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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오는 날의 단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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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profile_image 공백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댓글 0건 조회 712회 작성일 16-05-20 12: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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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비오는 날의 단상


1.

 

이가 빠진 싸리빗자루처럼 기대어 있었다. 당신이 오랜 세월동안 쓸어내렸던 것은 바닥이라기보다 오래전에 지어준 이름들이겠지요, 쉽게 날려가지만 가끔 돌아오곤 하는. 내가 부를 수 없지만 당신이 지어준 이름을 불렀다가 부서진 쓰레받기처럼 엎드려 고개를 숙인 채 분리수거하지도 못한 채, 43번 버스를 타고 병원에서 집으로 돌아오던 길. 타인의 문장을 읽다가 말라버린 내 잉크가 촉촉해진다. 흘러넘친 단어들과 따옴표가 되지 못한 말들이 창가 너머에서 아른거리고 신호등 불빛이 바뀔 때마다 손가락으로 바깥 풍경을 지웠다가 다시 써내려가고 길어진 수식어, 물고기 같은 것들이 내 동공으로 불쑥 들어온다. 이내 색깔을 잃은 것들은 저마다 아래로 떨어져 죽고 만다.

 

2.

 

비가 오면 머리맡에 없던 묘비가 세워진다. 검지로 내 이름 석자를 썼다가 지웠다가 매 순간 슬픈 단편의 주인공이 된다. 웅크린 것들은 모두 무덤이 되고 만다는데 나는 지금도 차례를 기다리는 중이다. 아버지의 두 눈에도 할아버지의 두 눈에도 동전 두 닢 놔드렸는데 보라색으로 물든 창가를 두드리는 검은 손들 이리 오라 손짓하는 새벽 다섯 시 충혈되지도 않았는데 그런 척 빨개진 눈으로 또 다른 내 이름을 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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