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은 둥지를 틀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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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은 둥지를 틀지 않는다
한 줄기 바람에 감꽃 툭툭 떨어진다
봄꽃은 여름 꽃들에게 바삐 바톤을 넘기고
바람의 뼈를 물어다 틀었던 태고의 둥지
육추를 끝낸 까치는 입맞춤을 하고 있다
높새바람이 쓸고 간 포장마차
여인이 소주를 마시고 있다
한 모금 마실 때마다 추억들이 비듬처럼 떨어진다
소유할 수도 멈추지도 않는 바람은 활대처럼
악기 통을 황홀하게 진동하지만
협연을 마친 오케스트라 연주자는 무대 뒤편으로 총총히 사라져 버린다
공명을 거부당한 채 나뭇가지 파르르 떠는 여자여
거친 물살을 항해하는 배는 출렁이는 추억을
각주구검(覺舟求劍) 재빨리 빗금을 긋지만
물살에 떠내려 간 빛나는 기억은 찾을 길 없다
멈춰버린 시계가 시간을 온전히 보듬을 수 없듯이
사랑도 그리움도 스쳐 가는 것이리
데이지꽃 같은 연인들이 바람을 등진 채
싫증 벌레가 촉수로 벚나무 이파리를 갉아 먹는
도시의 테두리를 걸어가고 있다
댓글목록
김태운.님의 댓글

싫증 벌레가 촉수로 이파리를 갉아 먹는
도시의 테두리를 걸어가고 있다 ///
ㅎㅎ, 싫증벌레다...
거참, 희한한 벌레도 다 있군요
실어증 내지 기억상실증
다 포함한 그리움의 추억인 듯합니다
심오한 글, 감사합니다
김선근님의 댓글

앗 갑장님이시닷
헤어진다는 것은 아마 싫증 벌레 때문 일거다란 생각을 해 봅니다
그토록 황홀했던 순간들은 어느덧 사라져버리고
사람은 또 새로운 것을 찾아 떠나니까요
아 빛나는 추억을 야금야금 갉아 먹는
징그러운 싫증 벌레 ,,,,,,,
귀한 걸음에 감사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