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시대의 시가 따뜻해야 하는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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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시대의 詩가 따뜻해야 하는 理由
지금은 사는 것만으로도
이미, 충분히 외로운 것이다
뜬 세월 묻히는 세상은 살 갈라지고,
불어터지고, 뼈 속까지 아픈 사람들이 그들의
슬픈 시간을 낚는 소리만
사방천지에 가득할 때
시(詩)마저 날카로운
삶의 선(線)을 차갑게 그어대야 할까
그렇게 인색해야 할까
가슴 속 내명(內明)으로 흐르는 따뜻함을
차마 삶의 소중한 양식(糧食)으로 삼지 못하고,
살아가며 어여쁜 생명도 되지 못하고,
하루, 하루, 해골인형(骸骨人形)이 되어가는
가엾은 사람들에게
- 안희선
Domani Piove - Yun Sang & Enrico Ruggery
댓글목록
시앙보르님의 댓글

^^ 따뜻하면서도 차가운 컬트 레시피~~
규정에 대해서는 말할 자격이 못됩니다만, 하소연이나 넋두리를 하면서라도
어떻게 버텨보려고 하다보면, 가끔은 의도하지 않은 시도 나오곤 합니다.
소설가는 '이문구 님', 시인은 '신경림 님' 을 제일 존경합니다.
편하고 따뜻하고 쓸쓸하고 애절해서, 기가 꺽일 때 귀감이 됩니다.
시마을도 이름 없이 빛도 없이, 가꾸시는 분들의 따뜻한 애정 없이는 이리 아름다운 사이트가 되지 못했겠지요. ^^
안희선님의 댓글

어차피, 이 시대의 시는 따뜻해지기엔 이미 늦은 감도
하긴, 이제 와 시 홀로 따뜻해진들 그 무슨 의미가 있을까요
- 시가 제 할 일을 제대로 못해, 세상과 사람들은 이미 거대한 차가움으로 굳건히 자리하는데
또한, 시는 지금 이 시대에 그 어떤 산파역도 못되고 사회의 구동력도 되지 못함을..
다만, 시인들의 (개인적) 유유상종을 위한 도구 또는 살아가는 방편으로서
하나의 처세술 정도의 기능은 있다고 할까 - 이건 지극히 개인적 생각이니 혈압 높일 일은 아니고
아무튼, 그렇습니다
어쨌거나, 규정을 위한 시라면 규정이 시의 <신주神主단지>가 되어야 할 것입니다
부족한 글에 머물러 주셔서 고맙습니다
시앙보르 시인님,
김태운.님의 댓글

절대 공감입니다만,
사념의 골을 파는 행위
그것도 뼛속까지 우리고 우리는...
그래서 얻는 것이 과연 뭘까?...
라는,
글쎄요
삶에 정답이 없듯
시도 정답이 없다
라고, 맺기엔
너무 무책임하다는 생각
......
감사합니다
안희선님의 댓글

저는 (개인적으로) 詩야말로, 문학장르 중에서 가장 진화된 것이며 (여타, 소설이나 수필. 시나리오.희극 문학에 비하여)
시정신은 인간정신의 꽃 (향도성 嚮導性을 지닌) 이라 생각합니다
- 물론, 지금은 그처럼 생각 안 하는 분들이 압도적으로 많겠지만 (일반대중, 시인들을 막론하고)
과거, 어느 한 시대엔 분명히 시가 해당시대의 시대정신을 이끌어가는 산파역적 産婆役的 힘이 있었습니다
하지만, 요즘은 오히려 시가 해당시대의 흐름에 (종속적으로, 눈치보며) 끌려 다닌다고 할까요
그저 안타까움으로 헛소리를 늘어 놓았나 봅니다
시인님의 말씀처럼, 정답을 말하기엔 우리네 삶이 너무 촉박하고 가혹하여
그저 먹고 사는 일이 제일 숭고하고 거룩한 일이 된 것도 같습니다
귀중한 말씀, 고맙습니다
김태운, 시인님,
왓칭님의 댓글

