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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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귀는 외계에서 자라난 흔적기관이에요 라고 적으면 종이는 안개처럼 흩어지고 맙니다
오늘의 운수는 베토벤의 침묵처럼 부서지고 맙니다 오선지에 베토벤이라고 적으면 운명이라고 읽히는 시간입니다 사라진 귀들이 목소리를 움켜쥐려 합니다 귀의 고요는 잉크를 머금은 펜촉을 닮았습니다 들을 수 없는 통증에 검은 눈물을 흘리니까요 시계의 초침소리가 한없이 과거를 앗아가는 중입니다 들리지 않네요 오 엘리제 너의 귀를 빼앗고 싶구나 라고 말하면 이기적인 욕망인 걸까요 아니네요 있어도 듣지 못하는 귀는 차라리 베토벤이 쓰는 게 나을 겁니다
귀가 있었던 자리가 모호해집니다
소리에 대한 기억이 불분명해요
손가락이 건반을 때리는 소리, 페달을 밟는 소리, 마음으로 연주되던 멜로디까지도 잊어버립니다
한 번도 진심으로 피아노를 품어본 적이 없었다는 착각입니다 진심이었다면 잊어버리지 않았을 테니까요
아니
착각일까요
착각이라는 말의 환상에 사로잡힌 걸까요?
나의 귀는 외계에서 자라난……, 외계에서……, 외계……, 라고 적으면 혼돈에 잠겨 웅크리는 나날입니다
댓글목록
노정혜님의 댓글

아주 높은 글에 머물다가
다가 갈 수 없구나
늘 감사 향 필하소서
주거니받거니님의 댓글

필요적 배회인지 멋진 그림을 그렸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