운이 스르륵 다가가길 빕니다.
활연님의 댓글

유기와 죽음을 경쾌한 어조로 풀어내셨네요.
버리고 버림 받고, 그 꽃 떨기에도 숨이 매달려 있을 터.
측은지심을 넘어 시를 환하게 하는군요.
멋진 시.
이경호님의 댓글의 댓글

하하... 신비주의로 나타나신 형님시인님 출현에 깜짝 놀랐습니다.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진짜 읽어주셔서 슴가도 뭉클하고...
창피하지 않게 더 공들여 써야겠다는 마음을 먹어봅니다.
몸을 잘 만들어서 소주 한잔 기울이는 날, 기다리겠습니다.
동피랑님의 댓글

밥풀 하나 안 버리고 다 먹었는데 배탈 걱정 없는 경호산 햇반이군요.
유정이보다 알싸하고 소월이보다 더 반짝이는 필력이 도대체 어디서 오나요?
아, 진짜로 너무들 하신다. 날은 덥고 뱁새가 황새들을 따라갈 수가 없어 통재라 통재라 마냥 우옵네다.ㅠㅠ
이경호님의 댓글의 댓글

하하하 무슨... 어쨌든 사촌형님 동피랑님의 칭찬으로 아침부터
술고래가 덩실덩실 파도는 넘실넘실 춤을 춥니다.
백석의 장시를 한 글자도 틀림없이 암송하시다니......
진정한 시인을 뵙고 온 여운이 아직 짠합니다.
한 오백 년 사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