흑백영화 실크로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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흑백영화 실크로드 / 테우리
사내의 눈빛은 늘 여자의 인중을 맴돌았다. 여자의 눈빛을 섣불리 마주하기가 껄끄러웠다. 여자의 모든 것을 탐하기 위해선 우선 여자의 이목구비부터 제압해야했는데, 어디를 훔쳐보든 그녀의 날카로운 눈빛에 쏘여 세월마저 우물쭈물했으니,
그러던 어느 날 우연으로 포장한 기회의 커튼이 확실히 열렸다.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않은 그녀의 미끈한 나신은 사내의 눈길에 어김없이 횃불을 붙였다. 요즘 따라 부쩍 부풀린 그녀의 추파를 의식한 사내, 이 절호의 기회가 옛 실크로드의 마지막 험로일 거라며 위험을 무릅쓰고 무조건 그녀의 신비로움을 파헤치기로 작정한다. 초심과 달리 얼굴은 늘 힐긋거리던 것이라 그리 중요치 않단다. 그 턱 아래에서부터 발끝까지가 더욱 궁금하다며, 그녀의 긴 목덜미는 허시후이랑의 오아시스, 밑으로 배꼽까지는 밋밋한 타클라마칸사막이다. 그 이전 어중간에 파미르고원과 이란고원이 우뚝우뚝 솟아 있고, 이윽고 아래를 쭈욱 훑으면 두 갈래로 갈리는 은밀한 곳에 중앙아시아초원이 있음직하다. 지금이라도 당장 뒹굴고 싶은 곳이지만, 돌아오는 길로 미루기로 하고 그 지점을 지나면 비로소 지중해 동안과 북안을 향하는 길목 쭉 뻗은 각선미가 사내의 흑심을 유혹한다. 참지 못해 헉헉 신음을 토하는 순간, 숨이 차오르고 심장이 방방이질 친다. 동공을 더욱 키우고 발끝을 보니 틀림없는 로마제국의 형상, 두 발이 어쩌면 이래저래 발칸반도를 아우르는 동로마와 서로마인 듯도 하고 발톱의 화려한 치장은 마치 클레오파트라다. 군침을 삼키며 이제 다 훑었나 싶었는데 지진인 듯 뒤엎어지는 실크로드, 이제 되돌아갈 시간이겠다 여기는 순간 파미르고원과 이란고원은 온데간데없고, 타클라마칸사막을 가로막는 길목으로 새로 생긴 거대한 모래산 큼지막한 두 봉우리가 꿈틀거린다. 길을 잃었을 지도 모르는데 마구 토해내는 사내의 연발 감탄사다
아! 나의 사랑이여, 비단결 같은 나의 여신이여!
앗! 깬다. 활활 타는 두 눈빛의 전면충돌은 찰나, 부딪치는 순간
이미 기가 죽어 황사에 묻혀버린 사내의 모랫빛 눈알
어쩌다 사내에게서 빠져나간 정신이 여자의 마음을 무시한 채
비단길 살결부터 성급히 물어뜯었나보다
구닥다리 영사기는 멈추고
금세 불이 꺼진다
댓글목록
두무지님의 댓글

제목부터 예사롭지 않습니다.
심혈을 기우려 쓰신 작품 속에
아름다운 파노라마가 전개되는 것 같습니다.
잘 보고 갑니다.
김태운.님의 댓글

제작년에 올렸던 것, 다시 다듬어봣습니다
하루가 다르게 변색하는 세월이라 제목에 흑백으로 덧붙이고 ...
감사합니다
시앙보르님의 댓글

정열과 패기가 넘칩니다.
엽편소설로도 손색이 없겠어요.
창작용 레퍼런스로 사용해도 되겠지요? (표절은 당연 불가 !! )
시편은 '뭍' 인데 BGM이 '타이타닉' 바다라서 조금 헷갈렸습니다. ^^
즐거운 주말 되십시오.
김태운.님의 댓글

언감생심입니다
소설이면 소설 같이 꽁트면 꽁트 같이 써야겠는데...
혹 지루하겠다 싶어 배경음악을 경음악으로 깔아놓은 것 제목과는 무관합니다만...
그냥 영화 보듯, ㅎㅎ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