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벤트 1) 홀치기 나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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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멀어서, 가장 길고 질긴 별빛이 좋다
하얗게 남기고 싶은 자리를 칭칭 홀치고
꽃 진 연산홍, 헤픈 접시꽃, 석류 나무 담장 밖,
전신주 외등마저 깨진 진한 어둠에 푹 담가 두어야 한다
그 어둠 다 빨아먹은 흰 꽃들을 청걸레처럼 비틀어 짜 두었다
아침이 오면 한랑 한랑 펼쳐 널면 된다
제 색깔을 찾아 떠나온 길들이 노선표처럼 뒤엉켜
푸른 잎을 이정표처럼 매달고 놓치는 바람은 늘 빈 버스였다
밤새 노래방에서 거품 많은 어둠에 흠뻑 빠졌다 돌아오는 누이는
말을 섞으면 물이 든다고 담배 연기로 말머리를 꼭 묶어버렸다
금방 물감에서 건진 나염천에서 뚝뚝 떨어지는 물감처럼
불은 젓이 말라 붙은 홀복을 비벼 빠는 누이의 욕슬은 붉었다
그대를 물들이고 싶어
밤새 뜨거운 누액(淚液)에 푹 쪄낸 고치처럼 멀건 눈빛을 풀어
칭칭 묶어두고
물감을 짜내느라 튜브처럼 찌그러져 가는 밤에도
사랑은
하얀 나팔 치마 팔랑이며 택시를 잡는 그대를 모르는 체 하는 일,
온 몸에 피멍이 들어도 밧줄 묶인 자리가 하얗다
내장까지 토해도 함께 토해 낼 수 없는 이름들이 있어
아침이 오면 꽃들은 피는 것이다
꽁꽁 홀쳐 두었던 실을 푼다
빨강, 파랑, 보라
제각각 어둠 속에서 건져 온 색깔들을 접이식 양산처럼 펼치면
활짝 활짝 피어나는 무늬들,
졸도 할 듯 급소들을 꽁꽁 묶어두고
끝내 물들이지 않은 속내를 이제사 드러내는,
꽃의 중심이 하얗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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