知와 智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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知와 智
知란
눈이 없는 지식
글과 시를 많이 읽는 사람이
복사해서 내 마음에 저장하는 것
즉, 내 마음에 다른 작품의 복사판을 간직하는 것
心住於法 入闇 卽無所見(심주어법 입암 즉무소견)
마음이 법에 머물러 있으서,암흑 속으로 들어감이며,곧 볼수가 없느니라(혜안이 없다)
智란
눈이 있는 지식
내공을 많이 찾은 사람이
스스로 증득한 것
즉, 바깥에서 찾지 않고
내마음에서 찾아 스스로 아는 것
心不住法 有目 日光明照 見種種色 (심부주법 유목 일광명조 견종종색)
마음이 법에 머물지 않아서 눈이 생기고 광명을 비추니까 곳곳마다 색을 볼 수 있느니라
無名無相絶一切 證智所知非餘境(무명무상절일체 증지소지비여경)
이름도 없고 모습도 없고 일체가 끊어지니,
깨달음은 지혜로 얻는 것이고, 범부의 경계로 얻음이 아니리라(지식으로 깨달음을 못 얻는다)
이런 이유로
고승은 말과 글을 버리고
진리와 깨달음을 찾는 방편으로 묵언수행을 한다
*일부 경 차용 및 일부 응용..
댓글목록
풀하우스님의 댓글

책 5000권 읽은 양반은 필히 이 글을 읽어 보시기 바랍니다.
사람 될려고,마늘과 쑥은 잘 먹고 있겠지 ㅎㅎㅋㅋㅋ
눈 아프고 신경쓰면서 뭔 책을 그렇게 많이 읽어..
덥고 땀나는 데, 난 이유를 모르겠더라고 그런 양반들 특히 지금 마늘과 쑥먹는 당신 말이야ㅋㅋ
동매달 5000개가
금매달 1개보다 못한 것은 잘 알고 있으면서..ㅎㅎㅎ
오영록님의 댓글

知와 智//
늘 깨우침을 주시는 군요..
오늘은 서울 30도 라니
완조니 여름이네요..~~
잘 감상하고 안부 놓습니다.
풀하우스님의 댓글

녜!
오시인님께서
항상 건강하시길요..
김태운.님의 댓글

공부 열심히 하고 갑니다만
깨우치지는 못했군요
그나저나 불현듯이든 문득이 비쳐야 하는데...
해해, 감사합니다
풀하우스님의 댓글의 댓글

김시인님은 책과 저장한 모든 시편들은 불질러도 되겠습니다요.
시에 대한 개념을 잡았으니까요
저는 개념도 못잡고 쓰고 다 버리는데요..
내가 아는 글은 내가 붙들고 있을 이유가 없습니다요..
버리면 더 조은 싱싱한 글을 쓸수 있습니다..
저는 37년전 학교다닌 이후로 책 한 건 안읽은 사람입니다요
실제로 많이 읽을 이유가 없습니다요..
책보다 더 좋은 내공책이 있는 데....
가치가 다릅니다
하나는 눈이 없고..
하나는 눈이 있고..
참고 하시면 정말 큰 시를 쓰실 것입니다
감사합니다.
안희선님의 댓글

知와 智..
사실, 두 한자어의 표기가 다르다는 건 알고 있었는데 (音은 같아도)
이렇게 소상히 깨닫게 해주시네요
감사한 마음으로 읽고 갑니다
풀하우스님의 댓글의 댓글

시의 대가인
안시인님께서 한말씀 주시니까
기쁜 마음입니다
경과 접목하면서 제나름의 글을 함 올려봤습니다요.
저장된 건 아무것도 없고
뭐 무식한 게 용감하다고
앞뒤 안보고, 생각을 일어키면 그냥 올리고 봅니다요..ㅎㅎ
시인님,감사합니다
별들이야기님의 댓글

우리 시인님!
글도 멋지게 쓰시고
넘 웃겨요
혹
시
웃기는 스님 아니신지 ㅋㅋ
불도에도 해박 하시고
내친구가 영주에서 주지인데
불경필요 하시면 말씀 하세요
풀하우스님의 댓글

시마을에서 벗아!
술집 주모,포주야기는 누구도 범하질 못 합니다
제일인자 입니다
많이 배우고 있습니다
시는 해학적인 시가 제일 조습니다
거 참 여렵거던요
거 함 쓰면 대박이고 대작입니다요..
머리가 헐렁 버지도록 연구함해보시길요
감사합니다..
tang님의 댓글

자기의 눈을 뜬다는 행복은 암흑에서 걸어나옴과도 같다는 이야기, 즐거움입니다
이 즐거움으로 생명력의 힘이 일어나며 생명력이 일으키는 영생의 명령 해석은
내적인 열림의 길이 되어 공과의 만남이며 체공이 만드는 우수와의 조우이기도 합니다
자연과 조우하며 교호하는 희열이 되게 됩니다
풀하우스님의 댓글

tang님
감사합니다.
김태운.님의 댓글

풀하우스님도 tang님에겐 못 당하시나 봐요, ㅎㅎ
智자에는 눈이 달린 것이 아니라
사실은 해를 깔고 앉은 거지요
그 앎이 충천하여, ㅎㅎ
풀하우스님의 댓글