시를 쓰기만 할 뿐,
남의 시를 읽고 독해하는 능력이 없는 저는 시를 읽으며 제 마음을 데울때보다 시를 쓰면서 제 마음을 데울때가 많습니다.
그렇다고 제가 제 시에 감동해서 그런 것이 아니라, 시를 쓰려고 하다보니 주변의 사물이나 사람이나 사건들을 시를 쓰기에 적합한 시각에서 보게 되더군요. 모두가 그렇다고 보고 느끼는데로 쓰면 시가 되지 않으니 모두가 그렇다고 보고 느끼는데 대해 뒷통수를 치려고 생각하다보니 매사를 뒤집어 보게 되더군요. 빛이 그림자를 만들고, 그림자가 빛을 밝히는 것처럼 매사의 이면을 보면 찬것이 따뜻해지고 추한 것이 예쁘지고, 견딜 수 없다 싶은 것들이 견딜 가치가 있는 것처럼 느껴지더군요. 저는 읽을만한 시가 없다고 하시는 분들에게 직접 시를 쓰보라고 권하고 싶습니다. 시를 쓰기에 적합한 눈으로 자신의 눈을 갈아 끼우고 세상을 보면 우리가 시에서 읽고자 했던 것들이 읽히는 것 같습니다. 그리고 시가 전기 난로나 전기장판도 아니고 굳이 세상을 덥혀야할 까닭도 없는 것 같아요. 차면 찬데로 더우면 더운데로, 쉬우면 쉬운데로 어려우면 어려운데로 미친 것은 미친것대로 공무원 같으면 또 그런데로 시는 시의 역할을 하는 것 같습니다. 도대체 시한테 뭘 바라세요? 정치도 종교도 구원하지 못하는 세상을 시가 어떻게 덥히고 식히겠어요? 그냥 노래라는 아름다운 양식의 숨구멍하나 있다는 것만으로도 감사해야할 것 같습니다.
왓칭님의 댓글

여자 소프라노가 부르는 솔베이지의 노래를 종종 듣습니다.
한 여자가 한 남자를 기다리다
폭삭 늙은 할매가 되었는데
돈 벌어 온다던 남자는 산적만나 돈 다 빼앗기고
빈털털이 할베탕구가 되어서 평생 쌩과부로 살아 온
여자에게로 돌아와
이제 여생이라도 함께 사나 싶으니까
그 할매 무릎 베고 할베 죽는다는 내용..
다들 아시듯..
한 평생 기다리기만 하다고
그리워하기만 하다가 다 갔다고 이 노래는 이야기 해주는데
이 절망적인 기다림과 그리움이
도대체 무슨 힘으로 세상을 구원하겠어요?
그냥 그 자체로서 아름다우니까
슬픔마저 이렇게 아름다운게 세상이라니 얼마나 눈부셔요?
낮에 막걸리 마시면서 이 노래 들으면
아무것도 건질것 없는 이 극한의 슬픔마저
이렇게 황홀하다면,
세상아! 너 도대체 어떻게 생겨먹은 녀석이냐 싶어져요.
무엇을 기대한다는 것 욕심 같아요.
그냥 니 꼴리는데로 존재하는 세상 자체가
솔베이지의 노래 입니다.
ㅋㅋㅋ 제 말이 믿기지 않으면 낮술을 마셔봐요.
에미 에비 모르기 전에
한번 길거리로 나가봐요.
온 세상에 가득한 극광을 보게 될 겁니다.
우린 이놈의 세상 어쩌구 저쩌구
확 죽어삘라 마 해도
세상에서 제일 두려워하는게 죽음이죠.
세상이 정말 우리가 생각하듯 나쁜 곳이라면
왜 그토록 죽음을 두려워 할까요?
세상은 죽어도 떠나기 싫은 너무나 아름답고 완전한 천국이기 때문에
우린 죽네 사네 하면서도 우짜던가 살라고 바둥거리는거죠.
아마도 신은 천국이 너무 지겨울까봐 욕심이라는
환각제를 먹여서 지옥을 체험하게 하는건지도 몰라요.
안희선님의 댓글의 댓글

글쎄요,
시인에게 있어서 인류를 구원하는 길은 시가 아닐까요 (쓴웃음이 나올 정도로 너무 거창한가요)
- 웃기는 짜장 같은 소리, 귀신 씨나락 까먹는 소리, 개풀 뜯어먹는 소리
어쨌거나, 그런 명제나마 있기에 시인들은 한사코 시라는 꿈에 매달리는 건 아닌지.. (그들은 시가 지겹지도 않은지)
아, 그런데
요즘의 저를 두고 말하자면
시가 나에게 아무 것도 기대하지 않는 것처럼
저 역시, 시역할에 관한 일체의 기대를 접었다고 할까
- 죽은 자식 불알, 하염없이 만지기
하여, 왓칭님의 말씀이 구구절절 가슴에 젖어 듭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