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리퍼 한 켤레 > 창작시

슬리퍼 한 켤레

인성 박 주곤

슬리퍼 하나 먼저 차지하려

두 발이 맞붙어 싸운다

눈이야 뜨는 둥 마는 둥

새벽잠 미련에도 화장실 직행

오른발이 먼저 슬리퍼를 신는다

왼발이 제 신을 못 찾아

오른발 슬리퍼에 끼어들려는 시비에

놀란 주인이 자세히 보니

먼저 신은 오른발 슬리퍼 밑에

하나가 절반가량 포개져

오른발이 밟고 서 있다

앞선 사람들에 밟히는

사람들의 온갖 시비들이 스쳐 지나간다

권력에 밟히고 지식에 밟히는

시비를 피할 수야 없겠지만

지식도 권력도

가진 사람이 살펴 나누면

밟히는 시비는 줄어들 것을

불현듯 양다리에 시비가 일었어도

슬리퍼 한 쌍은 똑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