글이 넘 익어서 초가 되어도
김시인님의 통역이 없으도
해석은 가능합니다요..다만..ㅎㅎㅎ
*제가 탕님의 말씀을 일반독자들에게 의역하면/
중생(암흑)이 깨달으면(밝음),삶의 즐거움(희열)을 맛보고 행복한 것이다.깨달음은 인간이 살아가는 데 큰 힘을 준다. 이전에 없는(깨닫기 이전,중생) 나의 완성인 공(깨달을 때 내가 공이 됨을 안다,내가 공이란 걸 느낄때 내가 무아가 됩니다.색즉시공)이 되며,대자연과 내가 함께 한다.즉 내가 자연이고 자연이 내가 되어 서로 의지하며 서로 도움을 줌으로써 최상승희유지법(더 높고, 더 깊은 즐거움이 없는 즐거움)이 된다고 말씀하십니다.
지극히 합당하신 말씀을 하십니다./
*(이런 고차적인 말씀은,일부 독자만 아시고, 대다수 일반독자들은 무슨 말씀인지 잘 모릅니다)
참 풀하우스 친절하다(독자들을 위하여 통역까지 다 하고..ㅎㅎ)/
위 본문의 성인말씀에 의하면
앞에서 일체의 상이 끊어지니,
證智--지혜를 증득한다..일체의 상이 장시간 끊어지면서 깨달음은 오는 것입니다요,,그러니까 그 뒤의 문구 증지란 말씀이 따라 나옵니다요..말씀 잘 하셨습니다요.."해" "중생은 "어두움" 깨달은 사람 "밝음"을 항상 비유하면서 말씀하십니다..그래서 깨달으면,즉 밝음이 오면 어두움이 즉시 그냥 사라진다..원래 어두움은 없느니라.. 밝음만 나타나면 어두움은 그냥 사라진다..이렇게 말씀을 하십니다요..분석하면 참 재미있습니다요..왜 성인께서 원래 어두움은 없느니라고 말씀을 하시는 그 이유를 알아야합니다..중생들 스스로 어두움을 만들었다는 것입니다..즉 탐욕,분노,애취,취사,나다,너다,중생이다 아니다,수명이 있는 것과 없는 것을 분별하고,영원토록 오래살려고하고,산다,죽는다 이런 것 등등 즉 중생 자신들이 만들어서 제들이 괴롭고 고통당하는 것을 보시고,깨달아서 그런 생각이 안일어나도록 제도를 하는 것입니다요..그래서 그 괴롭고 고통스러운 중생(어두움)을 제도하여 밝은 곳(깨달음)으로 멸도한다는 뜻입니다요..원래 어두움이 없고 밝음(깨달음)이 오면 어두움은 사라진다, 이렇게 말씀을 하십니다. 깨달음은 지혜(밝음)로 얻어지는 것이거더요 (이건 불변입니다, 지식하고 아무런 관계가 없슴다) 박사,석학,이런사람들은 거짓말이 많이 들어서 정말 경을 공부하기가 엄청 힘듭니다. 왜나하면 지식을 많이 얻은 양반은(책을 많이 읽은 사람) 자꾸 경과 자신이 얻은 지식과 비교하면서 의심을 하거든요..그래서 깨닫기가 엄청 힘듭니다..차라리 경, 공부를 할 땐 무식한게 더 좋습니다요..왜냐하면 청정신심을 내서 발심을 하고 경말씀 그대로 믿고 그대로 따르고,푹 삭아서 내가 경이 되면 깨달음이 빨리 옵니다..누구나 이공부를 한다고 이렇게 된다는 것은 아닙니다..착한성품을 가지고 어느정도 의식주는 해결이 된 사람이 현재의 삶을 만족하는 사람에게(물질의 양과 관계없이) 적용된다고 보시면 됩니다..왜냐하면 지금 당장 먹을 밥이 없고 빚에 쪼들린 사람,또한 욕심이 많은 사람등 이런 사람은 이 공부한다고 이룰수가 없습니다요..그래서 선남자,선여자가 청정신심을 내서 발심을 하면,이란 조건을 붙이십니다요..불의는 공한 상태가 되어야 눈이 생깁니다..깨달음이 온다(심안,혜안)..이런 말씀이 있습니다..불의즉 불공의는 울 세계와 반대개념이라고 생각하시면 이해가 빠릅니다.상에 머물면 육안은 달고, 심안(혜안)을 못 보는 당달봉사라고 생각하시면 됩니다..ㅎㅎ상에 머물지 않아야 눈(심안,혜안)을 달고 깨달음이 온다는 게 정설입니다 (상이 일어나면서 깨달음을 얻을려고하는 사람은 반딧불로 수미산을 태울려고하는 것과 같다는 엄청난 말씀을하십니다..왜냐하면 상을 끊어야 깨달음이 오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자꾸 상을 여의라,상을 버려라 말씀을 하십니다..번뇌 즉 사상을 여의고, 중생을 깨달도록하고 반야바라밀에 진입시킬려고,사상을 버려라,여의라 자꾸 이런 말씀을 하십니다.
