풀꽃 신발끈을 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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풀꽃 신발 끈을 묶다 / 엄영희
오늘의 날씨는 조금 더 짙은 초록이다
연초록에서 진초록 사이의 보도가 없는 길을 달린다
초록 칠판을 흑 칠판이라고 우기던 시절에도 그랬다
길이 없는 곳에서는 물길을 텄다
등을 적셔주거나 부스럼 자욱에 침을 발라주며
아무리 위태로워도 한 뼘 사이의 계단
연초록과 진초록
바람과 바람
거기와 여기
풀꽃 떨어져도 그뿐 다치지 않았다
길 위 나무의 꽃을 궁금해하지도 않았다
바람 불면 등을 밀어주다가
발목 가늘게 흙바람에 뒤집히다가 뒤집다가
내 발등에 업힌 현오색 풀꽃
아직 가지 못한 길바닥에 풀썩 울음을 터뜨린다
내 젊은 날의 운동화 같은
화장이 지워질까 봐 눈두덩의 풀물을 어둑어둑 삼켰다
너무 애쓰지 말아라
나에게 넌 여전히 캐츠 아이*구나
봄나물에서 시든 풀을 골라내시는
엄마의 손등은 유난히 늙으셨다
손이 가장 늦게 늙는다며 좋아하시던
엄마의 매니큐어는 손톱은 어디로 갔을까
풀꽃은 씨방을 터뜨릴 때 허리가 빳빳해지는 법
오늘 밤 날씨가 맑으면
우리는 하얀 털신으로 갈아 신을 것이다
*캐츠 아이는 초록색을 띤 보석의 원석
댓글목록
예시인님의 댓글

누구신가요?..대단하시네요?
글이 참 따뜻합니다 ^^
영원부정님의 댓글

평소 예시인님의 시를 감탄하고 있습니다
격려의 말씀 너무 감사합니다~~^^