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요한 마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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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 고요한 마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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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앙보르
- 팽나무가 둘러싼 포구에서는
4월 보름달은 그림자를 스르르 지운다
처녀자리와 궁수자리를
재 너머 달에 꽁꽁
가두운 마을에서는
단지에 담가둔 술밥이 물이 되고,
반짓고리에선 국화매듭이 집을 나가고,
양울음은 메아리로 돌아오지 않는다
열네 개의 자음에게 탈출할 시간을 주기 위해
달에서는 모음부터 떨어진다
혁명처럼 수심이 한순간에 깊어졌다
사랑은 자음부터 혀에서 나오지만,
사랑한다,는 모음부터 몸에서 나오고,
양털이 입술에 닿으면 양은 몸에서 나오고,
화살이 눈으로 들어갈 때 눈물은 몸에서 나오고,
궁수가 처녀에게 들어가면 처녀가 몸에서 나오고,
은하수 물굽이로 흰 쪽배
마을이 달을 두드려도 배가 몸에서 나오지 않는다면
마을은 꿈 속에서만 꿈을 꾸고
꿈 속에서만 여윈 달을 휘젓고
아쟁 명주실이 툭 끊어지고
만 灣 아래 우물이 무너진다
나는 무거웁게 젖어드는 양털
활시위를 찾는 시치미 화살촉
계수나무에서 둥둥 뜨는 악몽이다
줄줄이 떨어져나온 해초색 다홍치마다
단지를 채운 물은 이제 술이 되지 않고
양은 숲에서 여전히 돌아오지 않고
연지분갑 속살이 달처럼 하얀데
등대는 저리 멀리까지 나아가는데
댓글목록
두무지님의 댓글

옛날 고요한 마을!
깊은 심혈을 기울인 작품으로 느껴 지네요,
임의 시상을 다 헤아리지 못해 죄송한 마음,
노력하며 함께 하는 시간을 갖습니다.
언어는 입에서 나오지만,
행동은 몸에서 나오는 것 같습니다.
감사 합니다.
김태운.님의 댓글

화려한 시어들이 고요한 마을의 행간에서 춤을 추고 있네요
멋진 시향 감사합니다
시앙보르님의 댓글

비틀 생각은 없었고요, 세월호 참사 관련입니다.
앞전에 올린 시보다 이 시를 먼저 준비했는데 잘 안풀려서 묵혔다가
다듬어 올렸습니다.
그동안 너무 드러나는 시만 적은 게 아닌가 싶어서
배운답시고 상징과 환상을 버무렸는데 맛이 이상해졌습니다. ^^
이건 독습노트라 여기고 계속 붙잡고 씨름 좀 해야겠습니다.
편한 밤 되세요.
왓칭님의 댓글

샤갈의 그림을 보는듯...아름답습니다.
반짓고리에선 국화 매듭이 집을 나가고
양울음은 메아리로 돌아오지 않는다.
아름답고..읽는 사람의 시심(시샘)?을 자극하는 시입니다.
시앙보르님..다른 시들도 참 좋군요.
시앙보르님의 댓글

왓칭 시인님, 오랜만이라 넘 반갑습니다.
올려주신 시편 즐겁게 감상했습니다.
다음 시편도 기대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