보살은 불응탐착 소작복덕,불수복덕(보살은 물질을 탐하지 않고 복을 짓기만하고 복을 받지 않습니다)..그래서 무주상보시를 합니다(상에 머물지 않고 보시를 합니다,즉 내가 보시를 한 것을 자신의 마음이 모르게 보시하라는 것입니다ㅎㅎ) 상에 머물면서 보시를 하면(욕심,탐욕,보상심리,과시용,눈치,명예등을 생각하면서 남을 도우는 것) 보살이 아닙니다.."보살은 깨달은 사람")..보살이 이런 복을 지을 때 즉 (심부주법 유목,일광명조 견종종색)이 됩니다..그런데 상에 머물면서 보시를 하면 위와 같이 (심주어법 입암 즉무소견) 된다는 것입니다..저 위에 본문에서 자꾸 많이 읽어서 내마음에 저장하면(욕심,탐욕) 눈이 없다, 버리면,마음이 공하면(탐욕,욕심이 없으면) 눈이 생긴다..왜냐하면 깨달음은 생각을 여의고 버릴때 그리고 끊어질 때(모든욕심,탐욕,분노,애취,취사가 일어나지 않을 때) 오기때문입니다...물론 보살이 되면 보살자신이 무아이기 때문에 그런 상은 일어나질 않습니다..성인께서 말씀 하십니다. 하이고 수보리 약보살 아상 인상 중생상 수자상 즉비 보살(왜냐하면,수보리야 만약 보살이 아상 인상 중생상 수자상 이 있다면 곧 보살이 아니니라(깨달은 사람이 아니다).. 무아상 무인상 무중생상 무수자상이니라..4상을 여의고 버려라고 강조를 하십니다 그래면,깨달음이 온다는 말씀입니다.. ..이런 무서운 말씀을 하십니다..통달무아법자 여래설명 진시보살..무아에 통달해야 여래가 말씀하신 참 보살이니라....또 이런 엄청난 말씀을 하십니다..보살 또한 무아이기 때문에 어떤 욕심,탐욕이 일어날수가 없지요..
참고로 말씀드리면, 오안이 있습니다요..
육안,천안,혜안,법안,불안..수양강도에 따라서 단계적으로 점점 가속도가 붙어서 신통 묘미가 다들 일어납니다요..천안부터 신통이 일어나지만,부처님의 불안이 되면 앞의 4안은 당연하게 얻고 불가사이한 신통,묘미가 일어납니다요.. 모든 중생들의 마음을 다들 안다고 말씀하십니다..진리와 관련된 세상의 모든 이치와 우주법계의 모든 이치를 다들 훤하게 꿰뚫고 알고 계신다고 보면 됩니다...모르는 게 아무것도 없다가 정답입니다.. 울 중생은 육안 딱 하나 뿐입니다..수양정도에 따라서 눈의 갯수가 달라집니다..법안은 4개의 눈을 가집니다..부처님의 수제자 수보리 ,의상 지눌,원효,의천,성철(3.5)..부처님은 5개의 눈을 가지고 있습니다..저는 1.1개..ㅎㅎ..자꾸 공부하고 내공을 딲으면..만보기처럼 자꾸 올라갑니다요..ㅎㅎ..김시인님은 1.001개..ㅎㅎ..이 글을 읽고 의심을 질문했기 때문에 수양의 점수가 쪼매 올라간 겁니다..지식하고 아무런 관련이 없습니다..그리고 일반독자들은 1.0개..ㅎㅎ..이것은 마음의 눈입니다 즉 심안..저위의 본문의 글 또한 심안입니다.. 이젠 "해"란 의미와 "눈" 의심이 풀릴 것입니다, 의미에서 같은 말이다고 보시면 됩니다...내공의 마음의 눈이기 때문에 깨달으면 "해"가 없으도 보입니다ㅎㅎ 더 명칭하게 나타내기 위해여 바깥세계의 밝음을 뜻하는"해"를 넣었다고 보시면 됩니다..깨달은 자 즉 밝음과 지혜...중생 즉 암흑과 미혹..대비하기 위한 방편일 뿐입니다..
내가 시를 지어서 내문서에 보관하면 그 게 나의 집착,욕심이거든요..고생해서 만든 작품,버릴려고 하니까 아깝거던요..그런 집착,욕심이 일어나면 내가 마음을 비울수가 없지요..비울수가 없으면,마음의 눈(혜안)은 생기질 않습니다요..그래서 버리면,즉 제가 비우면 더 큰 시를 쓸수가 있다고 말씀드렸습니다요..막노동 막장일 하면서 고생,고생해서 1000억의 돈을 번 사람이 불우이웃돕기 성금으로 다들 헌금하니까 그렇게 좋을 수가 없다는 말씀, 보도를 통해서 접한적이 있으실 겁니다..이것과 이치가 똑 같습니다요.. 왜그러냐하면 꽉찬 욕심의 마음이 사라지고 텅빈 마음이 되어서 자신의 마음자리가 편안하기 때문입니다...
함께 읽어시면 이해가 좀 되실 것입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