書店에서 - 굳이 퇴고라 한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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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점에서
요즘도
따스한 체온의 육필(肉筆)로
편지나 일기, 혹은 시를 쓰는,
사람들이 있을까
먼지 쌓인 낡은 그리움들이
아직도 서가(書架)에 남아 있으니
애써 힘들게 찾아보면,
어딘가엔 있을 거라 생각해
빛바랜 추억처럼
사람들의 가슴에
겨자씨만한 사랑만 남아도,
이 세상은 끝까지 따뜻할 거야
그러니 괜한 슬픔 같은 건
자초(自招)하지 말 것, 이라고
짐짓 느긋하게 말한다면
순진한 걸까
또는 멍청한 걸까
그것도 아니면,
잔뜩 그리움에의 오기(傲氣)만 남은 걸까
이 삭막한 시대에 바짝 악만 남은 걸까
그러나 이제는 사람들,
지치고 고단한 영혼을
어디 한 구석
편하게 내려놓지 못하는데
왜?
피차 서로 속을까 두려워서,
속절없이 영혼 다칠까 지레 겁이 나서
말이야
서점에 즐비하게 진열된
사랑을 말하는 수 많은 책들처럼
한번 팔고 나면 그만인,
표정이 온통 느끼하기만 한 것들
요즘 누가 그런 책을 산다고
요즘 누가
한번 말하면 그만인, 사랑을
바보처럼
가슴에 소중하게 품는다고
- 안희선
El Camino
댓글목록
프리드리히님의 댓글

요즘도 따스한 체온의 육필(肉筆)로 편지나 일기, 혹은 시를 쓰는, 사람 여기 하나 있습니다.
혹시 아시나요? 최승화라고...
시어머니보다 말리는 시누이가 싫다는 말 혹시 아시나요?
냉소적으로 보는 세상은 편하신가요?
저와 글로 드잡이 한 판 뜨자는 말로 들린다는 것...
그럼 종로 종각 4번출구 뒤에 있는 종로주막으로
오실 것
음악은 좋네요.
안희선님의 댓글의 댓글

한 판 뜰 체력이나 있다면, 좋겠어요 (웃음)
솔직히 우선, 냉소적으로, 저 자신 부터 지우고 싶은 요즈음입니다
힌쪽 눈탱이까지 맛이 간 처지라..
그리고, 저.. 그 뭣도 말린 적 없는데요 (골 때리는 저 하나만 감당하기도 벅찬데, 뭔 남의 일까지나 참견?)
아무튼, 건필 + 건안 + 씩씩 + 그밖에 등등 두루 튼실하소서
어차피, 한번의 삶 아니겠습니까
그 누구가 대신 살아주는 것도 아니고 말입니다
* 그나저나, 글 같잖은 잡문인데.. 음악만이라도 좋다니 다행입니다
시앙보르님의 댓글

늘 많은 생각을 품게 만드는 시편입니다.
출판이 쉽다보니 너무 많은 책들이 '책'이라 우기고 범람하지요.
전에는 서점에도 발품 팔고 그랬는데 요즘에는 거의 가질 않습니다.
갈 일이 생기면 베스트셀러 코너는 피하고요, 구석진 후미진 (제가 좀 음험합니다. ^^)
표지색이 바랜 책을 빼들곤 하죠. 혼신의 힘을 기울여 쓴 역작들이란, 어차피 기록물의
한계에서 고뇌하는 생명체가 아닐까 싶습니다.
시인님의 1연과 2연이 무척 좋습니다. 자.게 아포리즘들이 책으로 출판되기를 빌어봅니다, 이러면
또 거절하시겠지요. ㅎㅎ 사춘기 때만 해도 아포리즘 좋아했는데 요즘엔 종말인지 뭔지~~~
안희선님의 댓글의 댓글

이 시대에 오래 전에 사라진 사랑, 혹은 그리움 같은 거를
왜 직설적으로 말하지 않았는가? 라고 말씀하시는 듯..
하긴, 저도 서점에 가 본지가 까마득 합니다
감사합니다
시앙보르 시인님,
잡초인님의 댓글

빛바랜 추억들이 새록새록 기억으로 나풀거립니다
예전에는 펜팔을 하면서
볼펜으로 꾹꾹눌러 쓰던 연애편지
서점에들러 시짐하나 사보던 시절이 있었습니다
요즘은 글 하나도 컴퓨터를 이용하고
시 한편 보려고 해도 인터넷이 다 해결해주는 시대가
삭막하고 아쉽습니다
옛생각을 불러주신 시인님께 감사함을 전합니다
안희선님의 댓글의 댓글

글 같지도 않은 글..
머물러 주신 것만 해도 감사합니다 - 괜시리, 겸양의 내숭 떠는 거 아님
잡초인 시인님,
늘 건안. 건필하소서 - 상투적 인삿말?
암튼 , 무조건 건안 . 건필하시길요 (眞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