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고인지 퇴보인지 모르겠으나] 행복한 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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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한 잠 / 안희선
- 누군가 말하길, 이 거리는 딴 유성(游星)에서 불어 온
바람을 닮았다고 했다 -
가엾은 희망으로 발이 부르튼 사람들은
어두워질 적에야 비로소 밝아지는 눈을 지녔다
벌거숭이 같은 고독들이 행진을 한다
아득한 먼 곳에서 그리운 별이 하나 사라진다
행복했던 기억들이 안타깝게 서성거리며,
어둑한 거리에 가로등 불빛이 되었다
정녕 분별없는 숨바꼭질에
물처럼 투명한 자살을 꿈꾸는,
그 거리를 나도 걷는다
이 거리는 사지(四肢)의 욕망에 매달려,
아무런 전설도 없고 감동도 없다
오로지 발걸음의 반음(反音)에 따라
끝없이 맥(脈)을 이어 갈 뿐...
누군들 거역하고 싶지 않았을까
모든 것으로 부터 갈라놓는,
익숙한 어둠의 차가운 이 거리는
행복한 잠이 필요하다
티없고 죄(罪)없는 거리를 꿈꾼다
그곳에는 이따금 허물어진 모험의 상처가
아무는 소리가 들린다
정겨운 사람들이 소리없이 지나간 흔적을 따라가다 보면,
사랑의 젊은 한 시절이 언제까지나
그대로 가는 것처럼 느껴진다
여기선 아무도 마주치는 사람이 없다
그러나 분명치 않은 고독이어서 두렵지 않다
걷다보면, 만날 사람이 있음을 알기에...
무서운 황폐가 기억의 저 편으로 사라지고
다만, 새로운 침묵이 어둠을 떨어낸다
낯설던 해후(邂逅)의 마음이 가로등 불빛이 된다
사랑하는 사람의 얼굴을 비추기 위해,
행복한 잠이 필요하다
<넋두리>
기계 . 전자문명이 정신을 앞서가는 시대,
알파고가 이세돌을 가볍게 이기는 시대,
개인이기주의는 말할 것 없고,
집단이기주의도 뒤질세라 팽배한 시대,
그로 인한 집단과 집단 간의 단절의 시대,
그러다 보니 집단과 개인의 단절도 초래하게 되고
나아가 사람과 사람 사이의 단절의 시대,
결국은 나와 나 자신과의 단절에까지 이르는
극심한 소외의 시대에 살고 있음을 느끼게 된다
이런 경우, 동시대의 문학은 당연히 그런 단절과 소외에서
벗어나는 길을 일반대중에게 말해주어야 함에도 불구하고
문학의 사회적 기능은 돌아가신지 이미 오래인 것 같아서
그 어떤 씁쓸한 소회마저 머금게 된다
요즘은 그 기능 수행의 가장 핵심적 위치에 있는 시인들조차
그저 그런 신변잡기나 그 무슨 알쏭달쏭한 타령조의 노래로
시간을 죽이고 있으니 말이다 ( 그 가장 좋은 例 : 내 졸시들 )
어쨌거나, [모든 의미의 상실이란 아픈 현실]을
잠시라도 잊기 위해선 행복한 잠이 필요한 거 같다
혹은 잠시나마 앞 못보는 소경이 되어, 세상이 그친 모습을
행복한 잠으로 바라보는 것도 좋겠고
기왕에 눈 한개도 멀었는데...
뭐, 그 잠에서 깨어나 꿈에서 획득한 빛을
어두운 세상의 거리에 얼마나 효과적으로 조명할 건지는
각자 하기 나름이겠지만...
Chaconne (w / Guitar)
댓글목록
kgs7158님의 댓글

행복한잠속에 꿈꾸는 아기얼굴은 너무 아름답습니다
감사합니다,해피사월애
잡초인님의 댓글

발이 부르튼 사람들중에 한사람입니다
안 시인님에 시를 접하다 보면
그 깊이와 감명이와 닫습니다
사랑하는 사람의 얼굴을 비추기 위해
행복한 잠을 청하시는 시에서
오늘밤 저도 행복을 찾아가렴니다
감사 합니다
안희선님의 댓글

부족한 글, 아니..넋두리에 불과합니다
너그럽게 머물러 주신 kgs7158님,
잡초인 시인님..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