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막을 건너는 달팽이처럼
페이지 정보
작성자
본문
사막을 건너는 달팽이처럼
나에게서 나온 길 나선을 따라가면 나에게로 온다
처음이 나였으므로 끝도 나인 길
지구의 기울기만큼 누워 광속으로 질주하는 외로운 행성
태양에게 다가가다 빛에 부딪혀 처연히 모래가 되라
깨져 소리의 분신이 되는 침니沈泥의 바다가 되라
마등산 근처 후미진 여관 불륜의 삭풍이 밤새 흔들어
성에 낀 유리창 오래된 여관의 이름이 추웠다
입김을 불어 긁는 손톱만큼 열린 낯선 나라 그린란드의 아침 풍경
그 아침은 낯설어서 찬란하다 손톱으로 성에를 긁어 쓴다
나비를 자유롭게 하는 것은 날개이다
그 이전 어느 지층에 묻혀 있을지 모를 날개를 찾아 집을 나섰다
날개가 눌린 캄브리아기의 화석이 사막의 끝 동굴에 있다는 어느 시인의 시집을
읽고 달팽이는 사막을 건넌다
낙타조차 혼자 건넌 적이 없고 자칼마저 바위 뒤로 숨는 땅
바람조차 홀로 건너지 못해 떼 지어 건너는 곳
사막의 노랑 독사 독침에 누워 발버둥 치다 죽은 오후
오전만 살아 있는 곳
달팽이는 나비의 날개를 달고 싶었다
허물 벗은 파충류의 매끄러운 비늘이 되고 싶었다
집을 나선 이후 만나고 보낸 모든 시간의 흔적은 바람에 덮이고
가도 가도 앞은 빠져 나올 수 없는 망각의 모래 지옥
사구에 걸친 달은 언제나 둥근 달이 아니었다
나에게 묻는다 끝까지 건널 수 있겠니? 너라면 사막을 끝까지 건너겠니?
사막의 트라이애슬론은 시작만 있고 끝이 없는 서바이벌 경기
사냥개에게 쫓기다 목말라 죽은 여우의 안광이 비틀거리며
빛의 그림자를 골라 디디는 달팽이 사막을 건넌다
신기루조차 말라 모래무덤이 되는 유배의 땅
한 몸 한 몸 달팽이 길을 걷는다
집을 등에 진 어깻죽지가 가렵다
지구의 속도로 수억 광년이 흐르면
어깨에 돌기가 솟고 날개가 날까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