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지 13] 아침 햇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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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 햇살 / 안희선
영롱한,
그래서
다시 시작하는
하루의 풍경이 되고,
하늘엔
첫사랑이 지나간 듯
투명한 푸른 공기
아,
나부끼고 넓어지는
아침 햇살
너라는 그리움에
하얀 밤을 지샜던 나도,
찬란한 아침에 물들어
널 기다리던 설레임은
향긋한 기지개
아침
댓글목록
왓칭님의 댓글

심수봉씨의 노래를 듣는 느낌...어떤 형식 안에 마음을 부여하고 맑고 단결하게 자신을 승화해가는 느낌...어떤 다른 것들을 쓸 줄 몰라 쓰지 않는 것이 아니라 이 형식이 선생님을 상징하는 것 같습니다. 샤넬은 늘 샤넬인것처럼요. 너무나 잘 읽었씁니다. 첫 사랑이 지나간 듯...
안희선님의 댓글의 댓글

저는 심수봉 하면. 늘 12 .6이 떠오릅니다 - 가수님에겐 미안한 얘기지만
51.6% 도 떠오릅니다 - 그 어떤 따님에게도 미안한 얘기지만
마, 그만 되었다.. 많이 해 묵었다 아니가 - 제 졸시에겐 항개도 안 미안한 얘기지만
- 왜?
전에 몇번 올렸던 글인데, 이미지 핑계로 또 올린 글이기에
아무튼, 부족한 글에 머물러 주셔서 고맙습니다
왓칭 시인님,
왓칭님의 댓글

역사의 희생자...그럼에도 그녀의 노래는 참 아름답습니다. 트로트라는 형식에 자신을 가두고 있지만 그녀의 목소리나 발성법이나 그녀의노래는 유사품이 거의 없는 천재적인 것이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미당을 가장 경멸해야할 것 같습니다. 그를 아버지라 부르며 그녀를 딸이라 부르지 않는다면...우린 무엇으로 우리들의 시를 증명 할 수 있을까요? 제가 잘못 비유한 것이라면 용서하시기 바랍니다.
안희선님의 댓글의 댓글

별 말씀을요
용서라니, 당치 않습니다
사실, 미당만큼 기회주의자도 없었지요 (일제시대에 그랬고, 군사정권 때도 그랬고)
하지만, 그의 시편들은 좋아합니다 (특히, 그 어떤 절정의 세계로 흐르는 전통적인 가락과 운율을)
하여, 시는 시인과는 또 다른 <독립된 살아있는 생명체요 유기체>라는 생각도 해봅니다
거듭, 머물러 주심에 감사드립니다
왓칭님의 댓글

그런데 미당과 심수봉은 다릅니다. 미당은 역사의 수혜자고, 심수봉은 역사의 희생자 아닐까요? 미당이 기회주의자였던 것 역시 굴절 많은 역사에 대한 개인의 희생일 수도 있다고 보면 둘 다 연민의 여지는 있지만...그 군사정권 시절...잘 나가는 시인도 아니고, 그냥 노래 잘 부르는 여대생이 병풍 뒤에 숨어서 노래 부르지 않을 수가 있었을까요? 그녀가 반쯤 돌았다는 이야기도 숱하게 들었는데..언젠가 능력이 된다면 그녀를 위한 시를 쓰고 싶습니다.
안희선님의 댓글의 댓글

쉽게 읽히되, 가볍지 않은 시란 관점에서
위의 졸시는 명백한 또 하나의 실패작이라 할까요 (아침 햇살)
아무튼, 졸시에 심수봉을 언급하셔서 .. (실제 노랠 부른 사람은 강수지인데)
어쨌거나 제 댓글도 자연히 샛길로 빠진 느낌 (웃음)
이쯤에서 덧 붙이고 싶은 말은
(늘 하던 말이긴 하지만) 시는 시 이상도 시 이하도 시 이외의 다른 아무 것도 아닌,
시 그 자체로서의 예술이어야 한다는 거
사실, 시인 역시 한 나약한 생활인이라는 관점에서
그의 개인적 삶이 문학적 삶과 완벽히 일치해야 하는 점에 관해선
저 자신 확신이 없습니다
- 왜?
제가 졸시에서 표현한 것들이 내 실제적 . 현실적 삶과는 많은 괴리가 있음을 느끼기에
앞에서 미당을 기회주의자라고 말하긴 했지만,
정작 목에 총칼을 들이대는 상황에서 의연할 인간이 과연 얼마나 있겠는지..(솔직히 까 놓고 말해서)
미당은 6, 25 때 공산치하에서의 삶도 겪었는데, 그때의 부역한 심적 충격으로
상당 기간 실어증에 걸리기도 했다는
아무튼, 한 인간의 현실적 삶과 문학적 삶을 동일시 한다는 거 물론 바람직 하지만 (궁극적 바람)
그렇지 못한 경우도 있음에 그의 문학에 그 어떤 흑백논리의 적용은 무리가 있단 생각입니다
그나저나, 심수봉, 혹은 병풍 뒤의 그녀를 위한 시를 쓰시겠다고 하니 기대해 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